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VS '비트' 20년을 뛰어넘은 정우성

[컬처]by 맥스무비

'비트'(1997) 이후 20년, 강산이 두번 바뀌었다. 하지만 '아수라'의 피폐한 한도경의 얼굴 위로 말간 민의 얼굴이 자꾸 스친다. 20년 간극이 무색한, 변치 않는 정우성의 세 가지 매력.

'아수라' VS '비트' 20년을 뛰

청춘 세대의 속마음을 드러낸 '비트'의 내레이션과 현실에 대한 후회와 체념이 담긴 '아수라'의 내레이션. 정우성의 낮고 처연한 목소리는 캐릭터의 감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진 삼성영상사업단(좌), CJ엔터테인먼트(우)

마음의 소리, 내레이션

“나에겐 꿈이 없었어”로 시작하는 '비트'의 내레이션. 스무살 청춘 민은 자신의 감정을 내레이션에 담아 멋스럽게 말한다. 허영만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비트'는 1990년대 청춘 세대의 막막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성적으로 드러냈다. 내레이션 대사 자체는 지금 들으면 다소 오글거리지만, 스무 살 정우성은 그 오글거림을 압도할 만큼 빛났다.

 

“난 인간들이 싫어요.” '아수라' 한도경의 내레이션은 회상이다. '비트'가 현재 민의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드러냈다면, 한도경의 내레이션은 달관자의 허무가 풍긴다. 둘 다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한숨쉬듯 마음의 소리를 전한다.

 

'아수라' 내레이션의 특징은 한도경의 대사와 톤이 사뭇 다르다는 것. 평소엔 누구라도 씹어먹을 것처럼 육두문자를 입에 물고 사는 한도경이지만, 내레이션은 한풀 죽은 존댓말이다. 침착하고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하다.

 

'비트'의 스무 살 민은 내면과 외면의 목소리가 한결같지만 '아수라' 한도경의 안과 밖이 다른 목소리는 그의 갈팡질팡 뒤엉킨 감정을 표현한다. 마치 그가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처럼. '아수라'의 내레이션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수라' VS '비트' 20년을 뛰

화려한 액션 장면이 많은 '비트'와 달리 '아수라'의 액션은 생존의 액션이다. 한국에서 가장 액션을 잘하는 배우로 꼽히는 정우성의 액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다. 사진 삼성영상사업단(좌), CJ엔터테인먼트(우)

획을 그은, 액션

'비트'와 '아수라' 액션의 공통점은 각 시대의 액션 쾌감 기준을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액션 자체는 크게 다르다. 우선 '비트'의 당구장 액션 신은 화려한 ‘떼 싸움’이다. 여러 명을 혼자서 상대하는 민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발차기처럼, 액션 동작이 크고 화려하다. 한 마디로 ‘멋’을 중시한 액션.

 

반면 '아수라' 액션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노련한 형사 한도경은 싸움의 고수로 여러 명을 한번에 상대하지만, 폼나는 액션은 없다. 살기 위해 약한 상대를 린치하는 비겁함, 권력의 눈에 들기 위해 발악하는 비굴함이 뚝뚝 묻어나는 액션 장면은 처절하다. 화려함은 없지만 더 이야기를 담은 액션.

 

'아수라'에서 한도경이 벌이는 싸움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비트'에서 민이 벌이는 싸움은 사랑하는 로미(고소영)와 처참하게 죽은 친구 태수(유오성)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 '비트'의 민은 ‘나’를 찾는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주먹을 날린다. 분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 세대를 대변했던 정우성의 액션은, 40대 한도경에 이르러 현실에 찌들고 힘에 굴복하던 자신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처절하게 담았다.

'아수라' VS '비트' 20년을 뛰

정우성이 연기한 '비트'의 민과 '아수라'의 한도경은 반항아다. 힘은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탈출구를 찾아헤매다가 실패하더라도, 그들은 현실에 무릎꿇을 생각이 없다. 사진 삼성영상사업단(좌), CJ엔터테인먼트(우)

무릎 꿇지 않는, 반항아

'비트'의 민은 반항아다. 지금 막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마냥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스무 살 정우성의 깊은 눈은 우리가 상상하던 ‘반항아’의 모범답안 같았다. 큰 키에, 긴 팔다리를 건들대며 걷는 민의 껄렁한 걸음걸이 역시 반항아의 아우라를 풍겼다.

 

하지만 민은 “세상아, 덤벼라” 식의 반항아는 아니었다. 감정을 꾹꾹 눌러도 삐져나오는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에서 울분이 묻어난다.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기보다, 독야청청 세상을 따돌리겠다는 치기가 정우성의 반항을 완성했다. 민이 원하는 삶은 누군가를 이기고 짓밟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아수라'의 한도경은 편안해지고 싶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를 흔들어놓지 않는, 고요한 세상을 원한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한도경을 물어 뜯으려 달려들자, 그도 이빨을 드러내 짖을 수밖에 없다.

 

눈에는 독기가, 입에는 욕설이 가득하다. 실실 웃다가도 금새 정색하고, 악을 쓰며 발악한다. 순간순간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즉각 반응한다. ‘밟을 때 밟히면 죽는다.’ 그것이 한도경이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힘으로는 그를 굴복시킬 수 없다. 탈출구를 찾아헤매다 실패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무릎 꿇어줄 생각은 없다.

 

자유를 찾아 헤매는 민의 얼굴은 '비트'가 끝날 때까지 말끔하지만, 지옥에서 빠져나오려는 한도경의 얼굴은 '아수라'가 끝날 때 쯤엔 엉망으로 망가진다. 이 간극에도 불구하고, 정우성의 얼굴은 불안과 고독, 후회와 체념을 고스란히 전한다. 마치 민의 20년 후가 한도경이 아닐까 궁금해질 정도다. 민과 한도경은 앞으로도 정우성의 ‘두 분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 박경희

2016.09.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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