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죽인 후 목숨 끊는 부모들, 절대 동정 받을 수 없는 범죄자죠”

[컬처]by 경향신문

‘가부장적 소유욕이 부른’ 불행한 사건 다룬 추리·스릴러

“사회적 문제 풀어내 보고 싶었다…예방에 노력 기울여야”

경향신문

‘일가족 동반자살’로 불리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다룬 추리·스릴러 <살인자에게> 를 펴낸 소설가 김선미를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국은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할 때 자녀를 먼저 살해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고 합니다. ‘일가족 동반자살’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들도 과연 죽음에 동의했을까요?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선미 소설가(39)의 첫 장편소설 <살인자에게>(연담L)는 ‘일가족 동반자살’이라 불리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다룬 추리·스릴러 소설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통해 ‘동반자살’이라는 말이 은폐하고 있는 폭력성을 고발한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김선미를 만났다.


일곱 살 진웅의 눈앞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다. 형 진혁은 아버지의 칼날을 손으로 막아내고 도망한다. 형을 쫓아나간 아버지를 피해 침대 밑으로 숨은 진웅은 어머니의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본다. 돌아온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10년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한다.


그리고 10년 후, 아버지가 출소한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진웅의 집에 가족들이 모이고, 그날 밤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소설은 사건 후 닷새 동안의 이야기를 진웅, 아버지, 진혁, 할머니의 시점을 통해 그려 보인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사건의 진상을 드러낸다.


마치 ‘동반자살’이라는 사건이 어른과 아이 시점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문제로 인한 범죄를 추리·스릴러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를 연상시킨다. 김선미는 “사회적 문제를 장르를 통해 풀어내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소설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시점을 통해 ‘동반자살’의 의미를 다각도로 비춰본다. 김선미는 “‘가족 동반자살’ 이면에는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 문제도 있지만, 가족을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인식이 크다”며 “범죄라는 인식이 많이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재만은 사업 실패로 사채까지 쓰고 갚을 길이 없자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할 계획을 세운다. 수면제를 탄 우유를 가족들에게 마시게 한 뒤 살해하려 했지만, 배앓이를 하는 진웅이 우유를 마시지 않자 계획은 틀어진다. 재만은 오히려 “나를 속여?”라고 분노하며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은 가족들에게 칼을 휘두른다.


아버지의 칼날을 손으로 막아냈던 진혁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하다는 논리도, 내가 없으면 안될 것 같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랬다는 말도, 다 헛소리”라며 “나를 태어나게 했으니 내 생명권까지 자신의 손에 있다고 믿는, 그 이기적인 소유욕 때문에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거다”라고 말한다.


10년 만에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려 했던 아들들을 마주한 재만은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미래를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나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논리로 그 사실을 외면했다”고 후회한다.


소설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도 지적한다. 아버지를 향해선 ‘살인자’라고, 진웅과 진혁을 향해선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낙인찍으면서도 ‘동반자살’이라는 말을 그대로 쓴다. 유일하게 ‘동반자살’이란 말을 쓰지 않는 건 교도소의 방장이다. “오죽했으면 같이 죽으려고 했겠냐고? 그거 다 당신 변명이야. 당신 괴로움 잊겠다고 생목숨 죽여놓고선 다 같이 자살하려고 했으니 잘못 아니다, 하는 건 짐승들도 안 하는 짓”이라며 재만을 비웃는다.


김선미는 2015년 <살인자에게>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동반자살’ 사건의 형량이 낮았지만 최근엔 ‘살인’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형량이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아내와 자녀 등 3명을 살해한 뒤 자살을 시도한 이에게 징역 25년이 선고됐다.

“세이브더칠드런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최소 25명의 아이들이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부모에 의해 목숨을 잃었어요. 2018년 아동학대 사망자 수 28명에 버금가는 숫자라고 합니다. 정부에서도 위기가정에 관심을 갖고 예방에 노력해야 합니다.”

<살인자에게>는 지난해 CJ ENM과 카카오페이지가 공동 주최한 추미스(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지난 1월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자 3주 만에 누적 조회수 8만뷰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책을 점점 안 읽는다고 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더라고요. 회차를 나누어 연재를 하다보니 독자들이 단락 단락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의견을 댓글로 주셨어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연재할 수 있어 고무적이었어요.”

독자들과의 소통은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이책 결말과 달리, 카카오페이지엔 ‘외전’을 수록해 아픈 가족의 상처를 다독이는 결말을 그렸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2020.03.05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