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도 초대?…활짝 핀 아베 '벚꽃 스캔들'

[이슈]by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발단은 후원회 초청해 쓴 '식비'

세금 들여 고급 식단·공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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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베 신조 일본 총리 SNS.

매년 총리가 주최하는 일본의 국민행사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회)'이 아베 신조 정권을 둘러싼 스캔들로 번지고 있습니다. 본래 각 분야에서 공적이나 공로가 있는 인사들을 초대해 격려하는 자리가 아베 후원회 회원 등 별 상관 없는 인물들이 참석하는 자리로 변질되면서 '사유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벚꽃회는 국민의 세금으로 열리는 행사인 데다가 일본인들에겐 벚꽃회가 가지는 의미가 남달라 그야말로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아베 총리가 올해 행사 단 하루에 세금 6억원을 지출한 내역들을 보면 가히 '회식왕'이라고 부를 법도 합니다.

벚꽃회가 대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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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벚꽃회는 매년 4월 일본 총리 주관으로 열리는 행사입니다. 행사장소는 과거 일본 왕실의 정원이었던 도쿄의 국립공원 신주쿠교엔. 65종에 이르는 벚꽃나무가 1300그루 이상 심어진 곳으로 일본의 벚꽃 명소로 꼽히는 곳입니다.


벚꽃회는 왕실이 국제 친선을 위해 개최하다 중단됐는데, 1952년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가 재개하면서 여태껏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행사가 취소된 것은 2011년 동일본 지진 때와 2012년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있었을 당시 두 번이었습니다.


일본인들에겐 벚꽃이 국화(國花) 이상의 의미인 데다가, 정부가 각계각층에서 공로를 세운 이들을 나라 최고의 벚꽃 명소로 초청한다는 점 때문에 대단한 영광의 기회로 여기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70년간 조용히 치러지던 국가 행사였지만, 이달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산당 소속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후원회 회원들을 초대한 것도 모자라 돈까지 대줬다는 의혹이 생겨났고, 아베 총리를 비롯해 부인인 아키에 여사도 직접 초대 명단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문제가 커졌습니다. 초대인들 중엔 야쿠자나 악덕 다단계 기업의 수장도 초청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왔고, 일본인들 사이에선 '한 다리만 건너면 문자로 초청장을 받을 수 있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연예인들을 향한 비난도 거세졌습니다.


아베 총리는 문제제기 닷새 만에 "내년에 행사를 열지 않겠다"고 굽혔습니다. 이후 '영수증을 제시하라', '초대 명단을 공개하라' 등 야당이 집중 공세를 펼쳤고, 내각위원회에서 급기야 초청 명단 자료요청까지 하자 아베 총리는 곧바로 명단을 파쇄기 넣어 갈아버렸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라도 내놓으라는 요구에 지난 28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복원할 수 없다"고만 말하고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벚꽃스캔들 발단은 '식비'…단돈 5만원에 '호텔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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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벚꽃스캔들의 발단은 올해 행사 전야제에서 발생한 '식비'였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행사 전날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의 후원회 관계자 등 850명을 초청해 전야제를 열었는데, 1인당 회비 5000엔(5만4000원)을 받고선 각종 초밥과 스테이크, 고급 술까지 제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에 유명 가수 초청무대까지 벌어졌습니다. 상식적으로 5000엔이라는 돈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규모의 화려한 행사였고, 정치권에선 행사비의 절반 이상을 아베가 대줬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이례적으로 지난 15일 하루에 두 차례나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0개가 넘는 질문을 받고 장황한 해명을 늘어놨습니다. 당시 아베 총리는 "단체 숙박을 했기 때문에 할인가가 적용됐으며 모두 더치페이했다"고 했지만, 아베 총리가 아예 벚꽃 관광코스까지 만들어 자신의 후원자들의 친목모임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관련 증거들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일본 주간지인 슈칸분슌(주간문춘)은 2015년 자민당의 정치자금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야마구치현 지부가 벚꽃회 관련해 여행사에 89만엔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의혹은 점점 사실에 가까워지는 듯 합니다.

