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성역할 ‘뒤집어놓은’ AOA 무대 위 보깅 댄서들···이들은 누구?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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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뜨거운 이슈가 된 Mnet <퀸덤> 에서의 걸그룹 AOA ‘너나 해’ 무대. 이 무대에서 격렬한 보깅 댄스를 선보여 궁금증을 낳은 다섯 명의 남성 댄서 중 허준영, 이유종, 장원중(왼쪽부터)을 지난 21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정지윤 기자


자유로움. 지난 12일 방송된 Mnet 프로그램 <퀸덤>에서 걸그룹 AOA가 선보인 ‘너나 해’ 무대가 전한 가치를 한 마디로 요약해본다. 하이힐 대신 단화를, 짧은 치마 대신 바지 정장을 착용한 AOA 멤버들 곁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남성 댄서들이 핫팬츠에 하이힐을 신고 관능적인 ‘보깅 댄스’를 선보였다. 지금껏 우리를 짓누른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꽃 아닌 나무가, 결국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겠다 선언하는 무대가 준 해방감은 지루한 연휴의 공기를 데우기에 충분히 뜨거웠다. 자연스레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5명의 남성 댄서들에게 관심이 꽂혔다.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이 선보인 보깅 댄스란 대체 무엇일까. 2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무대에 참여한 8년차 댄서 이유종(21), 4년차 댄서 허준영(19)과 장원중(20)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관련기사▶ [정동길에서]걸그룹 AOA의 작심)

“무시를 당할 수도, 환호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과 호응을 보내주시니 좋네요. 하고 싶은 것을 더 해나가도 괜찮다고 느끼게 됐거든요.” 허준영이 말했다. 이마가 드러나게 빗어넘긴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렸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무대 아래서도 여전히 빛났다. 아니 한층 다채로웠다. 노란색 탱크톱에 화려한 점퍼를 걸쳐 입은 이유종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야 평소 모습대로 늘 하던 퍼포먼스를 한 건데, 익숙하지 않은 대중에겐 좀 ‘쇼킹’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허준영과 이유종은 각각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실용 무용을 전공한 보깅 전문 댄서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보깅 댄스를 선보인 것도, 가수의 백업 댄서로 무대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와킹 전문 댄서’이자 ‘미대생’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장원중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차별적인 시선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로 친분은 있지만 원래부터 한 팀은 아니었다. 오직‘너나 해’ 무대를 위해 각자 활동하던 5명의 댄서가 모여 3일 동안 총 10여시간의 연습 끝에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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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뜨거운 이슈가 된 Mnet <퀸덤> 에서의 걸그룹 AOA ‘너나 해’ 무대. Mnet 제공


AOA 무대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보깅 중에서도 캣워크, 덕워크, 손 동작, 딥 등으로 구성된 ‘보그 펨’이라는 장르다. 허준영은 “사회에서 ‘여성스러운 것’이라 칭하던 동작이나 신체적 곡선을 강조하는 춤”이라 설명하며 “하지만 점차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보그 펨 역시 ‘더 나다운 나’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으로 변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보깅과 드랙의 차이점도 여기서 발생한다. 외양적으로 과장된 여성성을 표현하는 드랙퀸(여장 남자)과 달리 보깅은 꾸밈에 대한 제약이 없다. “뉴욕의 보깅 행사만 봐도 그냥 가볍게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오는 분들도 많아요. 저희가 이렇게 치장한 건 보깅 때문이 아니고, 그냥 저희 스타일인 것 뿐이랍니다!(이유종)”


많은 이들이 보깅을 통해 젠더 이분법을 무화시키는 ‘쾌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미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쾌감은 일상일 뿐이다. “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나누는 것을 싫어해요. 저는 저일 뿐이잖아요. 저는 어떤 성별에게 강요되는 ‘코르셋’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허준영에게 보깅은 그저 ‘나’를 표현하는 과정이자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저는 춤을 통해 표범이 되고 싶기도 하고, 인어가 되고 싶기도 해요. 이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 때 ‘통했다!’ 싶어 기분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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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뜨거운 이슈가 된 Mnet <퀸덤> 에서의 걸그룹 AOA ‘너나 해’ 무대. 이 무대에서 격렬한 보깅 댄스를 선보여 궁금증을 낳은 다섯 명의 남성 댄서 중 허준영, 이유종, 장원중(왼쪽부터)을 지난 21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정지윤 기자


다수의 통념과 대중의 기호에 맞춰 규격화를 거듭해 온 K팝의 풍경을 되돌아보건대, ‘나’의 시간에 집중해 온 보깅을 무대로 불러들인 AOA의 선택은 가히 기념비적이라 칭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라는 랩을 통해 ‘여자 아이돌’의 정체성 너머 ‘나’의 목소리를 냈던 AOA 리더 지민이 보깅의 매력에 빠져드는 건 어쩐지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이유종은 “연습하면서 지민 누나가 보깅에 빠졌다”면서 “저희에게 캣워크를 알려 달라면서 직접 유연성까지 뽐냈다”고 전했다.


미국이나 유럽, 대만과는 달리 한국에는 아직 ‘볼룸 문화’와 보깅을 즐기는 이들이 채 100명도 되지 않는다. 보깅 관련 행사나 TV 프로그램, 영화까지 만들어지는 미국 같은 대중화는 아직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보깅을 춘다. 늘 그랬듯, 무엇에도 괘념치 않고. 보깅에 관심 있지만 도전을 주저하는 이에게 던지는 조언조차 이렇게나 호쾌하다. “그냥 냅다 던지세요!”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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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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