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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빈집 재생위해 맹지까지 산다는 서울시

by매일경제

박원순 `빈집 프로젝트`

올해 400가구 목표인데

넉달간 25가구에 그쳐

 

매입 기준 사실상 삭제

못쓸 땅에 세금낭비 우려

매일경제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0년 만인 2015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서울 성북구 성북4구역 모습. 200여 가구 가운데 약 50가구가 빈집이고 사실상 폐허로 방치돼 있다. [매경DB]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8월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 달살이를 마치고 나오면서 강북 균형 발전을 위한 역점 사업으로 발표한 '빈집 활용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점점 꼬이고 있다.


매입할 만한 빈집이 없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맹지(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토지)나 공사 여건이 열악한 곳에 위치한 빈집도 사들이기로 최근 매입 기준을 바꿨다.


애초 언덕길과 좁은 도로에 있는 낡은 단독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고 저층 주거시설로 공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아파트를 선호하는 주거 트렌드와 맞지 않았는데, 이제는 쓸모없는 맹지까지 사들이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혈세 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따르면 시는 최근 '빈집 활용 도시재생 프로젝트 관련 사업 추진 중간점검 및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했다. 이번 빈집 프로젝트 세부 실행계획의 핵심 내용은 빈집 매입 원칙을 기존 '활용 가능성을 고려한 선별적 매입'에서 '원칙적 모든 빈집 매입'으로 바꾼 것이다.


그동안 시와 SH공사의 빈집 매입 기준은 1순위가 건축허가가 가능한 빈집(접도 조건 양호, 적정 대지면적 등), 2순위는 생활 안전과 주거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빈집(폐가 등)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도시재생 측면에서 보다 유연하게 접근해 맹지나 소규모 필지, 공사 여건이 열악한 곳 등 활용 가능성이 매우 낮은 곳에 있는 빈집도 사들이기로 했다. 사실상 매입 기준을 없앤 셈이다.

 

매일경제

서울시가 이처럼 빈집 매입 기준을 변경한 건 목표치 대비 실제 매입 속도가 크게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당초 올해 말까지 빈집 400가구를 사들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올해 빈집 재생 예산을 2444억원이나 편성했다. 박 시장이 작년 8월 밝힌 빈집 1000가구를 매입해 리모델링 등을 거쳐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저렴한 주택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정책이 올해부터 본격 실행되는 것이다. 내년부터 향후 3년간은 매년 200가구씩 추가 매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시가 실제 매입한 빈집은 25가구(6.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구별로는 강북구 8건, 도봉구 6건, 성북구 6건, 종로구 3건, 서대문구 2건 등 강북 지역 5개구에 집중됐다. 1분기까지 빈집 매물 총 599건이 접수됐지만 상당수가 80~150㎡ 소규모 필지이거나 맹지여서 리모델링과 재개발이 어려운 것으로 분류돼 매입이 보류됐다.


서울시 빈집 재생사업 담당자는 "빈집 매입 실무기관인 SH공사에서 4월부터 전담 조직을 두 배로 확대했기 때문에 5월부터는 매입 주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 담당자는 매입 기준 변경에 대해서는 "기준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원래부터 모든 빈집 매입이 원칙인데, SH공사가 임대주택 4000가구 공급 목표를 맞추기 위해 실무적으로 주택 공급이 가능한 빈집만 우선 매입하니까 우선순위를 없애라고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빈집 매입 작업을 하고 있는 SH공사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시와 같은 입장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내부에서는 '맹지까지 사라고 하는 건 좀 심하지 않냐'는 불만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는 맹지나 공사 여건이 열악한 곳에 있는 빈집을 매입해 인접 지역과 연계하며 소규모 정비사업을 벌이거나, 정비사업이 여의치 않을 경우 빈집을 철거한 후 텃밭이나 소공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같이 계획을 변경하면 당초 책정된 예산만으로 빈집을 활용해 2022년까지 새 임대주택 4000가구를 공급한다는 시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비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이 공약한 빈집 매입 목표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쓸모없는 땅까지 사겠다는 것이 아닌지 다분히 의심스럽다"면서 "결국 목표로 세운 임대주택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당초 책정된 것보다 훨씬 많은 시민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