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힐링 여행, 정약용 남도유배길 2코스

[여행]by 걷기여행길

다산과 영랑의 발자취를 따라 강진에서 보낸 하루

정약용 남도유배길 2코스

강진 힐링 여행, 정약용 남도유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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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힐링 여행, 정약용 남도유배길

우리나라 지도에서 남서쪽 끝자락에 붙은 강진은 위치만큼이나 멀고 먼 땅이다. 기차가 다니지 않고 공항도 없어서 버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4시간 반이나 걸린다. 그만큼 오지여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배지기도 했다. 그러나 답사여행의 측면에서 보면 이곳은 수도다. 그 유명한 유홍준의 ‘남도답사 1번지’가 바로 강진이고, 그 내면엔 맛깔스런 남도의 음식과 내로라하는 고찰, 다산의 실학정신, 영랑의 시혼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강진의 매력을 모두 담고 ‘정약용 남도유배길’이 지난다. 그중 영랑생가와 사의재, 강진만을 지나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거치는 2코스는 이 길의 백미다.

‘시문학파’의 시혼이 깃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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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남도유배길 2코스의 출발지는 영랑생가다. 총 4코스인 남도유배길의 번호순대로라면 1코스(주작산 휴양림길)가 끝나는 다산수련원에서 영랑생가 방향으로 와야 하지만 이 코스의 이름에 충실하자면 그 반대가 맞다.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온 다산이 처음 몇 해를 묵은 곳이 사의재고, 그 후 다산초당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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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로 올라가는 보도블록에 영랑의 시가 적혀 있다. 중학교 때 배운 것 같은, 감수성을 한껏 자극하던 그의 시어들…. 한 구절 한 구절 되새기며 가노라니 어느덧 영랑생가 입구. ‘시문학파기념관’이 먼저 발길을 붙든다. 1930년 3월에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며 창간한 시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인들을 ‘시문학파’라고 부른다. 김영랑을 비롯해 박용철과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이하윤이 참여했고, 나중에 김현구, 신석정, 허보도 함께 했다. <시문학> 동인인 이들은 서정시를 쓰기 힘들던 일제강점기의 현실 속에서도 서정시에 집중했다. 우리말이 억압당하고 일본어를 강요받던 때에 순수시라는 그릇 안에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체취를 담아낸 이들이다. 기념관 앞에는 <시문학> 제1호 표지와 시문학파의 사진이 새겨진 조각 그리고 시문학파 3인으로 불리는 김영랑과 정지용, 박용철의 시인상도 있어서 당시로 돌아간 듯한 묘한 느낌도 든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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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느낌의 영랑생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같은 선생의 시가 왜 그토록 주옥같은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 강진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초가는 마당 가득 모란과 동백, 은행나무가 예쁘고, 돌담을 따라 속삭이듯 내려앉은 햇살도 탐스럽다.

