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집에 사는 사람들

[여행]by 머니투데이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

동굴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바위산./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티그리스 강가의 고대도시 하산케이프에 갔을 때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끈 것은 동굴집들이었다. 강을 따라 마을이 형성돼 있고, 그 마을 뒤로 솟아있는 바위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굴들이 뚫려있었다. 누가 봐도 벌집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하산케이프에는 그런 동굴집이 무려 3500개가 넘는다.


그곳에는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동굴집이라고 사람살이가 다를 턱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고 한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 지역 사람들이 언제부터 동굴집에 살았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사람이 살던 동굴집은 지금 대부분 비어있다. 정부의 소개(疏開) 정책에 의해 모두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집까지 지어주며 동굴집을 비우라고 한 이유가 아이러니컬하다.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 하자, 다른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동굴집에서 사람이 사는 미개한 국가와 함께 할 수 있느냐"며 비웃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주민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엉뚱한 이유 때문에 누대로 살아온 삶터를 옮긴 것이다.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동굴집. 불을 밝혀놓고 있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하산케이프에 도착한 날, 그 동굴집들이 궁금해서 찾아가보았다. 주민들을 소개했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떠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느 집에는 난로 연통 같은 구조물이 밖으로 나와 있고 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사람이 사는 게 분명했다. 주인을 잠깐이라도 만나고 싶어서 문 앞에서 "파르돈(실례합니다)", "메르하바(안녕하세요?)"를 열심히 외쳐보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불렀더니 문이 슬그머니 열리고 노인 한 분이 나왔다. 그곳 말이 가능한 동행에게 인터뷰 허락을 좀 받아달라고 했더니, 노인은 이쪽의 요청이 끝나기도 전에 손부터 설레설레 흔들었다. 손만 흔드는 게 아니라 아예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조금 섭섭했지만 노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동굴에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느닷없이 불렀으니 달가울 턱이 없다. 은자(隱者)는 은자로 살게 놔두는 게 예의일 터. 발길을 돌리는데 바로 옆 다른 동굴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기척을 했더니 청년 하나가 내려왔다.


"이 동굴에서 살아요?"


"아니요. 저 아랫동네 사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 동생들 하고 놀러왔어요."


"전에 이 동굴집에서 살았어요?"


"그건 아니고요. 대개 빈집이니까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놀아요. 이 안에 사람이 기르던 비둘기들이 있어서 재미있거든요."


"저 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요?"


"그럼요. 원래 저 집에서 사냥하며 살다가 아랫동네로 내려가 가족들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다시 올라와서 혼자 살아요."


"왜요?"


"이곳엔 일거리가 없어서 가족들이 전부 아다나로 갔거든요.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살겠다고…."


노인은 이산가족의 슬픔을 안고 살고 동굴집에 살고 있었다. 그들 가족이 흩어지게 된 까닭은 티그리스 강에 건설한다는 댐 때문이었다. 댐이 완공되면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도 동굴집들도 물에 잠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자식들이 도시로 떠난 뒤 늙은 아버지는 다시 옛집으로 돌아와 쓸쓸한 생을 접어가는 것이었다.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

어느 동굴집 꼭대기에서 바라본 하산케이프 전경. 멀리 티그리스 강이 보인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아이들과 헤어져 동굴 몇 가운데를 더 돌아다녀봤다. 사람의 흔적이 있는 건 노인이 사는 집뿐이 아니었다. 상주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집 찾듯 들락거리는 모양이었다. 한 동굴에 들어가니 사람 대신 닭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바위를 위쪽으로 뚫고 계단을 만들어놓은 동굴로 올라가 봤다. 사람이 근래까지 살았던 듯 천장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방들은 사각형의 형태를 갖추었고 벽에는 빗살무늬 형태의 정 자국이 나 있었다. 오랜 옛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동굴이 만들어졌을 과정이 머릿속에 하나씩 그려졌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 도구도 변변치 않았을 시절에 어떻게 이런 굴들을 뚫었을까. 정 자국을 하나씩 쓰다듬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마치 높은 다락방을 올라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이르러 시야가 환해지면서 내 입에서는 헉! 하는 비명이 터졌다. 이런 풍경이 있다니. 저 아래로 티크리스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앞으로 하산케이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까마득히 먼 곳에는 파랗게 빛나는 초원이 있었다. 거기 어디쯤에서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을 것이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바위들. 내가 가진 언어의 빈곤을 절감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느닷없이 동굴집에 살던 옛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이런 풍경 속에 살았을 테니 얼마나 행복했으랴. 그들의 '원시적' 삶을 비웃었다는 유럽인들이 차라리 불쌍해 보였다. 나와 다른 것은 그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가 새삼 떠올랐다. 불편 속에서도 대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8.08.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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