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저는 데모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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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동구 금남로와 전일빌딩 주변에 헬기가 떠 있는 것을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사진=뉴스1

아침회의. "5.18이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하다가 손가락을 꼽아보는데, 옆에서 "39주년이예요"하고 가르쳐준다.


아...30년도 넘어 40년을 바라보는구나.


어릴적 아버지의 6.25 수난사를 들으면서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로 생각했다. 4.19데모 이야기를 들어도 까마득했다.


우리 아이들, 젊은이들에게 5.18은 그때 나로 치면 4.19나 6.25보다도 더 먼, 8.15, 아니 2차대전때 같은 이야기겠구나.


'그 때' 이후에 태어난 후배 기자들이 쓴 [나의 5.18] 기사들을 읽다가 콧날이 시큰했다.


책에서만, 대학 사진전에서만, 영화에서만 본 5.18이지만 이 친구들의 마음속에도 5.18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우린 여전히 그렇게 5.18을 미완으로 후배들에게 미뤄왔다. 40년이라는 시간감각이 마비돼 아직도 얼마 안된 일인걸로 느껴지는건 그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착검한 M16을 들고 '경계총'자세로 길 양편에 늘어선 공수부대원들 사이로 학교에 가던 39년전 오늘. 5월17일.


"너희들도 크면 데모할거지?" 라며 긴 곤봉으로 몸을 툭 치던 군인아저씨들에게 "아뇨, 우린 데모안해요"라고 종종걸음으로 빠져 나갔었다. 사흘뒤, 나와 같은 또래의 동신중 3학년 박기현은 똑같이 "저는 데모 안 해요!"라고 사정했지만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곤봉에 세상을 등져야 했다.


콩볶듯 들려오던 총소리,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M60기관총탄의 궤적, 시 외곽에 있던 우리아파트 옥상에서 경계를 서던 시민군, 그들에게 밥을 해서 나르던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 마지막날 새벽 "도청으로 와달라"던 젊은 여성의 확성기 속 절규...


중학교 2학년이던 내게 5.18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2가 뭘 어찌 해 볼게 있었을까마는, 중2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두고두고 짐이 됐고, 부끄러움이 됐다.


나야 어렸던 게 다행이었지만, 그때 나의 아버지 어머니 형,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 날들을 버텨냈을까.


이젠 내가 '5.18때 그 사람들'보다 나이가 훌쩍 들었지만, 다시 그런 '짐승세상'을 대했을때 '사람'처럼 행동할 용기를 새털만큼도 만들지 못했다. 이젠 오히려 나이든 걸 핑계로 살아갈 뿐이다.


광주에 있던 그 사람들 만은 아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실제로 옆사람이 죽어나가는 공포를 무릅쓰고, 도저히 무너질 거 같지 않은 거대한 폭력에 비참하게 당하면서도 양심의 소리를 따른 사람들에게 우린 모두가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그 빚의 무게를 헤아리기는 커녕, 마땅히 분노할 일에 항거해 목숨을 던졌던 사람들을 욕보이는 요설을 내두르는 이들에게서 5.18현장의 짐승들 모습을 다시 본다.


그 때 귀를 막고, 눈 옆을 가리고, 열심히 '노력'해 기어코 얻고자 하는 걸 얻어낸 자들이 대개는 그 맨 앞줄에 서 있다.


김준형 기자 navido@mt.co.kr

2020.04.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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