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규제의 역설, 청약 광풍

분양시장에 몰린 돈… '로또청약'의 실상

by머니투데이

[편집자주] 분양시장이 뜨겁다. 지난달 31일에는 장롱 속 쟁여둔 전국 1순위 청약통장 19만여개가 일시에 동원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규제가 만들어낸 또 다른 풍선효과다. 구축주택은 거래가 절벽인데 신규 청약에만 관심이 쏠린다. 분양가와 인근 시세의 '갭' 때문이다. '로또 청약'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분양시장에 몰린 돈… '로또청약'의

/사진=이미지투데이 

'로또청약' 규제가 만든 또 다른 갭투자

①신축 수요에 정부가 낮춰준 분양가로 시세와 갭 확보

분양시장에 몰린 돈… '로또청약'의

# 인천에 거주하는 A씨는 애지중지하던 가점 69점짜리 청약통장을 '미사역 파라곤' 1순위 청약에 썼다. 분양가가 시세의 반 값에 가깝게 책정돼 '로또'로 불린 이 단지의 평균경쟁률은 무려 104.9대 1. 당첨을 확신했던 A씨는 "오는 8일 발표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중개업소의 얘기에 깜짝 놀랐다.

 

지난 4월 분양한 대구 북구 복현동 '복현자이'도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이 171.4대 1을 기록했다. 전용면적 84A형의 1순위 경쟁률은 878대 1에 달했다. 이 단지 분양가 역시 4억1870만~4억2390만원으로 인근 입주 4년된 '복현푸르지오' 실거래가(고층 4억5000만원)보다 2000만~3000만원가량 낮다.

 

아파트 청약시장이 뜨겁다.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심사가 아파트 분양가를 누르자 청약수요가 폭발하는 모양새다. 인근 구축아파트보다 분양가가 저렴해지자 수요자들이 묵혀뒀던 청약통장을 꺼내들고 있는 것.

 

6일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현재 전국 1순위 청약통장 가입자는 1267만6037명으로 1년 전보다 30만명가량 줄었다. 이는 지난해 8·2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 및 청약과열지역의 1순위 조건이 강화된데 따른 영향이다. 그만큼 청약경쟁률이 낮아지는게 자연스럽지만 서울과 수도권, 지방을 가리지 않고 될 성싶은 곳은 오히려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

 

지난 1월 분양한 대구 중구 남산동 'e편한세상 남산'이 대표적이다. 191가구 1순위 모집에 6만6184명이 청약해 평균경쟁률이 346.51대 1에 달했다. 신남역 더블 역세권인 이 단지의 분양가는 전용 84㎡가 3억9000만~4억700만원. 남산동 인근 신축 아파트보다 1억원이상 낮은 가격이다.

 

대구는 그동안 신축 아파트 공급량이 적고 구축 아파트의 노후도가 높아 초중고 학군이 갖춰진 구도심 내 신축 아파트 수요가 높다. 여기에 정부가 분양가 규제로 분양가가 인근 시세보다 낮아져 '안전마진'(?)까지 확보됐다. 집값이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로선 청약통장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리얼투데이의 분석 결과 최근 1년간 대구의 1순위 청약경쟁률은 평균 45.26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국 1순위 평균경쟁률도 13.08대 1에 달했다. △부산 42.42대 1 △세종 38.97대 1 △대전 30.32대 1 △광주 23.9대 1 △서울 15.19대 1로 서울보다도 지방 대도시 청약시장이 더 뜨거웠다.

 

분양가 규제를 통해 정부가 아파트 청약을 사실상 새로운 '갭 투자처'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사업자나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돌아갈 개발이익이 청약 당첨자의 몫으로 이전돼 또 다른 머니게임이 됐다는 것이다.

