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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국토 최동단 독도에서 보낸 하룻밤··· 그곳은 새들의 땅이었다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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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동쪽 끝 독도에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를 볼 수 있다. 바다를 온통 집어삼킬 듯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주변을 서서히 물들여가는 모습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발 디딜 수 있다는 땅. 외로운 섬, 독도(獨島)에 다녀왔다. 독도는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336호)이다. 사진으로 익숙한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의 주변 섬(바위와 암초)을 통틀어 독도라고 부른다. 울릉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독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동도 선착장 주위에서만 20~30분 머물렀다가 다시 같은 배에 올라 울릉도로 돌아가야 한다. 경향신문은 알려지지 않은 독도의 숨은 매력을 소개하기 위해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얻어 이틀 동안 동도와 서도를 샅샅이 훑었다.

국토 최동단 독도를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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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출항한 배가 독도 동도 선착장에 접근하고 있다. 독도 주변은 파도와 너울이 심해 배를 접안하기가 쉽지 않다. 배가 다니지 않는 겨울을 제외하면 독도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은 일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거칠기로 유명한 독도 주변 파도는 6월에 평균 0.7m 내외로 가장 잠잠해진다. 조사와 연구를 위해 일년에 여러 차례 독도를 드나드는 문화재청 연구원에게 ‘확실한 날짜’를 받은 게 지난 12일이었다. 강원도 강릉항에서 아침 일찍 배를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배가 요동치면서 멀미가 심해져 선실 바닥에 드러눕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3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하기 무섭게 다시 저동항에서 독도행 배를 탔다. 다행히 독도까지 뱃길은 울릉도 어민들이 ‘장판 깔았다’고 표현하는 평평한 바다였다. 선실 텔레비전에선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흘러나오고 독도경비대원들이 직접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상영되며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집을 나선 지 9시간 만인 오후 2시 무렵 독도 동도 선착장에 배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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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경찰청 소속 독도경비대원 40여명은 365일 24시간 독도와 주변 바다를 지킨다. 지금까지 7명의 경찰·전경이 독도 경비 중 안전사고 등으로 숨졌다. 독도 등대 옆에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경찰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독도 입도 제한 완화 조치가 실시된 2005년 이후 독도 관광객은 매년 늘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연간 20만명 이상이 독도를 찾았다. 하루 평균 550명가량이다. 겨울을 제외하고 여객선이 운항하는 기간은 1년 중 9개월여. 그나마 독도에 접안해 상륙할 수 있는 날은 절반에 불과하다.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은 독도를 눈앞에 두고도 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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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독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동도 선착장 주변 제한된 장소에서만 20~30분가량 머물 수 있다. 독도의 나머지 지역은 문화재청장의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다.

다행히 기자가 방문한 날은 파도가 잠잠해 무사히 접안에 성공했다. 배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와!” 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쏟아져 내렸다. “만세” 하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태극기가 그려진 머리띠와 두건, 모자 등을 준비한 관광객들은 독도 땅을 밟기 무섭게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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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의 독도이사부길 도로명 표지판. 2008년 국민 공모로 정한 이름이다. 서도엔 독도안용복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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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에 설치된 독도 표지석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 쓰인 표지석과 ‘독도이사부길’이라고 적힌 파란색 도로명 표지판 앞에 사람이 몰렸다. 동도의 유일한 길인 독도이사부길은 2008년 국민 공모로 정한 이름이다. 512년 우산국을 점령한 신라 장군 이사부의 이름을 땄다. 서도에는 조선 숙종 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일본 막부가 인정토록 한 어부 안용복의 이름을 딴 ‘독도안용복길’이 있다.

