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만한 계절”

[여행]by 변종모

고리, 조지아 / Gori, Georgia

“견딜만한 계절”

살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크게 나쁘지 않다면 지금처럼. 누군들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겠냐만 이대로 조금 춥고 쓸쓸하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12월엔 누구나 이 정도일 거라고 위로하면서 지금처럼. 한 해가 끝나고 있는 거리에 서면 늘 욕심이 앞질러 갔다. 추위에 떨며 움직이지 못하던 거리에서 마음만 먼저 보내고 자책하는 밤. 크리스마스트리도 꺼져버린 밤엔 별빛을 의지하는 안간힘으로 기도를 한다. 부디, 누구의 말도 아닌 누구의 마음도 아닌 나의 말과 나의 마음으로 스스로 먼 곳을 볼 수 있기를.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아도 된다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되게 해달라고. 12월엔 그렇게 혼잣말로 걷는 계절이라 생각했다.

하필이면 가장 추운 날

“견딜만한 계절”

일찍 숙소를 나와서 아침까지 해결하는 여유를 보였지만, 고리(Gori)행 버스가 예정보다 늦게 출발한 이유로 마음이 급해졌다.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서둘러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느리게 움직이는 버스가 자꾸만 마음을 성가시게 하고 있었다. 트빌리시(Tbillisi) 외곽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휑뎅그렁한 풍경에 마음은 더욱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익숙해질 법한 추위였지만 면역되지 않는 것 역시 추위라는 생각이 든다. 서너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버스 안은 몇 몇 사람들의 입김이 온기의 전부였다. 잘못한 것도 없이 억울하게 유배를 가는 것처럼, 겨울은 겨울이라는 이유만으로 낯선 이들을 더욱 주눅 들게 만든다. 단지 차 안의 온도뿐만 아니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단단히 동여맨 코트 차림으로 걷는 것처럼 둔하고 느리다. 흐린 겨울의 태양이 떴으나 낮은 지붕 옆으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자칫 저녁이 풍경과도 닮았었다. 왠지 이 도시는 겨울에 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라도 다른 계절에 왔더라면 달라졌을까?

“견딜만한 계절”

독재자 스탈린(Joseph Stalin)이 태어난 이곳 고리는 명성만 자자할 뿐 도시 자체는 부실하고 푸석한 느낌이 있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은 인물 스탈린. 세계 2차 대전을 소련의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정치적 이념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안중에 없는 냉담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의 장남 야콥이 권총 자살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녀석은 권총을 똑바로 쏘는 법도 모르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히틀러도 그에게 조지아의 백정이라 불렀겠는가? 그래서 이 작은 도시가 더욱 춥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의도 아래 희생당한 사람들의 원한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추위는 한여름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견뎌야 할 것이다.

“견딜만한 계절”

갈 곳이라고는 스탈린 박물관과 고리성곽 뿐이라고 말하던 어느 여행자의 말을 귀담아들었어야 했지만, 나는 귀도 얇고 준비성도 없는 여행자라서 결국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앞은 죽은 자의 입처럼 침묵이다. 겨울나무가지가 담벼락에 길게 그림을 그리는 오전. 나를 제외한 유일한 사람, 스탈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처럼 생긴 매표소 여직원에게 물었다. “오늘도 합니까?” 간단하게 물었더니 강철 같은 그녀는 고개만 약간 끄덕였다. 문을 여니까 내가 여기 작은 박스에 앉아 있는 거 아니냐는 냉정한 눈빛이다. 묻는 게 실수였다. 15라리. 박물관 밖에서 이미 둘러본 스탈린의 생가와 얄타회담 때 탔던 기차관람료를 포함한 가격이라는 것도 돈을 지불하고 나서 알았다. 티켓을 받고 고개를 드니 기차와 생가를 보는데 5라리 추가라고 적혀있다. 모든 게 이상한 시스템으로 말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내는 숙박비에 맞먹는 티켓 값. 아! 저 여자 알고 보니 스탈린을 좋아하는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배낭여행객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박물관과 시설물 가격까지 함께 끊게 하다니.

