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여행기억을 삭제하라

[여행]by 매일경제
불쾌한 여행기억을 삭제하라

사람은 자기 돈을 낼 때 대체적으로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이걸 '지불의 고통(pain of paying)'이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자신의 저서 '부의 감각'에서 이 용어를 언급했다. 그는 "지불의 고통이란 자기가 가진 돈을 포기한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가 느끼는 통증이다. 이 고통은 지출 자체가 아니라 지출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 고통은 기본적으로 지출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쾌한 감정을 말하는데,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고 한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찍어 보니 자기 돈을 쓸 때 실제 자극받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더라는 것이다. 쇼핑하면서 스트레스 해소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소시민인 나는 돈을 쓸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지불의 고통을 받는 쪽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인생사가 그렇듯, 이런 고통이 삶의 지혜가 된다.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절제하게 되고 그래서 부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불의 고통으로 비명을 지를수록(?) 스트레스는 커지지만 '지름신'에서는 해방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절약한 돈이 지불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행복감을 줄 거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이 법칙을 여행에 적용시켜 보자. 여행은 '지불의 고통'의 연속이다. 루프톱 풀장이 있는 5성급 호텔에 묵고 싶은가? 당연히 묵을 수 있다. 돈만 더 내면 된다.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만찬을 즐기고 싶다고? 물론 가능하다. 돈만 더 내면 된다. 미리 비용을 지불한 패키지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일정에 포함된 쇼핑점에서 우리는 뭔가 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압박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혼자 떠나기도 하고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떠나기도 한다. 지불의 고통을 뛰어넘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무엇보다 여행의 마지막을 잘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기억은 결말이 전체를 규정하는 데 많이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여행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중요하다. 지난겨울 강원도 스키장에서 멋진 활강을 할 땐 3즐거웠는데, 여행 마지막날 바가지요금 때문에 숙박업소 주인과 다퉜다면 그 여행은 아무래도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여행의 결말이 대체로 성가시고 피곤하고 우울하다는 데 있다. 숙박료를 계산하며 다음달 카드값을 걱정해야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미니바 요금에 놀라고, 같이 여행을 간 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피곤한 일정이 이어진다. 집에 도착해 한참 동안 여행가방을 정리해야 하고, 깜박 잊고 여행지에 두고 온 소중한 물건으로 짜증까지 난다. 여독을 풀고 싶은데,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하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지불의 고통을 감수하고 떠난 여행인데, 이런 결말로 불쾌한 추억이 되게 할 수는 없다. 댄 애리얼리는 여행을 행복하게 끝내는 팁을 소개한다.


첫째는 지불의 고통 이전에 여행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정리하라는 것이다. 체크아웃, 귀가, 정리, 일상으로의 복귀 등 피곤하고 불편한 일련의 과정을 밟기 이전에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게 방법이다. 가능한 그 자리는 즐겁게 축하하는 자리면 좋다. 이 과정에서 지불의 고통을 수반하는 각종 절차는 자연스럽게 여행 후 일상이 돼 버린다. 여행은 그 일상 이전에 마무리됐으므로 우리 기억은 즐거운 추억이 된다.


둘째는 심리적 여행 기간을 더 늘리는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 과정도 여행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방법이다. 대신 마지막은 이렇게 정리해야 한다. 여행 할 때 즐거웠던 추억과 경험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행복한 감정을 되새기는 것이다. 결말이 행복하면 중간에 있었던 지불의 고통쯤은 얼마든지 날려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최용성 여행+ 대표

2019.04.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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