강진 힐링 여행, 정약용 남도유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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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 뒤뜰에서 이어진 대숲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세계 모란공원’이 있다. 세계 각국의 모란을 모아 식재한 정원이 강진만을 내려다보며 예쁘다. 5월쯤 모란이 피는 시기에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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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에서 충혼탑이 있는 소공원으로 가는 길에 ‘금서당’이 눈길을 끈다. 무슨 사당일까 싶었는데,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니 ‘금서당(琴書堂) 옛터’라는 해설판이 보인다. 내용을 보니 이곳이 현재의 강진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 금릉학교가 있던 곳으로, 강진 신교육의 발상지란다. 영랑도 이곳 금서당 출신이다. 100년 전인 1919년 4월 4일, 전라남도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이곳에서 일어났고, 강진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곳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의미 깊은 곳이다. 1950년 이후엔 강진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인 완향 김영렬(1923~2003)이 반파된 건물을 보수해 작업실로 사용했다는 이곳 마당에 서니 강진만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홀로 술을 들고 싶거든 다산 주막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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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당을 나온 길은 좁은 골목과 계단, 충혼탑이 선 소공원을 지나 사의재로 이어진다. 동문 밖 주막이던 이곳은 다산선생이 강진에 도착한 1801년 겨울부터 4년을 머문 곳이다.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에 머물게 된 다산은 이곳을 ‘四宜齎(사의재)’라 이름 지었다.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할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 다산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강진읍 여섯 제자를 가르치며 <경세유표>와 <애절양>을 집필했다. 마당 한켠엔 정호승의 시 <다산 주막>이 새겨진 시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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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술을 들고 싶거든 다산 주막으로 가라 / 강진 다산 주막으로 가서 잔을 받아라 / 다산 선생께서 주막 마당을 쓸고 계시다가 / 대빗자루를 거두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반겨주실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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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어처럼 다산이 사는 집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선생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비록 복원한 사의재지만 그 만듦새가 예사롭지 않아 올 적마다 기분 좋다. 나지막한 돌담과 담장에 기댄 석류나무가 어우러진 초가 사의재는 조선시대 주막과 귀양살이 중인 다산의 고매한 선비정신이 절묘하게 뒤섞인 분위기며, 사의재 앞엔 지금도 많은 양의 맑은 물이 샘솟는 오래된 동문샘과 빨래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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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 바로 앞에 ‘사의재 저잣거리’가 지난 12월 21일 문을 열었다. 한옥 숙박시설과 전통차 체험관, 동문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잡화점에 누각까지 들어섰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세트장 같지 않게 제대로 복원한 건물과 공간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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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를 벗어난 유배길은 강진군 보건소를 만나기까지 750m쯤 직진한다. 그동안 세 번의 신호등과 강진전통시장을 지나며, 농어촌버스승강장도 만난다. 온갖 부품과 폐자재들이 고물상처럼 쌓인 농기계수리점이 인상적인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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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90도 꺾이며 강진군 보건소를 통과한 길은 다시 도로를 따라 탐진강을 향해 직진으로 내려선다. 이 구간에서는 호남지방 통계청과 파출소도 지난다. 650m쯤 간 지점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이더니 이학래길을 거쳐 남포마을에 닿는다.

강진 힐링 여행, 정약용 남도유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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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마을은 강진이 자랑하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품고 있다. 유배길을 걸으며 생태공원의 진면목을 만날 수는 없으나 남포마을 일대의 자연환경의 우수함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탐진강과 강진천이 만나 강진만으로 흘러드는 곳에 형성된 20만 평의 갈대군락지가 장관이며, 주변 드넓은 습지엔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를 비롯한 수많은 철새가 찾아드는 해양생태계의 보고다. 조선시대 전라도에서 해상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 강진이었고, 강진에 있던 15개 포구 중 이곳 남포의 남당포구가 가장 컸다고 한다. 제주도로 가는 배도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그때의 위상은 참으로 대단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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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마을 끝, 강진천에 예쁜 남포다리가 걸려 있다. 다리 중간에서 보는 강진만 일대는 온통 억새 천지. 20만 평이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런 장관이 또 없다. 그 사이 물길을 따라서 청둥오리들의 군무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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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마을에서 철새도래지에 이르는 해안엔 우리나라 제주도를 비롯해 남해안 일대가 서식지인 ‘멀구슬나무’가 종종 보인다. 낙엽수여서 지금은 구슬 같은 열매만 주렁주렁 매단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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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다리를 건너 후 철새관찰지까지 3.5km는 강진만 둑에 걸친 강진남포자전거도로를 따른다. 중간에 정자가 다섯 개 놓여 있고, 광활한 억새군락지와 갯벌이 이어지며 강진만의 독특한 풍광을 펼쳐놓는다. 오른쪽으로는 다산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품은 만덕산이 우뚝하고, 강진만의 칠량바다가 그 앞으로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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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 안에 관찰용 망원경과 데크가 설치된 철새관찰지는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 차원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망원렌즈로 당겨서 보니 멀리 갯벌 가운데로 큰고니떼와 두루미 같은 귀한 새가 보인다.

