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엔 시가가서 도련이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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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남존여비' 구시대적 가족 호칭에 여성들 "내가 바꿔보겠다"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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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윤정씨(가명·31)는 시가만 가면 말수가 줄어든다. 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남편 동생들을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게 영 입에 붙지 않아서다. 호칭을 쓰고 싶지 않아 아예 대화를 자체를 피하게 된다. 이번 추석엔 또 어떻게 해야 '호칭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이씨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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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앞두고 불평등한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고 있다. '시댁'. '서방님' 등 유독 남편의 가족 구성원만 높여 부르는 관행이 불평등하다는 지적이다. 기혼 여성들 사이에선 시대가 달라진 만큼 이번 명절엔 스스로 나서서 성평등 호칭을 사용하겠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8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시민 11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명절에 성차별적인 언어를 들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응답자 83.2%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명절에 자주 쓰이는 가족 간의 호칭은 성차별 언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남편 쪽 가족은 '시댁'(媤宅)이라 높이지만, 아내 쪽 가족은 '처가'(妻家)라고 낮춰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여성이 시가 구성원을 부를 때 '님'자가 붙거나 존대의 의미가 담긴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남성이 처가 구성원을 부르는 호칭엔 존대의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 누나는 형님, 기혼 남동생은 서방님, 미혼 남동생은 도련님, 여동생은 아가씨라고 칭한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오빠를 형님, 언니를 처형, 남동생을 처남, 여동생을 처제라고 부른다. 아내의 오빠를 제외하곤 '님'자가 붙지 않는다.


또 남편의 부모님은 '아버님' '어머님'이지만 아내의 부모님은 '장인' '장모'다. 남편 형의 부인은 '형님'이라 부르지만 아내 오빠의 부인은 '아주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뚜렷한 차이에 성차별적 호칭을 평등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일상 속 호칭 개선 방안' 설문조사를 실시해 총 8254건의 국민의견을 분석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93.6%가 '도련님·서방님·아가씨 호칭을 바꾸자'고 답했다.


'도련님·서방님·아가씨'라는 호칭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조사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60.7%는 '부남·부제'를 꼽았다. 이는 '처남·처제'에 대응하는 표현이다. '○○씨', '동생' 등으로 부르자는 의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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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30 기혼 여성들은 가족 호칭을 적극적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결혼 5년차 주부 양모씨(36)는 "올해 초 남편에게 '당신은 내 동생을 '처제'라 부르며 반말하는데 나는 왜 당신 동생을 '아가씨'라고 존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댁도 올해부턴 시가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했다"며 "내 말을 듣더니 남편도 호칭이 불평등한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동생을 편하게 부르라고 하더라. 나 대신 시가 어른들께 호칭을 바꿔부르겠다고 말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혼 1년차 직장인 김모씨(28)는 "연애할 때부터 남편 남동생이랑 자주 봐서 엄청 친한 사인데 결혼하고 '도련님'이라고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난스레 '야, 도련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가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라며 "당사자나 남편 앞에선 '도련이'라는 호칭을 쓰지만 시가 어른들 앞에선 아직 '00씨'라고 이름을 부른다"고 말했다.


여전히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싱이 깊게 박힌 구시대적 호칭을 사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여성들도 있다. 직장인 이모씨(30)는 "잘못된 걸 아는데 시가 어른들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아가씨', '도련님' 등 호칭을 써야 한다. 이런 호칭을 강요당할 수록 시가 식구들과의 심리적 거리가 더 멀어진다"고 토로했다.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가족 호칭을 대체할 대안 호칭을 제안하는 등 성평등한 명절 문화 정립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에도 가족 호칭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구성원 간의 소통을 저해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면서 "성별과 세대를 넘어 가족 구성원이 서로 동등하게 존중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park0801@

2019.09.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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