 

일부 차익을 노린 투기수요까지 붙어 위장전입, 통장매매 등 불법행위도 드러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 개포'와 마포구 '마포 프레스티지자이' 영등포구 '당산 센트럴아이파크', 과천시 '과천위버필드' 등 수도권 아파트 5개 단지의 특별공급 당첨자의 부정당첨 여부를 점검해 위장전입 의심자 31명을 적발했다. 대리청약 의심자 9명, 허위 소득신고는 7명이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아파트 가격이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제 하에서 분양시장으로 몰리고 있지만 집값은 분양원가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며 "전체 주택시장의 사이클을 고려하면 지금은 하락장의 초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첨만 되면 로또? ‘애물단지’ 전락 가능성도

②가격 조정, 세부담 고려시 고수익 보장 못해

분양시장에 몰린 돈… '로또청약'의

정부 규제로 재건축 아파트 투자 열기는 식었지만 새 아파트 청약 시장은 더 달아오른 분위기다. 특히 당첨시 수억원대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로또 아파트’로 불리는 단지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전문가들은 향후 부동산 경기를 고려하면 청약 당첨이 반드시 고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6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2만 3951가구 일반분양(특별공급 제외)이 진행됐고 40만 8224명이 1순위 청약을 신청했다. 평균 경쟁률은 17.04대 1로 올해 최고치며, 신청자 수도 가장 많았다.

 

지난달말 1순위(당해·기타지역) 청약을 진행한 경기 하남 '미사역파라곤'은 특별공급을 제외한 809가구 모집에 8만 4875명이 몰려 평균 104.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앞서 분양한 하남 ‘포웰시티’도 2096가구 분양 모집에 1순위 청약통장 5만 5110개가 몰렸다.

 

이들 단지는 평균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낮아 거주를 희망하는 실수요자는 물론 임대수익 등을 노린 투자자들도 대거 몰린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이 반드시 고수익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분양권 전매 금지로 당첨 직후 웃돈(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 없다. 입주까지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면서 실제로 보유해야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데 금리인상기를 맞아 부담이 예년보다 늘었다.

 

대출 규제도 강화됐다. 과거에는 아파트값의 60~7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무주택자는 40%~50%, 다주택자는 투기지역에서는 1주택에 한해 30%만 가능하다. 분양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중도금 대출 보증도 받지 못한다.

 

세금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하남 등 조정대상지역은 1주택자라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선 입주 후 2년간 실거주 해야 한다. 다주택자는 양도세 중과가 적용돼 시세 차익의 6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만약 경기 둔화로 주변 집값이 지금보다 떨어지고 거래 시 양도세 부담 등을 고려하면 로또라고 불릴 정도로 큰 차익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청약 시장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 주택 공급이 많거나 교통, 학군 등 입지 조건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은 수도권이라도 청약 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올해 경기 김포, 남양주, 화성 등에서 분양한 아파트 단지는 미분양률이 80%를 넘는 곳도 있다. 지역 경기가 악화 된 경남권과 중소 건설사들이 소단지를 분양한 제주에선 무더기 청약 미달 사태를 맞았다.

청약 바늘구멍 뚫으려면… 서울은 '무주택 15년·아이 둘' 

③올해 서울 평균 당첨 가점 58.1, 지방도 50~60점대

분양시장에 몰린 돈… '로또청약'의

아파트 청약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서울 등 인기 지역에서 청약 가점제로 당첨 기회를 얻으려면 적어도 자녀 둘, 무주택 15년, 청약통장 가입 4년은 채워야 한다.

 

6일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서울에서 분양한 12개 단지의 85㎡(이하 전용면적) 이하 당첨 가점은 평균 58.1점이다. 청약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점수를 매겨 점수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만점은 84점이다.

 

서울에서 평균 당첨 가점이 가장 높은 단지는 67.9점을 기록한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자이 개포'였다. 주택형별로는 63㎡P타입이 평균 71.6점으로 85㎡이하 주택형 중에선 가장 높았다.

 

'마포 프레스티지 자이'가 평균 당첨 가점 65.9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당산 센트럴 아이파크'(61.1) 'e편한세상 문래'(56.6) '용마산역 쌍용예가 더 클라우드'(53.8) '논현 아이파크'(51.6) '영등포 중흥S-클래스'(50.9) '방배 서리풀 서해그랑블'(50.7) 'e편한세상 보라매 2차'(50.3) 등도 평균 50점을 넘었다.

