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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박상준의 사이언스&퓨처-40

우주는 약육강식의 숲일까

by매일경제

'페르미 역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넓은 우주에 무수히 많은 천체를 감안하면 분명 우리 말고도 고도의 문명을 이룬 외계 존재들이 있을 텐데, 왜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페르미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물리학자였다. 그가 1950년에 내놓은 이 역설에 이제껏 숱하게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답을 내놓았다. 발달한 문명은 우리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이미 외계인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자신들을 숨기고 있다는 이론, 혹은 외계 문명이 많이 있어도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가 없다는 해석 등등.


이와 관련해 작년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리 인류가 먼저 외계 문명을 찾아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 바 있다. 외계인이 선량하다는 확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우리보다 뛰어난 문명을 지니고 있다면, 과거 인류의 역사에서 그랬듯이 강한 문명이 약한 문명을 정복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이 호킹의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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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떠돌며 약탈을 일삼는 외계종족이 등장하는 `인디펜던스 데이` /사진=20C폭스코리아

SF에서는 호전적이고 약탈적인 성향을 지닌 외계 문명이 드물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의 1996년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다. 이 작품에는 우주를 떠돌며 자원이 풍부한 행성마다 습격해 정복한 뒤 철저하게 약탈하고 나서 또 다음 사냥감을 찾아나서는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영화 '오블리비언'(2013) 역시 비슷한 외계인들이 악역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인류를 대부분 말살시켰고 일부 세뇌된 복제인간들을 수족처럼 부리면서 지구의 천연자원들을 뽑아내고 있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외계인 침공 시나리오보다는 '오블리비언'의 외계인들 방법이 좀 더 세련돼 보이는데, 왜냐하면 지구 인류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문명을 지닌 존재라면 인간들과 재래식 무기로 전투하듯이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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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말살하고 지구의 천연자원을 모두 빼앗는 `오블리비언`의 외계인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만약에 외계 문명이 실제로 많이 존재하며 그들끼리는 이미 교류도 하고 있다면 어떨까? '스타워즈'처럼 은하 연방이나 제국을 건설했을까? 그러나 이런 상상은 무대만 우주로 옮겨놓았을 뿐, 순전히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오히려 지구상에서 인간들과는 별개 세계를 이루고 사는 고래나 개미들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생태에 맞게 각자의 영역만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주 속에서 초고도의 지적 존재는 결국 우주의 물리적 한계나 자연법칙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속한 대우주는 엔트로피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서 계속 식어간다는 뜻이다. 그 마지막을 우주의 열적(熱的) 종말이라고 하며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는 결국 그렇게 최후를 맞으리라는 게 물리학의 입장이다. 결국 이런 운명을 거스르려는 지적 존재는 당연히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우주법칙을 돌파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며, 그러한 궁극의 지적 수준에 도달한 존재들이 많을수록 한정된 우주의 질량에너지를 두고 서로 견제나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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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암흑의 숲으로 묘사한 `삼체` /사진=단숨

이와 관련해 중국의 세계적 SF 작가 류츠신은 대표작인 '삼체' 3부작을 통해서 '암흑의 숲'이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우주는 지적 문명들이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긴 채 자기보다 열등한 문명이 발견되는 즉시 제거하곤 하는 어둠의 숲이라는 것이다. 비록 열등한 문명이라도 전파를 우주에 쏘아 보낼 정도로 발전했다면 곧 자신들의 과학기술을 따라잡으리라 보고 미연에 싹을 잘라버린다. 그 방법으로 '삼체' 3부에서는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질을 태양에 맞춰 그 질량에너지로 터뜨려버리거나 행성들이 포함된 우주 공간의 넓은 영역을 통째로 2차원 세계로 가라앉혀버리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하드 SF적 상상력이 구사돼 있다.


인간의 윤리라는 것도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생존 전략의 발로일 것이다. 개체 및 집단 간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신사협정이 철학 체계로 발전한 셈인데, 과연 그것이 외계의 지적 존재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일정 수준 이상의 문명을 이룩한 존재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윤리관도 지니고 있으리라 기대해도 될까?


이런 우려에 대해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이론이 있다. 스스로 파멸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과학기술을 이룬 문명이라면 반드시 자멸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문명이라면 호전적이지는 않으리라 보는 것이다. 사실 이건 우리 인류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면 핵전쟁을 통해 자멸할 수도 있는 위기의 시대를 지나왔다. 20세기 냉전시대에 미국과 옛 소련은 상호확증파괴라는 무시무시한 전략으로 대치하기도 했다. 상대방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비록 우리가 살아남지 못해도 역시 똑같은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공멸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그러한 위기가 일단 지나갔다고 보지만, 과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