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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행+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진짜 스위스

by매일경제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


바라만보던 알프스의 고봉

자박자박 내발로 걸어보니

사람냄새나는 일상의 풍경


에메랄드빛깔 베르자스카강

계곡물 따라서 `힐링 트레킹`

인구 80명인 소뇨뇨 마을로


달표면 같은 황량한 산정상

너머엔 웅장한 폭포가 반겨

변화무쌍한 코스에 홀렸다

매일경제

스위스 로카르노 베르자스카 계곡에 위치한 로맨틱한 동네 라베르테초. 중세시대 만들어진 돌다리와 물감을 푼 듯 오묘한 계곡물 색깔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사진 제공 = 스위스 관광청]

쨍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좋은 날에, 저 멀리 스위스까지 날아가 알프스를 경험했다. 여행은 진화한다. 10여 년 전 처음 가본 스위스에선 고봉을 바라보기만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직접 두 발로 산자락을 걸으며 온몸으로 알프스를 만끽했다. 걷고 나니까 명확해졌다. 스위스가 전 세계인의 버킷여행지 1순위에 드는 건 '친근한' 알프스 덕분이었다. 유럽의 지붕, 3000~4000m 고봉이 이어지는 알프스 산자락에서 스위스 사람들은 자연을 벗 삼아 일상을 보내고 이역만리에서 온 여행자에게도 그 문을 활짝 열어둔다.

스위스의 작은 이탈리아 '로카르노'

매일경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의 로카르노였다. 마조레 호수를 끼고 있는 로카르노는 '스위스 속 이탈리아'라 불린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가깝기도 하고 사시사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는 물론 이곳 사람들의 뿌리를 따라 올라가면 이탈리아 혈통이 다수를 차지한다. 시내에 호텔을 잡고 베르자스카 강을 따라 계곡 트레킹에 나섰다. 로카르노 지역에 조성된 74번 트레일은 로카르노 시내에서 시작해 베르자스카 강을 따라 협곡 가장 안쪽 마을인 소뇨뇨까지 총 34㎞를 연결해 만들었다. 그중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는 소뇨뇨~라베르테초 구간(14㎞)을 걸었다. 깊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길이 30㎞의 베르자스카강은 최근 SNS 명소로 떠올랐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빛 때문이다. 중세시대 건설된 아치형 돌다리 폰테데이살티(Ponte dei Salti) 밑으로 에메랄드빛 계곡물이 흐른다. 계곡은 너무나 고요했다. "티치노 지역은 스위스에서는 가장 가난한 곳이에요. 20세기 초까지 이곳 아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에서 굴뚝 청소부로 일했답니다." 가이드 안나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19~20세기 초만 해도 스위스는 가난한 농업국가였다. 1950년까지도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공장이나 농장에 판 미혼모나 이혼 부모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내 부유했을 것만 같은 스위스의 어두운 면을 알게 된 일행은 잠시 숙연해졌다.


프라스코 마을을 지나 목적지 소뇨뇨에 다다랐다. 소뇨뇨는 상주 인구 80명이 사는 작은 산골 마을이다. 돌로 만들어진 전통 집 벽면마다 사진 작품을 크게 걸어 마을 전체가 마치 갤러리 같은 아름다운 동네였다. 마을 입구에서 요들송이 들려왔다. 요들 동호회 사람들이 여행을 왔다가 아름다운 마을 경치에 반해 즉석으로 공연을 펼친 것이었다. 느린 템포의 요들은 왠지 구슬펐다.

황제 페더러가 반한 곳 '렌츠하이더'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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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렌츠하이더는 산악 휴양마을이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낯설면 낯설수록 왠지 현지인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 같다. 마을 전체가 스키 리조트라는 설명도 솔깃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로저 페더러의 집이 이곳에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바젤에서 태어난 로저 페더러는 고향이 아닌 렌츠하이더에 2013년 거처를 마련했다. 9월 초 막 가을이 내려앉은 렌츠하이더에서 현지인처럼 하이킹에 나서기로 했다. 렌츠하이더 라이 캐놀스역에서 곤돌라를 타고 중간역 샤모인을 지나 파르패너 로토른역까지 갔다. 10분 만에 로토른(2861m)에 오른 다음 샤모인(1904m)역까지 걸어 내려오는 3시간짜리 하이킹 코스를 걸었다.


로토른(Rothorn), 독일어로 '빨간 정상'을 뜻한다. 로토른은 이름처럼 풀이 없는 황무지였다. 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갈린 붉은 돌이 발에 차여 벼랑 끝으로 굴러갔다. 그림에서 보던 것처럼 만년설이 있는 것도 아닌 낯선 풍경에 공간 감각이 사라졌다. 고도가 낮아지는 건 주변 환경 변화로 알 수 있었다. 초록 식물들이 초반엔 양탄자처럼 깔리더니 점점 키가 자랐다. 멀리 초목이 보이고 '딸랑딸랑' 기분 좋은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저 멀리 소들이 개미처럼 자잘하게 움직인다. 종소리가 지난 자리에 물소리가 대신했다. 숲길로 접어들자 공용 바비큐장이 나오더니 폭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사나스판 폭포'. 눈으로 보기 전까지 믿지 못했다. 황량한 산에 이렇게 웅장한 폭포가 숨어 있을 줄이야. 샤모인역까지는 완만한 숲길이다. 달 표면 같은 황량한 풍경에서 40m 높이의 웅장한 폭포와 울창한 원시 숲까지 약 8㎞를 걸어 내려오는 동안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해발고도는 무려 1000m가 떨어졌다. 자연에 압도당한 회색빛 도시인에게 온통 초록물이 드는 순간이었다.

스위스 트레킹 100% 즐기는 팁

스위스에서 트레킹을 즐기려면 '스위스 모빌리티(SwitzerlandMobility)' 앱이 필수다. 스위스 모빌리티는 동력 없이 오직 인간의 힘으로 여행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말한다. 앱을 다운받으면 트레일·자전거길·카누 코스 등에 대한 것은 물론 대중교통 연결편과 숙박업소 정보 등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 취재 협조 = 스위스관광청

로카르노·렌츠하이더(스위스) = 홍지연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