 

철새관찰지를 지난 유배길은 곧 바다를 벗어나더니 만덕산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 신평마을로 접어든다. 겨울을 맞은 텅 빈 들판엔 벼 그루터기가 열병을 하는 군인처럼 도열해 있고, 어떤 논엔 보리가 파랗다. 양지바른 곳으론 귤밭도 보인다. 가끔씩 백련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나 싶더니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광 백련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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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白蓮寺)는 이름과 달리 붉은 꽃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동백숲에 둘러싸여 있다. 조선시대엔 만덕사로 불리기도 했다. 통일신라 말기에 창건된 백련사는 고려시대에 교세가 확장되었으나 조선조의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이 천시되고, 남해안 일대의 곡창지대와 고려청자의 약탈을 목적으로 출몰하던 왜구로 인해 사세가 기울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꺼져가는 심지 같던 백련사를 다시 일으킨 데는 동생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전국을 유람하던 중 이곳 백련사에 들러 8년을 기거한 효령대군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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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대웅보전의 편액 글씨는 원교 이광사의 작품이다. 특히 세로로 쓴 ‘대웅(大雄)’과 ‘보전(寶殿)’은 각각 다른 나무판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그 사이를 공포가 가르고 있다. 기가 막힌 배려다. 큰 절집의 불당 편액들은 조선후기 내로라하는 명필들의 각축장에 다름 아니었는데, 이곳과 두륜산 대흥사 대웅보전 편액 등이 원교의 작품이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것으로, 절 오른쪽의 차밭, 부도밭과 어우러진 동백림이 특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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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차밭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절 오른쪽의 작은 능선을 넘으면 다산초당이 멀지 않다. 만덕리 귤동마을 뒤 만덕산 기슭에 터 잡은 다산초당은 정약용의 대표적인 유배지자 다산학의 산실로, 다산은 사학[천주교]에 물든 죄인 신분으로 떠나온 강진 유배생활 18년 중 1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다산의 외가쪽 먼 친척이던 해남윤씨들의 초빙으로 이곳 다산초당에 거하며 책을 읽고 몰려드는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원래 있던 초당 좌우로 동암과 서암을 새로 짓고 자신은 동암에 기거했으며, 초당은 교실로, 서암은 제자들의 거처로 삼았다. 원래는 풀로 이엉을 얹은 초당이었는데, 1957년과 1974년의 복원 때 기와지붕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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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과 동암의 현판이 눈길을 끈다. 초당엔 ‘茶山草堂(다산초당)’이, 동암엔 ‘寶丁山房(보정산방)’과 ‘茶山東菴(다산동암)’이라 쓴 현판이 걸렸는데, 그 필체가 예사롭지 않아서다. ‘다산초당’과 ‘보정산방’은 평소 다산을 무척 존경하던 추사 김정희의 글씨고, ‘다산동암’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초당 옆의 네모난 연못에 동백꽃이 어른거릴 때 이곳은 가장 초당답다. 초당 앞 작은 마당 한가운데엔 다산이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다조(茶竈, 차를 달이는 부뚜막)가 있고, 초당 서쪽 바위엔 손수 써서 새긴 암각문 ‘丁石(정석)’도 볼 수 있다.

걷기 여행 필수 정보

  1. 걷는 시간 : 5시간(15km)
  2. 걷기 순서 : 영랑생가-금서당-소공원(충혼탑)-사의재(저잣거리)-강진오일장-농어촌버스승강장-강진농협자재센터-강진군 보건소-호남지방 통계청 강진사무소-보강음식점-목리경로당-탐진강촌(식당)-2번국도 지하도-남포마을-남포다리(멀구슬나무쉼터)-전라도 천년 가로수길(남포 자전거도로)-철새도래지 전망대(임천배수장)-신평마을-백련사-다산초당-다산수련원(전남 공무원 교육원)
  3. 코스 난이도 : 중
  4. 교통편 : 강진버스터미널에서 도암면의 옥전과 망호로 가는 군내버스가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리를 거친다. 20분쯤 걸리며, 요금은 1300원. (문의 : 강진교통 061-432-9618, 강진버스터미널 061-432-9666)

걷기 여행 TIP

  1. 숙박 : 2코스가 출발하는 강진읍내에 숙박시설이 많다. 터미널 근처에 가필드모텔(061-433-1212)과 부성파크모텔(061-434-2081) 등이 있고, 걸어서 7분 거리에 강진자유게스트하우스(010-9101-9003)도 있다.
  2. 홈페이지 : www.gangjin.go.kr/culture
  3. 문의 : 강진군청 061-430-3114
  4. 길 상세 보기 : 걷기여행 | 두루누비 전국 걷기여행과 자전거여행 길라잡이 www.durunubi.kr

"해당 길은 2019년 1월 이달의 추천 걷기 여행길로 선정되었습니다"

 

글, 사진 : 이승태 여행작가

2019.01.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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