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이 된 미술품, 묘책은 없을까

[컬처]by 경향신문

대형건물 앞에 설치된 미술작품이 지역이나 건물의 특색을 살리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물이 되고 마는 문제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지적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광장의 조형물 ‘아마벨’이다.


국세청 앞에서 소방청 앞으로, 다시 창고로. 저승사자를 닮아 설치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정부세종청사 앞 공공조형물은 지난해 12월 7일 철거된 뒤 창고로 옮겨졌다. 이미 한 차례 설치장소를 옮겼지만 ‘무섭다’, ‘흉물이다’ 같은 민원이 끊이지 않아 결국 새로운 설치장소를 찾지 못한 채 폐기될 위기까지 몰린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반복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공공미술 작품에 대한 심의와 관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심의 강화 때문에 미술계가 위축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철거된 ‘흥겨운 우리가락’이란 제목의 작품은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조형물은 2015년 정부세종청사 16동 국세청 앞에 처음 세워졌다. 당시 제작비는 1억500만원, 작품을 만든 안초롱 작가의 설명으로는 “우아한 동작과 품위가 특징인 한국무용의 한 장면을 연출”하려는 제작의도를 담았다. 그러나 작품이 설치된 직후부터 이곳을 지나치는 공무원들은 물론 주변 상인들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왔다. 금속 소재로 만든 작품이 차갑게 느껴질 뿐더러 표정까지 오싹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래의 작품명과는 달리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고,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세종청사 앞 ‘흥겨운 우리가락’은 철거

경향신문

2019년 12월 7일 정부세종청사 17동 앞에 있던 금속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이 철거되고 있다.연합뉴스

이에 따라 작품은 국세청이 있는 정부세종청사 16동 앞에 세워진 지 1년도 되지 않아 청사 17동 소방청 앞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이 조형물에 대한 평가는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재난을 관리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역할의 기관인 소방청 앞이라 더 어울리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어느 기관도 이 작품 설치를 반기지 않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채 정부청사관리본부의 창고 안으로 ‘임시보관’ 처리되는 조치가 내려졌다.


대형건물 앞에 설치된 미술작품이 지역이나 건물의 특색을 살리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물이 되고 마는 문제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지적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광장의 조형물 ‘아마벨’. 비행기 잔해로 만든 탓에 고철덩어리로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한 서울로7017 개장 당시 일정 기간만 설치됐던 ‘슈즈트리’ 역시 신발 수천 켤레를 걸어둔 모습이 과연 예술성을 표현한 것이냐며 의문을 낳았다.


시민의 입장에서 뜬금없어 보이는 이런 미술작품은 대부분 법적 의무사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1만㎡ 이상 대형 건축물을 신·증축하려면 건축비 1% 이하 범위에서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늘리고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거나 특정 작가가 비슷한 형태의 조형물을 ‘자기복제’에 가깝게 만들어 설치하는 등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서울시와 경기도처럼 대형건물 신축이 몰린 지자체에서 최근 심의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지난해 9월 도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위한 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강화된 심의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작품이 심의를 통과하는 가결률은 종전 60%대에서 10%대로 대폭 낮아졌다. 심의위를 새로 구성하기 전인 지난해 8월까지의 심의회에서는 총 336점 중 210점을 통과시켜 62.5%의 가결률을 보인 데 비해 이후 심의회에서는 12%의 가결률이 나왔던 것이다.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작가에게 정당한 창작료가 돌아가는 대신 작품 설치금액의 일정 부분이 건축주와 대행사에 넘어가는 관행이 있었던 탓에 흉물 미술작품이 속출하는 결과를 불렀다는 인식이 반영되면서 심의도 엄격해진 것이다.


심사위원단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전문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고 미술 외에도 건축·조경·안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위원들을 보강하는 등의 조치는 경기도뿐 아니라 서울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뤄졌다. 특히 심의위원들이 임기 중 직접 건축물 미술작품을 출품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출품작가와 이해관계가 있으면 해당 심의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이전까지는 심의위원이 속한 대학이나 협회 또는 단체, 심의위원이 관계된 화랑이나 대행사의 작품이 출품되더라도 심의에 참여해 각종 인맥을 바탕으로 연결된 작가의 손을 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관행이 반복될 수 있는 온상이 됐던 것이다.

연간 1000억원대 거래 거간꾼 몰려

경기도만 보더라도 2014년 이후 2018년까지 5년 동안 도내에 설치된 작품 1172점 중 40%가 설치 건수 상위 10% 작가에게 집중됐다. 문제는 한 지자체를 넘어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작품이 설치되는 폐단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건축주는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미술품을 구매하고, 작품 계약을 대행하는 중개인은 일정 부분의 수수료를 챙겨가면서 정작 작품을 만든 작가는 최소한의 재료비와 제작비만 받는 불공정한 관행이 20년 넘게 암묵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신규 건축물 비율이 높은 서울시 역시 2017년부터 심의위원 규모 축소와 신진 작가 참여 유도를 바탕으로 하는 심의기준 강화 이후 2017년 65%였던 가결률이 2018년 39%, 2019년 40%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자체마다 심의를 강화하는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미술계 일각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조각가협회는 서울시와 경기도 건축물공공미술작품 심의 강화 방침에 맞서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 행동에 들어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미술시장 실태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전체 미술시장의 연간 총 거래금액 4942억원 중 건축물 미술작품이 차지하는 액수는 879억원(17.8%)에 이른다. 화랑과 경매를 통한 거래를 제외하면 가장 큰 액수가 오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누구나 눈독을 들이게 된다. 이러한 시장이 지자체의 심의 강화로 위축됐기 때문에 반발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술계 인사들은 심의 강화가 결코 작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김정희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은 “일곱 번까지 작품이 부결된 작가도 있어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작가들이 1회당 심의신청비용 100만~200만원을 그대로 날리고 있다”며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작가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 태스크포스의 이성옥 공동위원장도 “논란이 된 수준 미달 조형물들은 조각가들을 배제한 입찰 병폐의 문제임에도 마치 조각가들의 커넥션이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며 “심의위원회 구성과 심의기준에 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아예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존재 의의를 되묻는 목소리도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연간 1000억원대로 시장이 커지자 거간꾼들이 끼어들었고, 공공미술은 공공조형물 ‘사업’으로 둔갑해 소수의 전문 업체와 작가들이 설치를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업체와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는 제도는 이제 폐지할 때가 됐다. 공공미술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국가 예산으로 문화 소외지역 등에 설치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2020.01.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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