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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한예슬 “낯설다고 이상한 건 아냐…한국 사회 경직된 시선 깨보고 싶어”

by경향신문

데뷔 20년차 배우 한예슬


2001년 슈퍼모델로 연예계 첫발

‘환상의 커플’ 나상실 맡아 스타덤


자신이 원하는 외모·차림새 즐겨

누리꾼들 “취향” “불편” 설전


‘열악한 제작환경’ 촬영 거부엔

개선보다 철없는 일탈로 마무리


“여성들이여, 철들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멋지게 나이들 수 있어요

금기 깨며 여성들의 멘토가 될 것”

경향신문

화제가 된 한예슬의 코걸이 패션.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5일 열린 ‘제34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가수도 음악도 아닌 배우 한예슬(39·본명 김예슬이)의 ‘코걸이’였다. 음반 부문 시상자로 나선 한예슬은 화려한 오프숄더 드레스, 짙은 화장, 컬러 렌즈 그리고 코걸이를 착용하고 무대에 섰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한예슬 코걸이’가 올랐고, ‘한예슬, 파격적 코걸이 패션으로 갑론을박ing’ ‘한예슬 코걸이 패션, 네티즌 설전 “나이 잊은 외모” vs “보기 불편” ’ 등 한예슬의 차림새를 논란으로 소개하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대중이나 언론이 원하는 외모나 차림새를 벗어나 취향을 드러낸 여성 연예인의 행보를 ‘기행’으로 평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예슬은 1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시상식 참석 뒷이야기를 전했다. 무대에 서기 전, 차림새가 논란이 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낯설다고 이상한 건 아니야. 낯선 것들도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있어.”


한예슬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늘 ‘낯선 존재’였다. 부당함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대중 앞에 솔직한 그를 사회는 “무모하고 철딱서니 없는 트러블메이커”라 불렀다. 하지만 한예슬은 굴하지 않았다. 데뷔 20년차가 된 그는 이제 “여성들의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철없는 여성도 멋지게 나이 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그의 20년을 돌아봤다.

욕심 많은 여자, ‘나상실’을 만나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5년 정도 한국에서 살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고, 세리토스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다.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상하면서다. 이후 모델로 활동한 그는 2003년 MBC 시트콤 <논스톱4>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배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4년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당시 소속사는 “한국에서 연기자로 자리매김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라고 밝혔다. 이후 2006년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안나 조·나상실 역을 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안하무인 리조트 재벌 안나 조와 기억상실증에 걸린 나상실 1인2역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호평받았다.


<환상의 커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회가 아니었다. 이듬해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한예슬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디션에 임했다며 캐스팅 뒷이야기를 전했다. 캐스팅 미팅에서 “너무 어려 보인다”며 퇴짜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작사를 설득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생 캐릭터’ 나상실은 한예슬의 욕심과 근성이 만든 결과였다.


한예슬은 배우로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겸손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분위기에서 한예슬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 <무릎팍 도사>에서 그는 “연예계 일은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는 게 굉장히 힘든 직업인 것 같다”며 “저도 욕심이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의 욕심과 끼를 과하지 않게 (펼치며) 좋은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고 말했다.

비정상을 고발한 ‘트러블메이커’

경향신문

2011년 8월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에 주연으로 출연하던 한예슬이 돌연 촬영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출국하는 일이 벌어진다. KBS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 누구도 일어날 것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여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처신으로 시청자와의 약속인 드라마가 중대한 국면을 맞게 됐다”고 공개비판했다.


언론도 ‘한예슬 먹튀’ ‘배째라 도망’ 등의 표현을 쓰며 한예슬을 비난하고 나섰다. 온라인에선 출국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고, 일부 언론은 ‘한예슬이 미국에서 결혼 후 은퇴를 하려 한다’는 등 출처불명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수많은 억측이 떠도는 가운데 한예슬이 직접 밝힌 원인은 드라마 제작환경이었다. 미국에서 국내 언론을 마주한 한예슬은 “드라마 제작환경이 너무 힘들었다”며 “제 후배들이 저 같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촬영거부 사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속사와 가족의 설득으로 출국 이틀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머리를 숙였고, KBS를 포함한 시청자에게 사과하며 촬영장에 복귀했다.


사건은 철없는 여성 연예인의 일탈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가 한예슬이 이미 사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촬영시간 조정을 주문했고, 하루 2~3시간 조각 잠을 자며 쪽대본을 소화했다고 성명을 냈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한예슬은 이후 3년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남은 것은 비정상적인 드라마 제작환경과 한예슬에 대한 꼬리표였다. 지난해 SBS 드라마 <빅이슈>가 미완성 컴퓨터그래픽(CG) 화면을 송출하는 방송사고를 냈을 때도, 비난의 화살은 주연 배우인 한예슬을 향했다. 후배들이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던 한예슬의 말은 공허한 울림이 됐고, 그는 또다시 열악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피해자가 됐다.

철들지 않을 권리를 말하다

경향신문

데뷔 20년차 배우 한예슬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늘 ‘낯선 존재’였다. 부당함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대중 앞에 솔직했던 그는 이제 유튜브를 통해 여성들과 직접 소통한다. MBC 제공

“한국 사회에서는 뾰족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성향을 갖고 있어서 인생을 헤쳐나갈 때는 날카로운 검으로 쳐낼 수도 있지만, 잘못 다루면 또 제가 베이기도 하고. 이 양날의 검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힘들었어요. 제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요. 많은 실수도 했고, 상처도 받았고, 밟혀도 봤고, 또 높이 비상도 해봤고, 찬란했던 순간들도 많았고.”


숱한 오해와 이로 인한 여러 논란을 지나온 한예슬은 이제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직접 목소리를 낸다. “드라마에서 맡았던 그 어떤 배역보다 ‘진짜 한예슬’이 더 매력적”이라는 한 누리꾼 말처럼 유튜브 속 한예슬은 낯설지만 멋지고 당차다. 올해 한국나이로 마흔이 된 그는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금기를 깨어나가며 여성들의 멘토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기록 또는 다짐의 의미로 새긴 문신이 어느덧 12개. 한예슬은 왼손 약지에 새긴 ‘네버(never)’라는 문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반지 끼는 위치잖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결혼을 해야 된다는 그런 부담 아닌 부담이 있어요. 저도 나이가 있는 편인데 정말 확신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시에는 사회 분위기나 부담감에 경솔한 행동과 판단을 하지 말자는 뜻에서 새긴 거예요.”


‘카운슬러 예슬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구독자들과 고민을 공유하기도 한다. “평생이 왕따였다”며 미국에서 보낸 학창시절 이야기를 꺼내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듯이 정신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나도 치료를 받으면서 도움을 받았다”며 우울증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두렵지 않고는 새로운 걸 절대 시도할 수 없다. 늘 새로운 건 두려운 게 맞다. 두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걸 시도를 안 하면 늘 그 자리일 것”이라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여성들에게 말한다. 철들지 말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자고. “나이 50, 60 되어서도 젊은 마음을 가지고 늙을 수 있다면 너무 멋질 것 같아. 근데 보통 사람들 시선은 ‘철딱서니 없어’, ‘나이 들어서 뭐하는 짓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 난 그 선입견을 한번 깨보고 싶어. 사람들이 나이에 걸맞지 않다고 할까 살짝 두려운데, 그래도 내 인생이니까. 나랑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에게 어떤 도전,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생각해. 그렇게 심오하진 않아.”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