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떠난 스파이더맨과 `3의 저주`

[컬처]by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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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 씨, 저 속이 이상해요…." 마블의 차세대 기둥이었던 스파이더맨이 가루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또 방랑길에 올랐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디즈니 산하 마블 스튜디오와 소니픽처스의 영화화 판권 협상이 최종적으로 결렬된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를 시작으로 몇 편의 팀업 무비와 두 편의 단독 주연 영화를 통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안착했던 스파이더맨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마블 스튜디오와 결별하게 됐다. 이에 따라 스파이더맨 영화 3편과 4편은 소니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다.


이번 협상 결렬의 배경을 놓고 디즈니 측이 재계약 때 불합리한 조건을 내걸며 갑(甲)질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영화화 판권을 쥐고 있는 소니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라는 추측까지, 협상 결렬의 책임을 놓고 설(說)들만 무성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두 공룡이 주고받은 협상 내용과 내막을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영화팬들에겐 아쉬운 결정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올해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MCU의 페이즈3와 페이즈4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욱 짙어진다(본편 이후 쿠키 영상을 통해 충격적인 전개를 예고한 점도 안타까움을 더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대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마다 반복된 '3의 저주'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동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3의 저주'란 3편을 아예 못 만들고 리부트되거나, 만들어도 졸작 평가를 받으며 속편 제작이 무산되는 상황을 뜻한다. 역대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를 둘러싼 3의 저주를 알아보자.

'구관이 명관' 샘 레이미 트릴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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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통칭 샘스파.

1990년대 시장 침체로 도산 직전까지 내몰린 마블 코믹스가 헐크, 엑스맨, 판타스틱4 등 원작 코믹스의 영화화 판권을 여러 영화사에 나눠 팔았는데, 스파이더맨도 그때 판권이 팔린 캐릭터 중 하나였다. 특히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은 1985년부터 다수의 영화사가 얽힌 지난한 소송전을 거쳐 1999년 소니픽처스가 스파이더맨 판권을 영구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2002년 개봉한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은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 영화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제대로 증명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미청년 토비 맥과이어를 세계 제일 '찌질남'으로 등극시킨 업보는 있지만, 피터 파커의 일상과 영웅으로서 삶이 사사건건 충돌하고 꼬이는 슈퍼히어로의 숙명을 대체로 유쾌하게, 때론 진중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특히 '스파이더맨2'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모범이다. 감독의 주특기인 호러영화의 문법을 제대로 이식한 닥터 옥토퍼스의 탄생 장면과 폭주하는 열차를 맨몸으로 막아내는 스파이더맨의 희생 장면은 아직까지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는 3편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소니픽처스가 영화 제작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과정에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개국공신인 샘 레이미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으며 결국 감독이 하차하게 된 탓이다. 제작사와 감독의 불화는 영화적 완성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베놈과 샌드맨을 빌런(악당) 투톱 체제로 내세우면서 스토리가 이도저도 아닌 산으로 간 탓에 영화가 산만하다. 애초에 샘 레이미 감독은 베놈 없이 샌드맨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자 했지만, 흥행에 욕심 낸 제작사인 소니픽처스 측에서 원작 코믹스의 인기 캐릭터였던 베놈을 출연시키기를 강요하면서 일이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맛있는 피자와 맛있는 파인애플을 합친다고 맛있는 파인애플피자가 될 수 없듯, 악당과 악당을 합쳤지만 두 배로 재밌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 2편에서 구축한 인기와 기대감으로 시리즈 최대 흥행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실망과 아쉬움만 남긴 채 스파이더맨 영화는 긴 겨울잠에 들었다.

쿨하게 활약하고 쿨하게 떠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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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웨브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편과 2편. 통칭 어스파.

