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근시에도 책 1만권을 읽은 매천 황현 선생의 문방구류 문화재된다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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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 황현 선생의 초상화. 20대부터 지독한 근시 때문에 안경을 썼다.

①“바탕이 올곧으며 아름다운 게 덕을 지닌 군자의 빛과 같으니 오래도록 진실로 좋아하리라(貞固含章 君子之光 其壽允臧).”


②“돌 위에는 샘솟는 벼루가 있으니 군자는 강한 덕으로 빛날 것이다.(石上有泉硯 君子以 剛德而潤)”


③“문예의 밭 날로 갈면 추수 풍성하리니 즉묵(후)에 봉해진 네 공적 가상하구나.(藝圃日闢 秋有穫 余嘉乃積 封卽墨)”


구한말~조선제국기 애국시인이자 역사가이며 경술국치 직후 순절한 매천 황현(1855~1910)은 <매천집>에 벼루를 소재로 한 시(‘연명·硯銘’)를 여러편 지었다. 그것을 명(銘)이라 한다. ‘명’은 본래 ‘새기다’라는 뜻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에 대한 내력과 단상 혹은 물건을 통해 얻은 각성을 기록한 글로 의미가 확대됐다. 후대에는 ‘명’으로 경계하거나 후세에 남겨 교훈으로 삼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그래서 <예기>는 “명(銘)이란 이름(名)이며…그것의 용도를 고찰할 때 아름다운 덕행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고, 명나라 오눌(1372~1457)은 “명은 기물을 명(名)한 것으로서 스스로 경계하는 것”(<문장변체서설>)이라 했다.


황현의 ‘연명’ 중 ①은 벼루의 굳은 의지가 오래간다는 것으로 선비의 아름다운 영원성을 찬양한 주제다, ②는 근본이 있는 선비라야 오래간다는 것이다. 남에게 덕을 베푸는 선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돌 위에 솟는 샘물이 있는 벼루에 비유했다. ③의 벼루는 가까이 하는 심복과 같다는 뜻이다. 벼루에 먹을 가는 일은 채마밭에 퇴비를 주는 것과 같고, 가을이면 결실을 거둬 들이듯 먹을 많이 갈수록 좋은 곡식을 생산해내는 거름과도 같다는 것이다. 황현은 벼루의 별명을 ‘즉묵후(卽墨侯·즉묵에 봉해진 제후)’라 했다. 이는 당나라 문인 문숭이 벼루를 의인화한 것에서 유래했다. 글을 쓸 때 시중드는 벼루의 공적을 높이 사서 ‘즉묵후’에 봉했다는 것이다. 황현은 매일매일 벼루에 먹을 갈아 항상 글을 연습하는 것을 ‘문예의 밭을 날로 갈아놓는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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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이 곁에 두고 사용한 벼루. 황현은 벼루를 주제로 한 이른바 ‘연명’을 지었다. 벼루에게 ‘즉묵후’라 봉하기도 했다.|문화재청 제공

20대에 책 1만권을 읽었다는 황현으로서는 벼루와 같은 문방구는 그야말로 자신의 심복이자 벗으로 여겼을 것이다. 매천 황현의 트레이드 마크는 안경이다. 황현은 심한 근시에 오른눈이 사시여서 20대 중반부터 안경을 썼다. 1909년 천연당 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과 채용신(1850~1941)이 그린 초상화에서도 안경을 착용했다.


문화재청은 국권침탈 소식을 듣고 순국한 매천 황현의 유품을 ‘매천 황현 문방구류’, ‘매천 황현 생활유물’로 나눠 각각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5일 밝혔다. ‘매천 황현 문방구류’는 벼루, 벼룻집, 벼룻돌, 필통, 연적, 지구의, 도장 등 19점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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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로 예고된 황현의 생활유물 중 문방구. 총 35점이 지정예고됐다.|문화재청 제공

그의 생활유물은 안경과 안경집, 호패, 합죽선, 상투관, 얼레빗, 소쿠리, 표주박, 책장 등 35점으로 이뤄졌다. 황현의 필수품인 안경 중 문화재가 되는 것은 3점이고, 안경집은 5점이다.


이정수 한빛안경박물관장은 문화재청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안경집에 영문으로 ‘한국 서울 세브란스병원’(severance hospital seoul korea), 한글로 ‘제중원’이라고 쓰여 있다”며 “세브란스병원이 1904년 9월 4일에 설립됐으므로 1900년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매천 황현이 좋지않은 시력에도 벼루와 먹 등을 벗 삼아, 시종 삼아 그렇게 책을 읽고 공부를 했어도 망국의 시기에는 쓸모가 없음을 한탄하며 순국하고 말았다. 요즘은 매천 선생의 절명시가 새삼스럽게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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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선생의 안경. 지독한 근시에도 황현 선생은 1만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문화재청 제공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발의 나이에 이르도록(亂離滾到白頭年) 몇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가 이루지 못했네.(幾合捐生却未然)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으니(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 가물거리는 촛불 푸른 하늘 비추누나.(輝輝風燭照蒼天)… 새 짐승 슬피울고 바다와 산도 시름거리니((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다 망하고 말았네.(槿花世界已沈淪) 가을 등불 아래 책덮고 역사를 돌이켜보니(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


문화재청 관계자는 “황현 문방구류와 생활유물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됐고,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던 매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자료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며 “동시대 선비문화와 생활상을 짚어볼 수 있는 문화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58년 흑산도에 세운 천주교 성당인 ‘신안 흑산성당’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흑산성당은 선교뿐 아니라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쳐 낙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2019.08.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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