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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남들 모르게 서서히…
"전 우울증 입니다"

by머니투데이

"너 우울증 맞아?"…평범한 그 사람, 아픕니다

[우울증 수난시대-①] "설마 내 주위에?", "우울증 환자처럼 안보여"

남들 모르게 서서히… "전 우울증 입

/사진=이미지투데이

"저 사람 우울증 맞아?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직장인 A씨는 최근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한 연예인을 보고 의아했다. TV에선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활발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A씨의 동료는 A씨에게 "우울증 환자도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겉으로는 판단하긴 어렵다"라고 조언했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편견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는 나날이 늘고 있지만 왜곡된 인식은 여전하다. 우울증에 대한 고정관념은 환자들이 치료나 공개를 꺼리도록 만든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에 나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내 주변에도?"…우울증, 내 옆에 있다

남들 모르게 서서히… "전 우울증 입

우울증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은 '소수의 사람만 겪는 병'이라는 인식이다. 직장인 나모씨(40)는 "가족이든 동료든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순 있겠지만 많을 것 같진 않다"면서 "특히 회사에선 그렇게 보이는 이들이 많진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울증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더 가까이, 널리 퍼져있다. 기자가 지난달 30일 사내 직원 28명을 상대로 '보건복지부 우울증 자가진단표' 검사를 실시한 결과 11명이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이들 가운데서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는 이들의 비율이 상당한 것.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우울증 환자수는 최대 214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성인의 4.54%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이의 비율은 낮다. 보건복지부가 펴낸 '2016년 정신질환실태조사'에 따르면 기분장애(우울, 기분부전, 양극성장애 등)를 앓고 있는 사람 가운데 건강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52.5%로 절반을 겨우 넘겼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75.9%·복수응답), '남이 알까 봐'(30.5%) 등을 꼽았다. 여전히 우울증을 혼자 나을 수 있거나, 숨겨야 하는 치부로 여기는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알코올중독부터 '가면'까지…우울증의 '여러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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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도 남아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 하면 '고독', '무표정' 등을 떠올리지만 실제 우울증 환자들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에 대한 이미지가 거의 고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알코올 중독, 가면성장애, 은둔형 외톨이 등 다양한 모습"이라며 "흔히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모습으로 한정해 생각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앓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 교수는 "우울증은 생명을 갉아먹고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심각한 질환"이라며 "그런데도 여전히 그저 슬플 때를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거나,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데도 모르고 지나치는 등 우울증을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울증은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고 완치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울증 환자가 '잠재적 살인마'?

[우울증 수난시대-②] 우울증, 공격성 발현 가능성 극히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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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무고한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여전히 거세다. 피의자 김성수(29)가 게임비 1000원을 환불받지 못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진술, 성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기에 김성수가 우울증을 근거로 심신미약을 주장했단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더욱 들끓었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하지 말라'며 김성수에 대한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는 111만명을 넘어선 상태. 김성수의 '우울증'이 분노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분노의 한편에선 '우울증'에 대한 공포가 샘솟고 있다. 김성수를 비롯한 최근 강력범들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례가 잇따르며 우울증이 강력범죄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 '마음의 병' 우울증이 범죄 우려가 큰 위험한 질병이란 인식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울증과 범죄의 연관성이 극히 드물다고 지적하며 이와 관련된 사회적 편견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화가 많고 폭력적이냐고요? 아뇨, 그냥 졸리고 한없이 무기력해요"

 

우울증을 강력범죄의 잠재 원인이라 여기는 이들 다수는 우울증의 '우발성'을 그 이유로 꼽는다. 우울증 환자가 옆에 있으면 '나도 언젠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도 경찰에 " 갑자기 분이 치밀어 올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대학생 강모씨(19)는 "우울증 환자가 전부 김성수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거로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김성수가 '1000원'이라는 사소한 이유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듯이 다른 우울증 환자들도 순간 '욱' 하는 감정이 들어 강력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한다. 박정하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엔 현실검증력에 장애가 생겨 판단력이 흐려진다. 이 때문에 드물게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며 "반면 우울증은 조현병과 달리 현실검증력이 낮아지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가 충동적인 행동을 보일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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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무기력함과 지속적인 우울감이다. 이러한 증상이 점점 악화되면서 신체적인 증상인 식욕저하, 두통, 소화불량, 집중력 저하 등까지 나타날 수 있다./사진=이미지투데이