“견딜만한 계절”

서너 개의 전시관으로 나누어진 박물관은 스탈린의 흉상 몇 개와 익히 매체에서 봐 오던 종류의 사진들만 빼곡히 붙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그런 박물관의 개념은 아니었고 스탈린추모기념관 정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아가 배출한 세계적인 인물이지만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물은 못 된다는 이유에서였는지 이 도시만큼 소박하고 모든 것이 애매하다. 홀로 전세를 낸 것처럼 걷는 그 공간이 깊숙한 동굴 같다. 젊은 시절 스탈린의 사진 위로 한 줄기 햇볕이 조명되어도 그 앞에는 아무도 없다. 내 발자국 소리만 유일한 공명으로 울려 퍼져 적막을 깬다. 전시실 맨 끝에는 각국에서 스탈린을 위해 보내온 선물들과 그가 사용하던 일상용품들 몇 점이 전부였다. 그저 바깥 온도보다야 여기가 낫지 하는 마음은 내가 이곳에 대해서도 스탈린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일 거라는 자책을 하면서 스탈린을 닮은 여직원에게 마음에 없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견딜만한 계절”

“사랑이라든지 우정이라는 것은 금방 무너지지만, 공포는 오랫동안 지속한다.”는 정말 무서운 말을 남긴 스탈린은 역시나 그가 태어난 이 소박하고 푸석한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한 개인의 지나친 욕망이나 욕심이 가져올 수 있는 결말은 언젠가는 이렇게 끔찍하다. 그것이 나라나 그 이상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폭력이 가담하는 모든 행위는 혹독하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결국은 혹독함만 남는다. 간혹 나 스스로가 가능하지 않은 욕심을 부리거나 무리하게 자만을 하게 되는 날이면 박물관 마당에 차갑게 서 있는 저 흉상을 기억해야겠다. 이제 그 어디에도 그의 눈치를 보며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도 맞서는 사람도 없다. 그저 칼날처럼 불어대는 겨울의 바람만이 사람들을 간혹 떨게 한다. 한 때, 하늘 아래 그 어떤 것도 무서울 것이 없었던 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유일하게 증명하는 계절만이 존재한다. 뉴스에서 발표한 바로는, 그날이 그 해 겨울 조지아에서 가장 추운 날이었다. 

꽃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견딜만한 계절”

스탈린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도시 한가운데 솟은 성곽 안에는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는 듯한 앳된 남녀가 부둥켜안고 스탈린의 생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기 좋은 그림 같아서 훈훈하기도 하고 조금 쓸쓸하거나 애틋해 보이기도 하다.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담벼락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만 계절을 달리하는 유일한 자유다. 아이들의 놀이기구가 되어버린 대포는 무용지물인 대신에 뚫린 담벼락 사이로 거대한 포탄 같은 바람이 무참하게 전쟁처럼 퍼붓는다. 도무지 어깨가 떨려서 이곳에는 더는 머무를 수가 없겠다 싶어서 시간을 보니 오히려 버스 시간은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뭐든 이곳에서는 견디기 힘든 것만 남아서 낯선 사람을 바싹 따라다니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 이런 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단 한 줄의 안부도 전할 수 없는 마음으로 걸터앉은 성곽도 스탈린의 박물관처럼 텅 빈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무채색 풍경 중에 유일하게 빛나는 곳이 있었다. 위태로운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버스터미널 옆 공터에 장이 열렸는지 온통 알록달록한 차림의 사람들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마치 한겨울의 벌판에서 꽃밭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따뜻한 국물이나 마시자 싶어서 휴짓조각처럼 날아간 시장엔 예상대로 따뜻한 바람이 분다. 코카서스(Caucasus) 지방 특유의 향기가 맡아지는 시장의 규모는 예상보다 크다. 모두가 동여매고 움츠렸지만 훈훈한 입김으로 흥정을 하는 모습이 귀하다. 화려하게 꽃이 그려진 중국산 커피포트도 있고, 갓 태어난 어린 돼지와 깨진 접시며 잡다하게 진열된 흔한 장난감들이 박물관에서 보던 것들보다 진귀하게 여겨졌다. 

