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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세상 속 컬처랜드

민주주의 농단 시대가
소환하고 띄운 ‘인문 예능’

by경향신문

JTBC ‘차이나는 클라스’의 유시민과 tvN ‘어쩌다 어른’ 설민석

민주주의 농단 시대가 소환하고 띄운

인문학을 소재로 한 강연형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가 강연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왼쪽)와 역사 강사 설민석씨가 인기를 끈 tvN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방송화면 캡처

방송 콘텐츠에서 캐스팅은 최고의 마케팅이자 기획의 절반이다. 그런데 JTBC가 새롭게 시작한 '차이나는 클라스'가 오픈 흥행을 위해 내세운 인물은 유재석·강호동·박명수 등 특급 MC가 아닌, 목요일 심야 예능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다투는 '썰전'의 주역이자 정치인 출신의 전업작가 유시민이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tvN '어쩌다 어른'은 지난 1월7일 토요일 밤으로 방송시간을 옮기자마자 8.7%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15년 9월 방송을 시작한 이래 본가인 tvN에서는 1%를 넘어본 적 없고, 그때까지 자체 최고 시청률은 지난해 12월31일 tvN에서 재방송으로 기록한 3.8%였다. 기존 편성됐던 의 시청률도 평균 2~3% 내외였으니 대단히 놀라운 역사적인 수치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이끌어낸 인물은 그날 무대 위에 ‘선’ 유일한 출연자였던 한국사 강사 설민석이다.

 

설민석, 최진기 등 스타 강사와 유시민 등 지식인은 재작년 뜨거운 활약을 펼쳤던 스타 셰프들의 자리를 대신해 들어온 또 다른 직군의 대표 얼굴이다. 이들은 전공 분야 콘텐츠로 방송인에게 요구되는 예능감을 대신한다. 제작진은 예능과 일상의 거리를 좁힌 쿡방의 성공을 통해 이런 인물들과 함께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됐다.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폄훼 발언으로 최근 비판을 받은 설민석처럼 간혹 논란이 일 때도 있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시청자들은 킬링타임용 웃음이 아닌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실용적 가치와 의미를 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tvN 인문학 토크쇼 '동네의 사생활' '트렌더스', KBS '강연 100℃ 라이브', 독서 토크쇼 '노홍철X장강명 책번개', JTBC 강연 예능 '말하는 대로' '차이나는 클라스', 직업 특강 토크쇼 '잡스' 등 책 이야기를 하거나 교양과 사고의 폭을 넓히는 인문학이 예능의 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방송가에 강연의 시대가 있었다. 2010년대 초반 김미경, 김창옥 등 자기계발형 스타 강사와 스님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강연을 그대로 중계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탓에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생겨난 다른 인문 예능 프로그램들도 가능성을 엿봤다는 정도일 뿐 대박을 쳤거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준의 성과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시청자들의 새로운 욕구는 파악했다지만, 예능의 틀에 이를 어떻게 삽목할지 확실한 방법론은 아무도 제시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10월19일 최순실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다소 막연하게 받아들이던 인문학이 정치 담론을 포함하면서 당장 오늘 저녁 식탁에서 활용해볼 수 있는 쿡방의 레시피처럼 일상과 밀접한 콘텐츠로 거듭났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지식을 나누는 데 적극적인 정치인, 지식인, 강사들은 무대로 올라가고, 이런 부분에서 조심스러운 기존 방송인들은 방청객(시청자)의 자리로 내려가서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그러면서 일방향의 강의와 강연은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꿈꾸고 앞으로의 미래를 다 함께 고민하는 토크쇼, 토론 등 쌍방향식 콘텐츠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말하는 대로'는 유명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전하던 공감 콘셉트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기점으로 시대정신이 반영된 주제로 옮겨가면서 시청률과 화제성이 급등했다. 종편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인 '썰전'도 진단과 희망을 제시하면서 평균 시청률이 3%대에서 8%대로 수직상승했다. 그 낙수효과로 인해 TV조선 '강적들', 채널A '외부자들', MBN '판도라' 등 종편 정치토크쇼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첫 주제로 민주주의를 갖고 나와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설민석은 선조들의 역사를 본보기로 삼아 오늘의 혼란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방송가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지난 2년간 예능 기획에서 캐스팅이 곧 콘텐츠가 되는 경우는 백종원이 유일했다. 그런데 탄핵정국이 열리며 일상 콘텐츠가 먹는 것에서 머릿속을 채울 거리로 급격히 옮겨가며 캐스팅이 곧 콘텐츠가 되는 인물들의 명단이 늘어났다. 따지고 보면 서글픈 현실이 예능 콘텐츠가 변화하고 나아가는 데 박차를 가한 셈이다. 슬프게도, 국내외의 혼란스러운 정세는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당분간 유재석, 나영석 등 특급 MC나 스타 제작진 이상으로 이 시대의 화두를 쥔 지식 소매상들의 활약이 예능 전반에서 활발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교석 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