우울증은 공격성과도 연관성이 떨어진다.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라 할 수 있는 지속적인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 이러한 상태에서는 공격성이 발현돼도 타인이 아닌 환자 본인을 해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박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의 공격성은 타인보다 본인을 향한다. 우울감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해 자해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우울증 환자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울증 환자들은 무기력증에 빠져 집 밖을 나서는 것도 힘들다고 호소한다. 8년간 우울증약을 복용했다는 이모씨(32)는 "감정의 고저가 전혀 없고 한없이 무기력한 상태다. 표정도 많이 없어졌다. 칼은커녕 수저 들기도 버겁다"고 털어놨다.

 

우울증과 심신미약은 별개…최근 "우울증 치료 전력만으로 심신장애 인정할 수 없다" 판결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악화하자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은 심신미약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협회)는 지난달 20일 입장문을 내고 "선량한 정신질환자들이 오해와 편견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있다"며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다. 기본적으로 심신미약이란 형법상의 개념으로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라고 밝혔다.

 

심신미약상태의 결정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이라는 게 협회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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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입장문./사진=협회 홈페이지

이어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 있다면 치료를 받게 하고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며 "작은 오해가 커다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환우를 더욱더 아프게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최근 우울증 심신미약을 주장한 우울증 피의자에 잇따라 중형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임광호)는 이웃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하모씨(50)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하씨는 자신이 2002년부터 16년간 우울증으로 70여 차례 통원치료를 받았고, 2012년에도 우울증으로 중상해 범죄를 저질러 2년 6개월간 치료감호를 받은 전력을 내세워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지난 3월 복지급여 지급에 불만을 품고 경기도 용인의 주민센터 공무원에게 흉기를 휘두른 최모씨(54)에게도 징역 6년 형이 내려졌다. 최씨 측은 재판에서 자신이 정신장애 3급으로 과거 정신질환 약물 및 입원치료를 받은 점을 근거로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김지민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 회장은 "우울증을 앓는 것과 범행 당시에 환자가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정신질환이 마치 범죄를 정당화하고 형을 감형받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낙엽처럼 사라졌으면"…가을타는 나, 비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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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나 가을 타나 봐"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쌀쌀한 가을이 오면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런 증세를 겪는 사람들은 흔히 '가을 탄다'고 표현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 증상이 지속한다면 '가을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가을 우울증은 해가 짧아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발생하는 계절성 우울증이다. 국내 성인 100명 중 3명가량이 가을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상은 일반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속적으로 △무력감 △우울함 △피로 △집중력 저하 △긴장감 △과민 반응 △외출 기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다만 다른 우울증과 달리 식욕이 증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간 밥, 라면, 빵 등을 많이 찾게 된다. 자연스레 체중도 쉽게 증가하게 된다. 충분히 자도 개운하지 않고 졸리는 등 잠의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봄·여름에 비해 줄어든 일조량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몸의 호르몬 체계가 변화하는 것이다. 가을에는 햇볕을 받을 때 활발하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분비가 감소한다. 세로토닌은 즐거운 감정을 만드는 엔도르핀 생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감소하면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 멜라토닌의 분비는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생체리듬과 수면·활동 주기 등의 부조화가 발생해 주간 졸림증과 피로가 나타난다.

 

가을 우울증은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이나 여름이 되면 자연스레 호전된다. 하지만 매년 가을 같은 증세가 반복되고 그 정도가 심해진다면 우울 증세가 더 깊어질 수 있다. 우울증으로 인한 심리적 피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증세를 느끼는 경우 가급적 의사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이 같은 가을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식단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은 트립토판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트립토판은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필수 아미노산인 만큼 반드시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바나나, 치즈, 달걀흰자, 생선, 육류, 씨앗류 등에 풍부하다.

 

햇빛에 몸을 노출해 일조량을 최대한 늘리는 것도 효과적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거나 30분 이상 외출하는 등 외부 활동을 하는 것 또한 가을 우울증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홍경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을에 기운이 없거나 기분이 처진다는 느낌이 난다면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일조량이 적은 겨울이나 장마철이 끼어있는 여름엔 햇빛이 날 때 일부러라도 밖에 나가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남궁민 기자 serendip153@mt.co.kr,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