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여행]by 걷기여행길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청산도슬로길 5코스와 4코스를 이어 걷는다.

4코스는 구장리와 권덕리 사이 1.8km 거리로, 바닷가 산 중턱에 난 벼랑길이다. 벼랑길이지만 나무가 있어 낭떠러지 같은 느낌이 덜 든다. 하지만 벼랑길의 특성상 길이 끝날 때까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는 가슴 뻥 뚫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특히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들은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곳에는 굵은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5코스는 권덕리와 청계리 사이 5.5km 거리다. 옛 마을, 범바위가 있는 산, 장기미해변 등을 두루 돌아보는 길이다. 해발 200m가 조금 넘는 곳에 범바위가 있는데, 범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백미다. 범바위 전망대에 올라가면 남해에 펼쳐진 섬과 바다, 그리고 사람 사는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진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청산도 슬로길 4코스 낭길에서 본 풍경

5코스에서 4코스 방향으로 걷는다. 5코스와 6코스가 만나는 청계리에서 시작해서 장기미해변, 범바위를 지나 5코스와 4코스가 만나는 권덕리에 도착한다. 권덕리에서 4코스 낭길로 접어들어 4코스와 3코스가 만나는 구장리에서 걷기여행을 끝낸다.

 

이렇게 걸었던 이유는 햇볕이 강하지 않아 파란 바다와 푸른 숲, 맑고 투명한 공기의 색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오전에 범바위 전망대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범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 길의 백미이다.

청계리에서 범바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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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리 마을

안개가 바다를 삼켰다. 완도항으로 가는 길, 상록활엽수가 숲을 이루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완도항 앞 ‘주도 상록수림’도 희미하게 보인다. 청산도로 가는 7시 첫 배를 타려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배낭을 멘 청년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연인,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저 마다 사연을 안개에 묻고 기다리는 시간이 안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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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리 중촌 들샘

안개는 소리 없이 바다를 장악했던 것처럼, 소리 없이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섬을 밀어내며 청산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예정 보다 조금 늦게 청산도에 도착했다. 청산도 곳곳을 다니는 버스는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항구에 대기 중이다. 버스를 타지 않고 도청항 주변을 거닐었다. 여객선터미널 뒤쪽 김과 건어물, 말린 나물을 파는 골목에 들러 청산도 구경을 하고 완도로 나갈 때 사러오겠다고 약속하고 택시를 불러서 목적지로 향했다. “‘청계리 중촌 들샘’에 내려주세요.”

 

청산도 슬로길 5코스와 6코스가 만나는 지점이자 오늘 가야할 길의 출발지점이 ‘청계리 중촌 들샘’이다. 지붕 낮은 집들과 돌담이 어우러진 청계리 마을과 샘은 잘 어울렸다. 샘이 있는 마을, 한 세대 전만해도 농촌은 물론, 중소도시에도 샘이 있는 마을이 있었다.

 

돌담에 피어난 꽃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샘 위에서 길은 갈라지는데 오른쪽 골목으로 올라간다.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파란색 빨간색 지붕이 푸른 논과 산의 품에서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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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미 해변 가는 길

장기미해변으로 가는 길과 범바위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장기미해변 쪽으로 가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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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구들장논 통수로

길가 논 옆에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청산도 구들장논 통수로’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구들장 놓듯 돌을 쌓아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논을 만든 것이 ‘청산도 구들장논’이다. 구들장논에 물을 가두거나 빼기 위해 통수로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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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막을 지나면 장기미해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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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미해변. 둥글둥글한 큰 돌이 해변에 가득하다. 그래서 공룡알해변이라고도 한다.

길에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장기미해변이다. 둥글둥글한 큰 돌이 해변을 이루었다. 파도가 들고날 때마다 물이 차고 빠지는 소리가 음악의 선율 같다. 바람 부는 해변 돌에 앉아 그 소리를 듣는다.

 

장기미해변에서 범바위로 가는 길은 오르막 산길이다. 바다에서 출발했으니, 해발고도 0m에 가까운 지점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범바위가 있는 곳 높이가 해발 200m가 조금 넘는다. 고스란히 그 높이를 걸어야 한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장기미해변에서 범바위로 올라가는 산길 중간 정도에 있는 전망바위에서 본 풍경. 장기미해변이 작게 보인다.

장기미해변에 앉아 맞이했던 순한 바람처럼 천천히 숨을 쉬며 보폭을 줄여 걷는다. 길 중간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마음에 든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경은 더 넓게 멀리 보인다. 돌아본 풍경이 아름답다.

범바위에서 권덕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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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 가는 길에 있는 돌탑

산길은 범바위 주차장에서 찻길과 만난다. 주차장 한쪽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땀을 씻는다. 이제 300m만 가면 범바위다. 산 위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웅크린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범바위가 됐다고 한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범바위 전망대. 전망대 뒤에 범바위가 있다(왼쪽) / 범바위 앞 나침반들.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범바위 앞에 수십 개의 작은 나침반이 있는데,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범바위에 있는 광물성분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범바위 전망대에서 커피를 마시며 쉰다. 새벽 5시에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10시가 조금 넘었지만 배가 고팠다. 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범바위. 범바위 오른쪽 아래 바닷가 마을이 권덕리다.