미청년 토비 맥과이어가 미중년이 되면서,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파이더맨 영화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꺼져갈 2012년 혜성처럼 등장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앤드루 가필드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하 어스파)을 통해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지질한 소박함 대신 멈추지 않는 수다와 쿨함으로 무장한 2대 스파이더맨이 등장했다. 토비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긴 했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코믹스 팬들 중에는 '원작에 가장 가까운 스파이디'라고 치켜세우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벤 삼촌은 또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샘 레이미 감독이 그웬 스테이시 대신 메리 제인과 피터 파커를 엮어주는 바람에 아쉬워했던 팬들에게 에마 스톤이 연기한 그웬 스테이시를 히로인으로 낙점한 어스파 시리즈는 그간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이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작품 속에서도 리얼한 로맨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스파도 3의 저주를 넘어서진 못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에서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제이미 폭스와 퇴폐미의 화신 데인 드한까지 캐스팅하면서 또다시 투톱 빌런을 선보였지만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과 혹평을 받고 속편 제작이 중단된다. 쿠키 영상을 통해 속편 등장을 예고했던 빌런 라이노(폴 지아어마티)도 강제 은퇴, 마음이 아프다.

극적인 마블 합류, 가장 어리고 핫한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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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 첫 등장한 MCU판 스파이더맨.

할리우드 영화산업 전반을 뒤흔든 MCU의 출범을 알린 '아이언맨'(2008), 그리고 히어로들이 한데 뭉쳐 활약하는 크로스오버 팀업 무비의 가능성을 보여준 '어벤져스'(2012) 때부터 마블을 대표하는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MCU 참전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져갔다. 하지만 디즈니와 소니픽처스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판권의 벽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꿈 정도로 치부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캡틴 아메리카의 세 번째 솔로 무비이자, MCU의 주요 캐릭터들이 총출동한 어벤져스급 작품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2016)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한 것. 어스파 이후 스파이더맨의 부흥을 고민하던 소니픽처스가 파죽지세로 영화계를 접수하고 있던 마블 스튜디오 측에 판권을 빌려주기로 결정하면서 성사된 일이다.


톰 홀랜드가 연기한 3대 스파이더맨은 이전 두 선배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중학생인 피터 파커는 어린 나이만큼이나 철없고 유약하고 빈틈 많고,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얕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첫 번째 단독 주연 작품인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에서 피터 파커는 뉴욕 마천루를 활공하는 대신 빌딩 한 채 없는 동네를 뛰어다니는 어설픈 초보 영웅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일부 팬들은 '스파이더맨답지 않다'며 MCU 스파이더맨을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벤져스: 인피티니워'(2018)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거쳐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속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영웅이자 아이언맨의 후계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흥행 성적도 11억달러 고지를 점령, 스파이더맨 영화 최초로 10억달러를 돌파한 작품이자 소니픽처스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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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작으로 끝난 MCU 스파이더맨 솔로무비. 3편 제목은 `스파이더맨: 홈리스`라는 자조적인 유머도 나온다.

하지만 몰라보게 성장한 스파이더맨으로도, 영화사(史)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쌓아온 마블의 저력으로도, 3의 저주를 넘어서진 못했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듯 마블 코믹스 세계관의 판권들을 주섬주섬 사들이고 있는 디즈니지만, 소니의 스파이더맨은 예외다. 두 솔로 무비를 끝으로 스파이더맨의 마블의 큰 그림에서 벗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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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픽처스에서 제작한 스파이디버스 두 작품. 절망편 베놈과 희망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벌써부터 다음 스파이더맨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일지 모른다. 장편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유니버스'(2019)의 스파이더버스(스파이더맨 세계관)의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소니가 과거의 실수-스파이더맨3의 베놈, 톰 하디의 베놈이라는 두 베(린)놈-를 반성하고 마블 못지않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디즈니의 오만이든 소니의 과욕이든, 양보 없는 자본의 논리에 다시금 스파이더맨을 뺏긴 팬들은 분개하고 있다. "3편 제목은 '스파이더맨: 홈리스(노숙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2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오는 3의 저주에 고통받는 건 매번 명대사를 남기고 사망하는 벤 삼촌이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처럼 한곳에 정착해 오래오래 활동하는 스파이더맨을 염원하는 팬들이다.


홍성윤 편집부 기자

2019.08.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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