화산섬 독도가 숨겨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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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탕건봉,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

그리 넓지 않은 동도 선착장에 서니 주변 기암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서도 옆으로 죽 늘어선 탕건봉과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가 가장 눈에 띈다. 바위와 봉우리 이름은 대개 모양새를 따랐다. 탕건봉은 현무암 주상절리가 뚜렷한 윗부분과 차별침식으로 풍화되며 여기저기 움푹 파인 아랫부분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된다. 촛대바위는 바다 위로 높이 솟은 촛대 위 촛불 모양까지 그럴듯하다. 삼형제굴바위는 세 개의 해식굴이 멀리서도 뚜렷이 보인다.

 

탕건봉 옆으로 검은색 현무암 바윗덩이 가운데 수직으로 뻗은 회색의 가는 줄무늬는 용암이 뚫고 올라온 관입의 흔적으로 약 460만년 전 해저 2000m에서 용암이 솟아 형성된 화산섬 독도의 내력을 잘 보여준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뒤 고무보트를 타고 섬 주변 탐색에 나섰다. 독도 주변은 수심이 5~10m로 낮고 물이 맑아 손가락만 한 졸복들이 무리 지어 헤엄치는 게 훤히 보였다. 섬 바깥쪽은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짙푸른 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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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독립문바위

동도 선착장 반대편에 있는 해식아치 독립문바위 쪽으로 접근하는데 갑자기 거센 너울이 몰아쳤다. 방금 전까지도 포근한 이불 같던 바다가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보트 밑바닥을 여기저기 찔러댔다. 당장이라도 뒤집어질 듯 요동치는 배를 돌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동도 경사면에 한반도 형상으로 식생이 자란 모습이나 서도의 해식동굴인 코끼리바위 등은 가까이 가보지 못하고 드론 촬영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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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우산봉을 오르는 길 난간 기둥마다 괭이갈매기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화면 오른쪽의 하얀 점들 역시 섬의 경사면 양지 바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들이다.

나무데크로 만든 계단을 따라 동도 우산봉에 올랐다. 계단 난간에 진을 치듯 앉아있던 괭이갈매기들이 큰소리로 울다가 차례로 몸을 날려 자리를 피했다. 바위섬 독도의 얕은 토양에 뿌리 내린 해국과 땅채송화가 바위 틈바구니마다 푸른 빛으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르는 길에 암반 균열 계측장치 등 독도의 환경과 생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장비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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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경비대에서 키우는 삽살개 흑미와 백미

우산봉 중간 즈음 언덕배기엔 경북경찰청 소속 독도경비대 대원 40여명이 기거하는 숙소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원들이 키우는 삽살개 흑미와 백미가 낯가림 없이 다가와 몸을 부볐다. 경비대 숙소 옆 바위엔 ‘한국령’이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글씨 아래엔 울릉우체국에서 설치한 빨간 우체통도 있다. 실제로 우편물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 시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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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우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도 전경. 섬 왼쪽 해변가에 자리잡은 회색 건물이 독도주민숙소다. 현재는 거주하는 주민이 없고 울릉군청 소속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이 상주한다. 연구·조사·취재 목적으로 1박 이상 독도를 방문하는 이들도 주민숙소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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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의 섬 가운데엔 약 100m 깊이로 파인 함몰부가 있다. 함몰부 바닥엔 바깥으로 뚫린 천장굴이 있어 바닷물이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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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굴 사이로 흘러드는 동해의 에메랄드빛 바닷물

독도 등대를 지나 몇 발짝만 더 오르면 해발 98.6m의 우산봉 정상 헬기장에 닿는다. 맞은편 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에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옆으로 눈을 돌리자 동도 가운데 100여m 깊이로 푹 파인 함몰부가 보였다. 밑바닥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동굴인 천장굴을 통해 비취색 바닷물이 넘실대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새들의 땅에서 훔쳐본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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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주민숙소 건물 뒤로 대한봉 골짜기를 따라 가파른 경사의 계단길이 나 있다. 끝까지 오르면 동도 쪽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동도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151m 물길을 건너 서도로 이동했다. 서도엔 울릉군청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이 지내는 독도주민숙소가 있다. 현재 독도엔 거주민이 없다. 숙소 뒤 골짜기로 난 깎아지른 계단을 오르면 서도 최고봉인 대한봉(168.5m)으로 연결된다.

