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의 인생 변주곡

[컬처]by 맥스무비

여든한 살에 접어든 노장은 이번에도 자기 영화 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불러들여 이렇게 노래한다. ‘인생은 오블라디 오블라다(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의 인생

우디 앨런 감독의 46번째 장편 극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는 그의 많은 전작들을 연상시킨다. 사진 찬란

우디 앨런의 46번째 장편 극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는 그의 많은 전작들을 연상시킨다. 사실 우디 앨런은 언제부터인가 자가 증식을 시작했다. 그가 영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던 1970~1980년대의 영화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977년의 '애니 홀'부터 1989년의 '범죄와 비행'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이 지닌 테마와 모티프는 1990년대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그 경향은 점점 강해져서 최근 영화들에서는 지나친 반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카페 소사이어티' 직전에 만들어진 '이레셔널 맨'(2015)은 '범죄와 비행'에서 제기되었던 테마의 연장선상이다. 그 테마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제기하고 있는 도덕률이다. 앨런은 '범죄와 비행' 이후 '매치 포인트'(2005)와 '카산드라 드림'(2007)에서도 이 테마를 반복했고, '이레셔널 맨'도 마찬가지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2014)의 ‘마술’이라는 소재는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부터 시작해 앨런이 직접 마술사로 등장하는 '스쿠프'(2006)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바로 그 전작인 '블루 재스민'(2014)의 ‘여성의 인생 찾기’는 '한나와 자매들'(1986)에서 시작되어 '앨리스'(1990)에서 정점에 올랐던 이야기다.

 

'로마 위드 러브'(2012)의 황당한 에피소드들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나 '뉴욕 스토리'(1989)를 연상시킨다. 아마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거의 모든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는 모두 1970~1980년대 앨런의 황금기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디 앨런의 1990년대는 반복과 시도가 혼재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우디 앨런의 인생론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의 인생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바비(제시 아이젠버그)가 겪는 로맨스의 실패는 '맨해튼'(1979)부터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반복되어 '한나와 그 자매들'(1986)에서 집대성되었던 클리셰다. 사진 찬란

우디 앨런의 오랜 팬이라면 '카페 소사이어티'는 낯설지 않은 영화일 것이다. 1930년대 뉴욕의 화려한 사교계(즉 ‘카페 소사이어티’)와 스타들이 우글거리는 할리우드를 오가는 이 영화에는 앨런의 오래된 테마들이 담겨 있다.

 

가장 익숙한 건 ‘인생의 아이러니’다.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뉴욕을 떠나 외삼촌 필(스티브 카렐)이 유명 스타들의 에이전시로 일하는 할리우드에 온다. 인생의 성공을 건 작은 도박이다. 그는 이곳에서 필의 비서인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삼촌의 정부다. 이러한 엇갈린 로맨스는 '맨해튼'(1979)부터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반복되어 '한나와 자매들'에서 집대성되었던 클리셰다.

 

그 결말은 대부분 씁쓸한 해피엔딩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뿐이고, 결국은 현재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낙관주의다. 인간은 순간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뿐이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순응주의이기도 하다. 혹은 앨런의 영화가 지닌 ‘인생론’이며,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그 계기는 바비가 겪는 로맨스의 실패다.

 

필은 보니와 결혼하고, 뉴욕에 온 바비는 베로니카(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만나 결혼한다. 보니가 ‘베로니카’를 줄인 이름이라는 걸 떠올리면, 바비는 할리우드의 베로니카에게 버림받고 고향인 뉴욕으로 와 또 한 명의 베로니카를 만난 것인데, 이것 역시 앨런이 즐기는 구조이자 나름의 조크이다.

 

'한나와 그 자매들'을 떠올려 보자. 미키(우디 앨런)는 한나(미아 패로우)와 이혼했다. 한나는 아이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미키는 무정자증이기 때문이다. 이후 미키는 한나의 동생, 즉 이전의 처제였던 홀리(다이앤 위스트)와 사랑에 빠지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홀리는 미키에게 말한다. “나 임신했어.” 이런 식의 순환적 방식은 앨런의 영화 속 인간관계에서 수많은 반어적 상황을 만들어내며,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그것은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통해 드러난다. 바비는 결국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지닌 여자와 결혼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할리우드 엔딩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의 인생

우디 앨런이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반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할리우드다. 우디 앨런에게 할리우드를 포함한 ‘쇼’의 세계는 표면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공허한 그 무엇이다. 사진 찬란

'카페 소사이어티'가 반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할리우드’(로 환기되는 그 무엇)이다.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서 영화감독 역할을 맡은 이후, 우디 앨런은 여러 영화에서 할리우드 혹은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언급했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선 공황기의 한 여성을 통해 할리우드의 판타지를 보여주었고,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에선 연극 무대의 이야기와 갱스터 스토리를 결합했으며, '셀러브리티'(1998)에선 스타들의 이면을 이야기한다.

 

우디 앨런에게 할리우드를 포함한 ‘쇼’의 세계는 표면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공허한 그 무엇이다. 필과 결혼한 보니는 바비의 클럽을 찾는데, 그는 그곳에서 온갖 인맥과 파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신이 경멸했던 속물의 모습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에겐 이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런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며, 바비의 말처럼 “인생은 코미디”, 좀 더 부연하면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보니와 바비 모두 할리우드와 고급 클럽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겐 순수했던 과거와 뜨겁게 사랑했던 열정이 아직 살아 있지만, 이미 ‘쇼’의 세계에 젖어 든 그들이 그 시절을 회복할 수는 없다.

 

바비는 보니가 뉴욕에 머무는 시간 동안, 바쁜 삼촌의 눈을 피해 잠깐의 바람을 피지만(그는 외숙모와 그런 관계를 가지는 셈이다!), 결국은 현실로 돌아가고 송년 파티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뿐이다.

 

이미 우리는 이런 결말은 앨런의 많은 영화에서 목격했다. 내가 누군가를 왜 사랑하는지 알지 못하고, 때론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감정이나 도덕 같은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결국은 우스꽝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다. 과거 영화들을 짜깁기한 재활용품처럼도 보이지만, '카페 소사이어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그런 이유다. 살면 살수록, 우디 앨런의 인생론이 옳은 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더 재밌다

'카페 소사이어티'는 우디 앨런의 필모그래피에서 분기점이 되는 영화다. 그가 필름을 버리고 처음으로 디지털 촬영을 시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잡은 사람은 전설적인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 '지옥의 묵시록'(1979) '레즈'(1981) '마지막 황제'(1987)로 세 개의 오스카를 거머쥔 그는 10여 년 만에 할리우드로 돌아왔는데, 그 역시 디지털 촬영은 처음이었다고.

 

하지만 소니 F65 4K 카메라로 잡아낸 '카페 소사이어티'의 화면은, 스토라로의 트레이드마크인 섬세한 빛의 활용이 잘 드러나며 할리우드 고전기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스토라로는 앨런의 차기작에서도 카메라를 잡고 있다.

 

글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2016.09.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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