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나홍진 ②

[컬처]by 맥스무비

<곡성> 나홍진 ① | 현혹의 본진(本陣)에서 이어집니다.

'곡성' 나홍진 ②

정말 중한 것

이쯤에서 다시 묻고 싶다. 왜, 지금 <곡성>이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나? 

굉장히 복합적인 이유다. 개인적인 이유이자 사회적인 이유가 섞여 있다. 전작에서 범죄 위주의 사건을 담다 보니까 가해자 이야기를 하게 되고, 피해자의 이야기는 뒤로 밀린다. <황해> 이후 정말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내가 접근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피해자에게 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이유는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슬펐던 적은 처음이었다. 고민을 하게 됐다. <황해>를 끝내고 <곡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시 영화 만드는 걸 쉬고 세상을 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구체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좋지 않다, 이건 아주 불쾌하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또 <황해>가 거론될 수밖에 없는데,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해주셨다. 이제 변절해라, 장르와 안녕을 고해라. 보송보송한 것 좀 해라. 이제 그만 좀 죽여라.(웃음) 물론 날 걱정해서다. 그 무렵 김우택 대표에게 전화를 받았다. 전엔 얼굴을 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화로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당신이 하던 거 충실히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얘길 해 준 유일한 분이었다. 샌포드 패니치 20세기폭스인터네셔널 대표에게 고민을 토로했더니 “무슨 소리를 하냐, 니가 왜 그런 걸 신경 쓰냐. 너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직업이 아니다. 그 신경은 우리가 쓰는 거고, 넌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며 혼났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오컬트 스릴러 장르였나? 

리얼리티에서 벗어나, 완전히 창작을 하기로 했다. 나를 단편 시절부터 봐 온 사람들은 내가 <추격자> <황해>를 만든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네가 이런 걸 하다니 신기해”라고 말할 정도다. 온전히 장르를 위한 창작.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더 창의적인 장르 영화의 힘을 보여주겠다. 칼 한 번 갈아보자. 그래서 2011년 10월부터 <곡성>을 시작했다.

'곡성' 나홍진 ②

<곡성>은 성경 구절로 시작해, 엔딩에서 그 문구를 반복한다. 감독의 명백한 도발 아닌가.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길 반복했다.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 동시에 밸런스와 포커싱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 뭔가 엇나가고 치우쳐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차에, 이 공간(곡성)을 예루살렘이라고 단순화시켜보기로 했다. 여긴 예루살렘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수의 소식을 듣는다. 당대의 예수를 따라다니는 소문은, 어마어마한 괴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얼마나 궁금했겠나. 그리고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선입견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성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누가복음의 구절을 영화에 넣었고, 후반부에 외지인에게 동일한 대사를 하게 했다. 원칙은 하나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종교에게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영화는 ‘의심’에 따라오는 ‘혼란’을 이야기한다. 성경구절을 ‘악마’모습을 한 존재가 말하는 순간, 명확히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순수하게 저건 악마고 신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저 존재는 모습과 무관하게 내가 믿는 신의 존재다. 영화가 쭉 이야기 해온 선과 악의 혼돈, 의심과 믿음의 정점을 찍어주고 싶었다.

 

그럼 ‘독버섯’은 완벽한 장치인가? 

장치다. 아까 지구의 자전을 이야기할 것처럼, <곡성>의 모든 현실을 ‘독버섯’이라는 팩트로 정리하고 종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더 있을 거다’라는 생각으로 한발 더 들어가 본 게 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럼 ‘독버섯’은 사실이 아니냐?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사실이라면 너무 비인간적이다.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그렇게, 바람 한 점에 갈 수(죽을 수) 있다면 존재의 이유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는 거다. 현실의 수많은 죽음에 대해 종교조차 ‘현실의 독버섯이 원인’이라는 얘길 하고 있다. 그래서 <곡성>은 묻고 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을 하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곡성' 나홍진 ②

나홍진의 뜨거운 인간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홍진 감독의 뜨거운 인간애가 ‘피칠갑’ 3부작의 바탕이었나? 인간이 너무 쉽게 죽어나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연쇄살인마, 물질만능주의, 초현실적인 존재 등의 ‘무시무시한 것들’을 가해자로 찾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진심으로 <추격자> <황해> <곡성> 모두 ‘르네상스(인간성 해방)’가 아닌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만약 종구가 무명의 말을 믿고,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은분들은 그렇게 믿으면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보 안에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종구가 달려가도, 달려가지 않아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이 영화의 제목이 ‘곡성哭聲’이다. 곡소리는 누가 죽었을 때 슬프게 우는 소리인데, 이건이건 추모와 위로의 행위다. 영화의 엔딩에서 불행을 겪은 이들, 그 외의 모든 이들을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인간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일러 준 답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 과정을 통해 <곡성>이 나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종구의 얼굴은 이런 느낌으로 찍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틀린 선택을 한 게 아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죽음을 맞았다. 그러니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 고통을, 우리도 느끼고자 노력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찍었다.

 

다음엔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이번에도 확장인가? 

몇 개가 있다. 각기 다른데 먼저 할 수 있는 걸 만들 생각이다. 내가 <황해>를 만들면서 느낀 점이 있다. ‘전작의 연계, 확장’이라는 개념을 가져선 안 된다는 거다. 나는 <황해>를 정말 좋아하는데, 만약 <추격자> 다음 <곡성>을 만들고, 그 다음에 <황해>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관객에게는 늘 새로운 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연장선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글·구성 박혜은 박소연 | 사진 김소연

2016.05.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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