 

가파른 경사에 금세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계단 난간을 대신한 밧줄은 삭아서 중간중간 끊겨 있었다. 계단폭은 20㎝가 채 안돼 발을 온전히 딛기도 힘들었다. 계단 주위에는 인간이 만든 흔적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듯 괭이갈매기의 하얀 배설물이 눈처럼 뒤덮여 있었다.


4월에서 6월 사이 약 1만마리의 괭이갈매기가 독도를 찾아 번식한다. 계단 한쪽엔 풀잎을 모아 만든 작은 둥지와 얼룩무늬 알도 보였다. 곧 있을 이동을 대비해 새끼 몸집을 한창 키워야 할 시점인데 이제야 알을 낳다니 괜찮을까. 주제넘은 남 걱정도 잠시 해봤다. 희끄무레한 솜털이 벗겨지며 털갈이 중인 새끼 갈매기 중엔 머리 윗부분만 털이 빠져 꼭 대머리처럼 보이는 귀여운 녀석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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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봉으로 오르는 계단참에 괭이갈매기가 둥지를 틀었다. 어미는 사람이 접근하자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곧 돌아와 다시 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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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 끄트머리에서 유유자적 아침 햇살을 즐기는 괭이갈매기 어미와 새끼

시간 가는 중 모르고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위협을 느낀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닮아 괭이갈매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언뜻 듣기엔 까마귀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뭐야 뭐야’ 소리치는 것도 같았다. 몇몇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선회비행하며 공격하려는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배설물을 갈기고 날아가는 녀석도 있었다. 수백마리 갈매기가 주변을 에워싸며 한꺼번에 울어대는데 조금 겁이 났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 <새>가 조건반사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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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우산봉에서 바라본 동도 전경. 오른쪽 꼭대기 하얀 건물이 독도 등대(항로표지관리소)다. 3명의 등대관리원(항로표지관리원)이 근무하고 있다.

문득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절대 명제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면 새들의 땅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 가장 가까운 육지인 울진에서도 200㎞ 이상 떨어져 있다. 새들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던 소중한 보금자리에 귀찮은 침입자가 생긴 것뿐이다. 뜨내기 방문자로서 ‘섬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괭이갈매기들이 번식을 마치고 이동하는 7~8월이면 독도는 다시 산란을 위해 찾아온 바다제비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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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서도와 오른쪽 동도 사이로 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붉은 해가 동해 바다를 서서히 물들이며 시시각각 주변의 빛이 바뀌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주민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기상청이 예보한 독도 일출 시각에 맞춰 새벽 4시30분에 다시 대한봉을 올랐다. 5시가 채 안돼서 사방이 밝아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다웠다. 맞은편 동도 등대는 아직도 등명기 불빛을 바다로 쏘고 있었다.


이윽고 멀리 동도와 서도 사이 수평선 위로 콩알만 하게 해가 떠올랐다. 태양은 서서히 붉은빛을 더하며 바다를 물들이다 이내 대양을 집어삼킬 듯 이글대며 타올랐다. 원시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빛이랄까. 경외심이 들었다. 해돋이와 해넘이는 여행기자의 일상인데도 그 풍경 앞에선 새삼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다 위로 완전히 솟은 해는 이내 섬 전체를 싱그러운 레몬빛으로 채웠다. 바다는 잔잔하게 은빛으로 일렁였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그렇게 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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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독도경비대 숙소 건물 옆 바위에 새겨진 ‘한국령’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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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지형을 잘 보여주는 동도의 해안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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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주변은 수심이 10m 내외로 물이 맑아 바닥까지 훤히 보이지만 조금만 바깥 쪽으로 나가도 끝을 알 수 없는 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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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옆모습을 닮은 동도의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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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선착장 주변 갯바위에서 먹이를 찾는 백로

독도│글·사진 김형규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