 

서울의 평균 당첨 가점인 58.1점을 채우려면 무주택 기간은 만점인 15년 이상(32점)이어야 하고, 부양가족 3명(배우자와 자녀 둘, 20점)과 청약통장 가입기간 4~5년(6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8·2부동산대책에 따라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에서 공급되는 85㎡이하 주택은 모두 가점제로 공급된다. 이전에는 물량 일부를 추첨제로 공급해 가점이 낮더라도 당첨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일정 수준 이상 가점을 채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일부 단지도 50~60점대의 높은 당첨 가점을 기록했다. 경기 하남시 '포웰시티 B6블록'의 당첨 가점은 65.2점이었고 용인시 '성복역 롯데캐슬 파크나인' 64.7점, 부산 '봉래 에일린의 뜰' 60.3점, 대구 '복현 자이' 63.3점, 대전 'e편한세상 대전법동' 52.7점 등으로 집계됐다.

 

높은 가점을 얻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움에도 청약자들이 몰리는 것은 새 아파트를 원하는 실수요자가 많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오랜 기간 전월세를 살면서 돈을 모아 아파트 청약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선 것이다.

 

특히 서울이나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들은 도심 노후도가 심각해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로 시세보다 저렴한 새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점도 청약 열기의 원인이다.

 

권 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청약열풍이 일었던 참여정부 시절 청약통장에 가입해 오랫동안 무주택을 유지했던 사람들이 최근 청약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가점이 높은 실수요자는 많은데 상대적으로 새 아파트 공급이 적다 보니 청약 경쟁이 더 치열한 것"이라고 말했다.

8·2대책 이후 '장롱 속 청약통장' 잘 쓰려면

④가점제·특별공급 대폭 확대…고가점자는 85㎡ 이하 노려야

분양시장에 몰린 돈… '로또청약'의

지난해 8월 정부는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8·2대책)을 발표했다. 단기 투자수요는 억제하고 무주택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부동산시장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다. 이때 청약제도도 바뀌었다.

 

8·2대책으로 개편된 청약제도의 핵심은 가점제 강화다. 가점제는 무주택기간(최고 32점), 부양가족 수(최고 35점), 청약저축 가입기간(최고 17점)을 합산해 당첨자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먼저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민영주택 가점제 적용 비율이 확대됐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85㎡(전용면적) 이하 주택은 100% 가점제가 적용되고 85㎡ 초과는 절반이 가점제, 나머지는 추첨제로 당첨자가 결정된다. 조정대상지역은 85㎡ 이하 가점제 적용비율이 기존 40%에서 75%로, 85㎡ 초과는 0%에서 30%로 늘었다.

 

8·2대책 이전에는 미계약 발생 시 추첨으로 선정된 청약신청자들이 빈자리를 채웠지만, 이제는 1순위 지원자 중 가점이 높은 순으로 기회가 돌아간다. 다만 1순위가 미달되면 2순위 지원자 중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는다.

 

1순위 자격 요건 강화로 투기 목적으로 청약에 나서는 것을 막는 조치도 취해졌다.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1순위 자격요건이 청약통장 가입 후 2년, 납입횟수 24회(국민주택)로 강화됐다. 당첨 후 2년간 가점제 청약에서 배제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가점을 올리는 가장 수월한 항목은 '부양가족'을 늘리는 것이고, 1명당 가점 5점이 붙는다"며 "가점이 높은 수요자는 85㎡ 이하 주택형을 신청하면 당첨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특별공급(특공) 제도도 개편됐다.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가가 9억원이 넘는 주택은 특공에서 제외 시켰고, 미계약 특공 물량도 일반분양물량으로 전환 되지 않도록 했다. 인터넷 청약도 의무화가 됐다.

 

신혼부부 특공 비율이 기존 2배로 확대됐고, 조건도 혼인 5년 내에서 7년 내로 늘었다. 유자녀 조건은 폐지됐다.

 

함 랩장은 "특별공급 청약은 다자녀·신혼부부 등 조건이 복잡해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혹시 (특공에서) 떨어져도 같은 단지 일반물량 청약이 가능해 실수요자는 가점제 보다 특공을 노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유엄식 기자 usyoo@,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박치현 기자 wittge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