햇살이 강하게 퍼지기 전, 오전의 빛은 푸른 숲의 색, 파란 바다의 색, 맑고 투명한 공기의 색을 있는 그대로 살린다. 오전의 빛은 그렇게 각각의 자연이 제 색을 도드라지게 발산하게 하면서도 그 모든 색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도록 구분지어주기도 한다. 그런 빛 속에 담긴 범바위와 그 주변 숲, 바다, 바닷가 마을의 오전 풍경은 참 맑게 아름다웠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범바위 전망대에서 본 권덕리 마을 풍경. 사진 오른쪽 위에 도청항이 작게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제법 넓게 멀리 보였다. 완도에서 출발한 배가 도착했던 도청항이 멀리 아주 작게 보인다. 읍리 마을과 팽나무도 아지랑이 때문에 아른거린다. 범바위 아래 바닷가 마을은 권덕리다. 순박하게 들어앉은 집과 구불거리는 길이 잘 어울린다. 바다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거북이를 닮은 지형은 화랑포다.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들은 바다에 떠있는 듯, 하늘에 매달린 듯 보인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범바위 전망대에서 본 권덕리 마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사이 정오가 지났다. 맑게 도드라졌던 풍경의 색감이 강한 햇살에 날카로워지거나 뭉개지기 시작한다. 길은 범바위 바로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권덕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청산도 슬로길 5코스와 4코스가 권덕리에서 만난다.

권덕리에서 구장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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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리 마을

권덕리에는 우물이 세 개 있다. 이곳에 마을을 만들 때부터 우물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 중간 쯤 되는 곳, 권덕리 삼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앞 나무그늘에 앉아 땀을 식힌다. 매서운 한낮 더위에 마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인다. 마을 돌담에 내리 쬐는 햇볕에 정적이 흐른다. 간혹 날아다니는 새소리에 정적은 더 깊어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데 마음이 편해진다. 넉넉해지는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나누어주고 싶었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권덕리 마을 우물(왼쪽) / 권덕리 마을에서 만난 백구

잠깐인 것 같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 권덕리 삼거리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바다 쪽으로 걷는다. 청산도 슬로길 4코스 낭길은 바다에서 숲으로 이어졌다. 데크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면 숲길이 나온다. 짧은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바닷가 산 중턱에 난 벼랑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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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리에서 낭길로 접어드는 곳. 데크로 만든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낭길은 권덕리와 구장리를 잇는 옛길이다.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나뭇짐을 지고 오가던 길이며, 바닷일을 하러 다니던 길이다. 아이들은 그 길로 학교를 다녔고, 대처로 나가기 위해 도청항으로 가려는 사람들도 그 길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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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4코스 낭길에서 본 풍경. 권덕리 마을 바다와 방파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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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4코스 낭길. 위험한 구간에는 굵은 밧줄로 난간을 만들었다.

벼랑길이지만 나무가 자라서 시야를 막은 곳은 벼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그런 곳도 벼랑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다닐 때에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특히 비온 뒤에는 바위가 미끄럽고 길이 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트이는 곳도 나오는데, 그런 곳에서 바라보는 망망한 바다 풍경에 마음이 통쾌하다. 풍경에 취하는 것도 좋지만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위험한 곳에는 굵은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구장리 갯가에서 청산도 슬로길 4코스와 3코스가 만난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청산도 슬로길 4코스 낭길은 구장리에서 3코스와 만난다.

청산도 슬로길 5코스 청계리에서 시작한 걷기여행을 4코스 구장리에서 끝냈다. 구장리에서 걸어서 30~40분이면 도청항에 갈 수 있지만, 완도로 나가는 마지막 배를 타려고 택시를 불렀다. 막배는 6시30분에 출발한다. 6시에 표를 끊고 아침에 들렀던 그 골목으로 갔다. 아주머니들이 물건을 걷고 있었다. 파장 직전이었다.

바다와 숲, 마을이 만든 맑은 풍경

청산도 슬로길 4코스 구장리

청산도 구경하고 와서 산다고 했는데 벌써 장을 접으시면 어떻게 하냐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 골목 아줌마들이 환한 얼굴로 반기신다. 그 골목에 세 집이 장사를 하는데, 세 집에서 골고루 샀다. 돌김, 말린 표고버섯, 말린 도라지, 말린 고사리, 홍새우, 돌새우, 미역귀... 완도로 돌아가는 배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노을을 보았다.

코스 요약

  1. 걷는 거리 : 5코스 5.5km. 4코스 1.8km. 총 7.3km
  2. 걷는 시간 : 5코스 2시간30분. 4코스 1시간. 총 3시간30분.
  3. 걷는 순서 : 5코스 청계리 중촌 들샘 - 장기미해변 - 범바위 - 권덕리 - 4코스 낭길 시작지점 - 낭길 - 구장리

교통편

  1. 찾아가기 : 청산도 도청항에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항구에 버스가 기다린다. 청산도 슬로길 5코스와 6코스가 만나는 청계리로 간다고 말하고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청계리 입구 정류장에 내려서 ‘청계리 중촌 들샘(청계리 마을 안에 샘이 있다.)’으로 찾아가면 된다. 택시를 탈 경우에는 ‘청계리 중촌 들샘’까지 가달라고 하면 된다.
  2. 돌아오기 : 3코스와 4코스가 만나는 구장리는 대중교통이 없다. 구장리에서 도청항까지 걸어서 약 30~40분 정도 걸린다. 택시를 불러서 갈수도 있다. *청산도 택시 : 061-552-8519. 개인택시(010-6552-8747). 청산택시(010-9569-5522. 011-608-1502)

TIP

  1. 자세한 코스 정보 : 청산도 슬로길 04코스 낭길, 청산도 슬로길 05코스(범바위길-용길)
  2. 화장실 : 청산도 도청항. 청계리. 범바위 전망대. 권덕리 마을회관 앞. 구장리
  3. 식당(매점) : 청산도 도청항 주변 식당과 슈퍼. 범바위 전망대 매점. 권덕리에 가게 있음. 구장리에 매점 있음.
  4. 숙박업소 : 청산도 도청항 주변 숙박시설. 권덕리와 구장리에 민박 있음.
  5. 코스 문의 : 완도군청 관광정책과 061-550-5432

글, 사진: 장태동

2017.09.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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