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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빨간 날

그놈이 때리던 날,
'점심'을 굶었다

by머니투데이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학교 폭력, 그 후(後)-①]끙끙 앓는 피해자들…'학폭위' 피하는 교묘한 괴롭힘, "죽을만큼 힘들다" 호소

그놈이 때리던 날, '점심'을 굶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놈이 때리던 날, '점심'을 굶었다

1년 전 이맘때였다. '그놈' 괴롭힘이 시작된 건. 키는 비슷한데, 주먹 좀 쓴다는 녀석이었다. 돈 빌려달란 부탁을 거절한 게 화근이 됐다. 처음엔 욕설로, 그 다음엔 교묘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최대한 몸을 사렸지만, 결국 주먹질까지 시작됐다. 책·걸상과 함께 나뒹굴면서, 맞은 곳보다 친구들 시선이 더 아팠다. 그날 점심엔 좋아하는 돈가스가 나왔다. 하지만 굶었다. 입맛이 없었다. 죽고 싶고, 죽이고 싶은 날들이 계속됐다.


손 내밀지 못했다. 학교 폭력을 당한 뒤, 맘껏 웃는 날이 사라졌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가능한 조용히 있어야 했다. '표정이 너무 안 좋다'는 걱정도 들었다. 한 달을 버틴 뒤 선생님께 얘기했다. 알았다고 했는데, 달라진 게 없었다. 부모님에겐 말할 수 없었다. 걱정 끼칠까 걱정됐다. 그저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기도했다. 오늘은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중학생 A군(15)의 말이다. 집요한 괴롭힘을 자그마치 10개월이나 견뎠다.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A군은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쳤고, 살이 8kg이나 빠졌다"고 했다. A군은 반년을 참은 뒤, 부모님에게 이를 털어놨다. 학교 측 대처는 미온적이었다. 그냥 피하는 게 빨랐다. A군은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돼지'라 무작정 놀림, 친구도 피했다

그놈이 때리던 날, '점심'을 굶었다

/이지혜 디자인기자

학교 폭력을 겪은 직후, 피해 학생들 심경은 대부분 이와 비슷했다. 차이는 있지만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건 같았다. 늘 머물던 학교가, 교실이 무섭다고 했다. 하루 종일 벗어날 수 없는 게 '지옥'이라 했다. 하지만 두려워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참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도와줬으면 했다고 토로했다.


B군(18)은 중학교 때까지 활발했다. 걱실걱실한 성격 탓에 친구도 많았다. 고등학교에 와서 친한 친구들과 떨어졌다. 그리고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먹는 걸로 풀었고, 살이 많이 쪘다. 누군가 '돼지'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이유 없는 따돌림이 시작됐다. B군은 웃음을 잃어갔다. 그나마 친했던 친구 한명마저 그를 피했다. 같이 따돌림 당할까 두려워서였다.


학교 폭력에 시달린 뒤, B군은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교실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괜히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이어졌다. '공황장애'였다. 참고 참다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그 때까지도, 의사에게 "내 잘못"이라며 자책했다. 다행히 1년간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학년이 바뀌며 친구도 생겼다. 하지만 B군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고 했다.

정부 지원책 있지만, 현장서 미온적 작동

그놈이 때리던 날, '점심'을 굶었다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이들을 도울 프로그램이 없는 게 아니다. 학교 폭력이 문제로 떠오른 뒤, 다양한 지원 방안이 마련돼 있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서울위(Wee)센터 관계자는 "위센터가 17개가 있고, 2개는 피해학생 전담 센터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피해 정도에 따라 병원으로 연계하기도 한다. 치료비는 모두 무상이다. 도저히 친구들과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경우, 위탁교육기관으로 보내기도 한다. 졸업할 때까지 머물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 심리지원 등을 받고 나면 많이 회복한다"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 학생들 마음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는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얘기해봤자 해결점 자체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 부모의 경우 걱정되는 마음에, 피해 학생을 혼낸다고 했다. "어떤 행동을 했길래 그렇게 했냐"고 다그치는 것.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 위축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일부 학교들의 미온적 대처도 문제라고 했다. 학교 폭력을 겪은 C군(14)은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친구들끼리 싸우지 말고 좋게좋게 해결하라고 했다"며 "그 뒤론 그냥 참고 지냈다"고 했다. D교사(45)는 "학교 측에선 아무래도 문제가 커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학교 폭력이 민감하지 않느냐, 그래도 심한 사례는 다 해결한다"고 했다.

학폭 심부름센터 직원 "정부 정책, 너무 도덕적…우리 방법은 90% 해결"

그놈이 때리던 날, '점심'을 굶었다

'학교폭력 심부름센터' E업체 홈페이지에 소개된, 학교폭력 해결 사례. E업체 관계자는 "학폭위가 무용지물"이라며 "가려운 곳을 못 긁어준다"고 했다./사진=E업체 홈페이지 화면 캡쳐

학교 폭력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이른바 '학교 폭력 전문 심부름센터'다. 이들은 피해 학생과 등교 및 하교를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 학교 폭력을 해결한다고 했다. 필요하면 가해 학생 또래의 직원들을 투입시키기도 한다. 가해 학생을 선도하는 서비스도 있다.


이들은 학교 폭력 현장에서, 정부의 '지원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폭력 전문 심부름센터 E업체 관계자는 "학폭위는 교사들이 안 열려고 하고, 현장서 보니 정말 아무 쓸데 없다"며 "또 요즘 애들이 영악해서 학폭위에 회부될 만큼 괴롭힘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에서 좋은 정책도 많이 내놓는데, 너무 도덕적으로 봐서 그런 게 있다, 가려운 곳을 못 긁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하는 방법은 거의 90% 이상 해결이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물에 빠진 애 당장 튜브라도 던져줘야 하지 않느냐"며 "건져 놓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위센터 관계자는 "죽으려 했다 살아난 피해 학생들과 얘기해보니,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이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극단적인 걸 하지 않는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다면, 가까운 부모님에게 처한 상황을 솔직히 얘기하고, 아니면 선생님, 절친 1명이라도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