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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홍상수의 동화?
'클레어의 카메라'

by경향신문

홍상수의 동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의 20번째 장편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는 장소, 시간이 정해지면 거기서 한 편의 장편영화를 찍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완성된 대본은 없다. 당일의 조건에 맞는 상황과 대사를 아침마다 배우들에게 전달한다. 배우들은 역할의 대략적인 개요만 알고 있을 뿐, 영화의 전체 흐름은 알지 못한다.

 

21일(현지시간) 제 70회 칸국제영화제 특별상영 부문에서 공개된 '클레어의 카메라'는 홍상수의 20번째 장편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 기간 중 촬영됐다. 당시 김민희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아가씨'의 주연으로, 이사벨 위페르는 '엘르'의 주연으로 칸에 초청됐다. 홍상수 감독이 정진영, 장미희 등과 함께 칸을 방문하면서 순식간에 이들이 출연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실제 칸영화제가 배경이다. 칸에 출장중인 영화사 직원 만희(김민희)는 “정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사 양혜(장미희)에 의해 갑자기 해고당한다. 당황한 만희는 칸에 머물며 마음을 정리한다. 영화제 참석을 위해 칸을 방문한 소 감독(정진영)은 만희의 해고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복잡하다. 파리에서 온 클레어(위페르)는 소 감독, 양혜, 만희 등과 차례로 만난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클레어는 그들과 어울리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만희, 양혜, 소 감독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상영시간(69분)만 보면 '클레어의 카메라'는 홍상수의 ‘소품’이라 할만하지만, 홍상수 특유의 마법같은 서사 구조는 여전히 반짝인다. 위선, 질투, 기만, 그리고 타인에 대한 순수한 호의 같은 감정들은 분명 현실적이지만, 이는 몇 가지 영화적 장치를 통해 판타지적인 도약의 밑바탕이 된다. 마법을 부리는 물건은 제목 그대로 클레어의 카메라다. 자연스럽고 심상하게 등장한 이 소품에 영화의 서사를 쥐고 흔드는 마력이 내재한다는 사실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분명해진다. 클레어는 사진에 찍힌 사람은 찍히기 이전과 같지 않다고 여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고 했다. 만물은 유젼한다. 우리의 인식, 육체도 그러하다. 삶은 늘 변화하지만, 우리는 그걸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그 변곡점을 찍는다. 이쯤되면 ‘파리에서 온 음악교사’라는 클레어의 자기소개를 믿어야할지 의심스럽다. 클레어는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착하고 유쾌한 마녀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동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의 20번째 장편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의 동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의 20번째 장편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의 동화?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의 20번째 장편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포스터

홍상수의 영화는 늘 남성 예술가, 지식인의 세계였지만, 김민희가 홍상수 세계에 도착한 이후 무언가 달라졌다. 심지어 김민희가 출연하지 않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도 영화의 중심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민정이었고, 남성들은 민정 주위를 도는 위성처럼 행동했다. '클레어의 카메라'에서도 유일한 주요 남성 배역인 소 감독은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주정뱅이일 뿐이다. 양혜는 만희를 해고하면서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그리고 정직은 배워서 되는게 아니라 타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혜나 소 감독은 자기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인물들이다. 정직한 만희는 부정직한 사람들에 의해 곤경에 빠지고, 착한 마녀 클레어가 나타나 만희를 돕는다. 어쩌면 '클레어의 카메라'는 홍상수의 영화 중 가장 동화적인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칸|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