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여행]by 걷기여행길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온 대지를 태울 듯 이글대던 태양도 많이 누그러졌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 속에서는 얼핏 가을의 냄새도 맡는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 제 고집을 부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자연의 이치... 새삼스레 깨닫는다. 하늘이 푸르게 열린 날,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계단식 논이 있는 다랭이마을로 잘 알려진,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에는 비밀스러운 길이 있다. 다랭이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내려와서 아슬아슬한 절벽도 지나고 조붓하게 이어지는 숲길도 지나며 남해 금산과 앵강만이 만들어 내는 장쾌한 풍광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아주 길지는 않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길손을 맞는 길. 바로 다랭이길이다.

설흘산 아래의 가천마을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가천 다랭이마을 전경-자연과 인공이 잘 어울린 풍경이다.

다랭이마을 가천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산은 응봉산(472m)과 설흘산(482m)이다. 산 이름은 다르지만 두 산은 모두 한 산줄기로 이어져 있어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산을 함께 이어 걷는다. 응봉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 하나가 남해로 뿌리를 내리고 설흘산에서 벋어 내린 산줄기 하나도 남해에 발을 담갔다. 이렇게 두 산줄기 사이에 손바닥만 한 우묵한 골짜기가 생겼는데 사람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삶을 일궜다.

 

가천마을의 유래에 대해 자세하게 전해지는 내용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가문에 전해지는 자료로, 신라 신문왕 시절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었지만 조선 중엽부터 가천(加川)으로 고쳐 부른다고 한다. 응봉산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가천마을의 서쪽을 흐르고 있고, 현재의 홍현마을에도 냇물이 하나 있어 두 냇물 사이의 마을이라서 간천(間川)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지금이라면 두 산줄기 사이의 마을이니 간산(間山) 그래서 가산마을로 불러도 되지 싶다.

다랭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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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 다랭이마을

가천마을의 별명이 다랭이마을이다. 이 마을에 다랭이논이 많기 때문이다. 다랭이논의 표준어는 다랑이논 또는 다락논이다. ‘비탈진 산골짜기에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좁고 작은 논’ 이라는 뜻이다. 산에서 흘러내린 산골짜기 좁고 경사가 급한 땅에 터전을 일구었으니 밭이며 논이며 너르게 장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웠던 이 마을의 조상들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돌로 두렁을 쌓고 계단식으로 논을 일구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곡선 논배미의 숫자가 108층 이라고 하니 얼마나 어렵고 고단했을까? 이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농부가 일을 마치고 자기 논을 세어보는데 아무리 세어도 한 배미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세어 봤지만 한 배미가 부족해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집으로 가려고 삿갓을 들었는데 그 밑에 한 배미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아주 작은 논을 삿갓배미라고 한다.

 

조상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다랭이논이 이제는 이 마을의 관광자원이 되었다. 남해군만 하더라도 곳곳에 다랭이논이 많이 있지만, 산과 바다 그리고 마을의 모습과 다랭이논이 만들어내는 풍광은 가천마을이 제일이기에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명승 제15호’로 지정되었다.

다랭이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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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길은 마을의 외곽 길을 따라 내려간다.

다랭이길 걷기 출발은 마을 위쪽에 있는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소’부터지만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다녀올 곳이 있다. 다랭이마을의 전경을 확인할 수 있는 전망대가 관광안내소에서 약3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곳부터 다녀오는 것이 순서다. 다랭이마을 전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전망대는 관광안내소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찻길을 따라가면 된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가천 암수바위-오른쪽 뒤의 누워있는 바위가 암바위, 앞쪽이 숫바위다

전망대를 다녀와서 걷기 시작하면 마을 외곽의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중간에 아주 특이하게 생긴 바위를 만난다. 독특한 한 쌍의 바위가 조금 떨어져 있는데 안내판은 ‘가천 암수바위’라고 소개한다. 암바위는 만삭이 되어 배가 불룩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있고, 숫바위는 남자의 성기나 돌칼 같은 모습인데 기울어져 서 있다. 다랭이마을에서는 이 암수바위를 미륵으로 부르면서 섬기는데, 다산과 풍요를 빌던 선돌에 불교의 미륵신앙이 습합되어 마을의 수호신으로 격상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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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아래에 있는 가천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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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서 사진 앞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다랭이길이다.