“견딜만한 계절”
“견딜만한 계절” “견딜만한 계절”
“견딜만한 계절” “견딜만한 계절”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서 흔하게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에 펼쳐진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스탈린시대에 행해지던 뒷거래처럼 엄숙하고 진지하기도 했으며 여느 시장처럼 소란도 있다. 더러는 팔지 못한 좌판 위로 부는 찬바람에 맞서 앉은 붉은 얼굴의 노인이 있고, 저렴한 물건을 놓고 더 낮은 값을 부르며 냉정함을 잃지 않는 젊은 여자도 있다. 그래도 이건 따뜻함이다. 퍼득퍼득 찬바람을 일으키며 홰를 치는 수탉의 목덜미처럼 모두가 삶의 안간힘이다. 그래서 따뜻함이다. 설렁한 공터에 세워진 시장에 잔인함이라고는 주인을 기다리는 짐승들의 시간밖에 없다. 어쩌면 이곳 고리로 오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스탈린의 잔인한 흔적이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땅 위에서 추운 겨울을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따뜻한 일들. 보통의 일들. 이 정도의 일들로 순하게 살아내는 겨울의 풍경들. 그가 태어난 살벌한 공간에도 이런 일들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마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관장할 수 없는 따뜻함에 대해서는. 물론 그는 이 온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필요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견딜만한 계절”
“견딜만한 계절”

어느 늦은 오후에 시장판처럼 어지러운 책상에 엎드려 분노하는 나에게 선배의 자격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그냥 그런 거라고, 세상은 그런 거라고. 조용히 눈치를 보며 속삭이던 그 모습은 내가 닮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이 계절을 피해갈 수는 없듯, 누구도 나의 삶에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위로 없는 위로의 말을 듣고 다시 오래도록 배낭을 멨다. 나는 본디 부모가 일러주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사람으로 자라지 못해서, 그것이 순전히 나의 탓이라서, 간혹 패배의 마음으로 위태롭게 걷지만 내 앞에 나타난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가해 한 적 없다. 그저 내 생각으로 걷고 내 마음으로 따르고 내 의지로 나아가는 일이 전부로 누구에게 불편을 줄 생각으로 얄팍한 짓을 하고 걷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낯선 길 위에서 걸음을 멈출 만큼 험한 일을 당한 적이 별로 없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나의 안부를 물었지만 나는 어디서나 대부분 건재했다. 누구에게도 해서 안 될 일은 어디서나 해서는 안 되는 일므로 그것만 지키면 나는 내 마음 하나 위로하는 일이 유일한 길이 되곤 했다. 홀로 걷는 길 위에서 그것을 알았다. 

“견딜만한 계절”

누군가는 나를 나약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나를 위태롭다고 했다.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이 직접 걷지 않았으므로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살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바람 부는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은 시간도,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며 타인의 목덜미 위에 올라앉아 사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인적 드문 박물관의 공허하게 울리던 텅 빈 시간처럼 자신만이 알고 있는 마음 한구석의 소리 들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이므로. 꽃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도 끝내는 아름답게 피어날 의무를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푸석하고 을씨년스러운 이곳의 어느 집 탁자 위에도, 조악한 꽃무늬가 그려진 포트에서 끓고 있을 따뜻한 한 잔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이 따뜻하다 여기는 사람이므로. 그 식탁에 내가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므로. 철이 지난 크리스마스트리가 제 임무를 다해도 누군가에게 소용되어질 마음으로 다음 1년을 기다리듯 그런 미련한 마음이 험한 마음보다 존중받는 휑뎅그렁한 시장이 인적 드문 박물관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알므로.

 

한 해가 기울고 있는 12월.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문득 정리하고 다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처럼. 고작 지금처럼만 살아도 괜찮을 거라는 마음뿐이라서 다행이다. 지구를 몇 바퀴를 돌아도,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런 내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한 참이나 남았다. 그들 곁에서 조금 더 떨면서 따뜻한 차나 한잔 할 요량으로 견디면 될 시간이다.

“견딜만한 계절”

Tip : 을씨년스럽고 다정한 고리에서 산책하는 법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고리는 트빌리시에서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곳의 시스템을 고려해서 하루 만에 다녀오려면 부지런하게 서둘러야 한다. 스탈린의 고향이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탐을 내는 도시다. 마을에 가까울 정도로 여행자가 돌아볼 수 있는 규모는 크지 않다. 고리 성채를 중앙에 두고 형성되어있다. 박물관과 성채 그리고 버스터미널 옆으로 흐르는 강가에 간혹 시장이 열린다. 이 모두를 둘러보는데 하루면 충분하다. 걷는 방법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된다. 시장 주변의 동네 골목을 걷다 보면 수도 트빌리시와는 다른 정겨운 풍경들을 종종 만난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너무나 순하고 착해서 자꾸만 함께 사진을 찍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변종모 

2016.12.22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도 여행자일 것이다.
채널명
변종모
소개글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도 여행자일 것이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