가천 암수바위와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 두 곳을 지나고 응봉산, 설흘산 능선과 다랭이마을이 어울린 모습과 작별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다랭이길이 시작된다. 마을 농로를 따르던 길은 이내 절벽으로 아슬아슬 하게 이어지는 길로 바뀐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발밑을 잘 보면서 조금만 조심하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 절벽 잔도, 조붓하고 편안한 숲길, 하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하고 컴컴한 숲도 지난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다랭이길은 절벽으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지만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걷기 좋은 조붓한 숲길로도 이어진다.

‘다랭이길’은 ‘남해 바래길 2코스 앵강다숲길’의 ‘다랭이마을~홍현마을 구간’과 완벽하게 겹친다. 다랭이길의 이정표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남해 바래길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 된다. 절벽으로 숲으로 이어지던 길이 갑자기 시야가 터지면서 남해 금산과 앵강만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풍광으로 바뀌면 걸음의 종착지인 홍현마을이 지척이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숲길이 끝나면 시야가 터지면서 앵강만과 금산 줄기가 한눈에 잡힌다.

홍현 해라우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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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 해라우지마을

홍현마을 입구의 높지막한 언덕에서 앵강만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한숨을 돌린 후에 언덕을 내려간다. 바닷가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홍현 해라우지마을이다. 마을의 공식 이름은 홍현(虹峴)마을이다. 홍현은 ‘무지개고개’라는 뜻인데,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홍현마을에서 임포마을로 넘어가는 길에 무지개고개로 부르는 곳이 있어 마을 이름을 홍현으로 했다고도 소개하고 있다. 해라우지마을은 홍현마을의 다른 이름인데 합성어다. 마을 앞 바다인 깨끗하고 아름다운 앵강만의 ‘해’, 소라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서 ‘라’, 마을에 가마우지가 많이 서식한대서 ‘우지’ 이렇게 해서 ‘해라우지’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홍현 해라우지마을 앞의 석방렴-고기가 얼마나 들었는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홍현마을의 바닷길을 걷다보면 바닷가에 쌓은 반원의 돌담을 만나게 된다. 안내판에는 석방렴(石防簾)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석방렴은 돌담을 쌓아 만든 원시적 어로 시설인데, 돌로 만든 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밀물이 되면 돌담 안으로 바닷물과 함께 고기들이 들어오게 되고, 썰물이 되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 한 고기들은 돌담 안에 갇히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고기를 잡는 것인데, 다른 이름으로 석전(石箭), 석제(石堤), 독살 등으로도 불린다. 홍현마을은 앵강만에서는 최초로 석방렴을 설치한 마을이라는데 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체험활동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돌로 만든 석방렴 대신 대나무를 세워서 만든 것은 죽방렴이라고 한다. 남해군에는 죽방렴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최고급 멸치로 비싼 값에 거래된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홍현마을의 또 다른 석방렴-앞쪽의 너른 바다가 앵강만이다. 남해 바래길 2코스는 앵강만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석방렴까지 보고 나면 다랭이길 걷기도 끝이다. 남해 바래길은 계속 앞으로 이어지면서 길손을 유혹하지만 출발이 늦은 터라 더 이상 걷기는 무리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앵강만을 바라보며,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서 걷기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가을의 길목에서 남쪽 바다를 걷다

홍현마을 작은 포구에 노을이 내리기 시작한다.

코스 요약

  1.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소 ~ 다랭이마을 끝·숲길 입구(1km) ~ 숲길 끝(3.1km) ~ 홍현마을 버스정류장(5.1km) (총 5.1km, 1시간 40분 소요*, 난이도 보통)
    *순 걷는 시간. 답사시간, 간식시간, 쉬는 시간 등은 포함하지 않음

교통편

  1. 찾아가기 : 남해공용터미널에서 가천다랭이마을로 가는 버스를 탄다. 남해공용터미널 055-863-5056 남흥여객 055-863-3507
  2. 돌아오기 : 홍현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남해공용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남해공용터미널 055-863-5056 남흥여객 055-863-3507

TIP

  1. 자세한 코스 정보 : www.durunubi.kr
  2. 화장실 :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소, 다랭이마을, 홍현마을 석방렴 부근
  3. 음식점 및 매점 :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소 부근에 매점, 다랭이마을에 식당과 매점, 홍현마을 버스정류장 부근에 간이매점
  4. 숙박업소 : 다랭이마을과 홍현마을에는 민박과 펜션이 많이 있다.
  5. 코스 문의 : 한국해양재단 02-741-5278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센터 055-863-3893 남해바래길 055-863-8778 http://www.baraeroad.or.kr/

글, 사진: 김영록(걷기여행가·여행 작가)

2017.09.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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