과자 먹던 행사가 스시에 술 잔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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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재팬타임스는 벚꽃회가 초창기엔 간단한 과자와 음료 등을 제공하고, 기껏해야 치킨 같은 음식을 나눠먹는 정도에 그쳤는데, 아베 총리 부임 후엔 초밥과 고급술까지 등장하는 등 메뉴 구성이 확 바뀌었다고 전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정권이 2017년 벚꽃회 행사부터 야마구치현(아베의 선거구)의 사케를 제공했는데, 이는 한 병에 판매가만 7300엔(약 7만9000원)으로 고급명주에 속한다고 합니다.


왜 갑자기 행사에 쓰이는 음식 단가가 높아졌는지를 두고, 일본 정치권은 계약을 맺은 업체 임원이 아키에 부인과 매우 가까운 사이여서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이마이 마사토 무소속 의원은 "회사 임원이 아키에 부인과 사이가 좋은 데다가 페이스북에 아베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사는 벚꽃회에 음식을 제공한 지는 20여년이 됐지만, 아베 집권 이전에는 다른 업체들과 함께 특정 품목만 납품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이후엔 갑자기 단독으로 벚꽃회 음식을 전부 제공키로 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2020년까지 6년간 이 회사가 받는 금액은 총 1억엔(약 10억7800만원) 상당입니다. 2014년 계약 금액은 1350만엔(1억4500만원) 수준이었고, 올해는 2200만엔(2억3700만원)이었습니다.


총리가 세금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썼다는 비판에서 시작돼 아베 총리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특정업체에 특혜까지 줬다는 논란까지 번지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아베 총리 집권 전까지만 해도 벚꽃회 초대손님은 1만명을 넘지 않았는데, 제2차 아베 내각 초기인 2014년엔 1만3700명, 올해엔 1만82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여기에 쓰인 예산도 2014년 1776만엔(약 1억9000만원)에서 올해는 5518만엔(약 5억9500만원)으로 5년 사이 3배 넘게 지출액이 늘었습니다. 비록 취소는 됐지만, 아베 총리는 심지어 내년도 예산을 5700만엔(약 6억1400만원) 이상으로 잡기도 했습니다.

연예인도 국민도…'갔나 안갔나'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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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가 벚꽃회에 참가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사진. 오른쪽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사진=트위터 캡처.

벚꽃회에 대체 누가 갔는지는 일본 전국민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명단을 숨겨버린 상황에서 아베 후원회를 넘어 특정 연예인, 야쿠자가 초대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처음에는 초청에 아예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지난 2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총리가 1000명, 부총리와 관방장관 등이 1000명, 자민당 관계자들이 약 6000명을 추천했다"고 실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도 초청자 선정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9일 아사히신문은 2015년 벚꽃회에 다단계 판매로 악명 높은 재팬라이프 회장도 초청받았다고 전하면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소개했습니다. 재팬라이프는 이때까지만 해도 소비자청으로부터 2번의 행정지도를 받았고, 행사 이후인 2016년엔 상거래법 위반으로 업무정지 명령을, 2017년엔 부도까지 냈습니다. 올해 들어선 일본 경시청이 압수수색도 단행했습니다.


후쿠시마현의 한 자영업자 여성(68)은 "재팬라이프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아베 총리에게서 벚꽃회 초대장이 왔다고 홍보하며 '회장이 총리와 식사하는 사이'라고 말했다"면서 "이를 믿고 돈을 투자했다가 몽땅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연예인들의 참석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평소에 '회식'을 가졌던 방송사와 연예인들을 벚꽃회에 초대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선 "왜 당신이 참석하느냐" "아베와 회식을 즐기느냐" 등 비방이 커졌고, 이에 연예인들의 태도는 아베 옹호론을 펼치거나 단 한번도 간적이 없다며 해명하는 쪽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일본 매체 익사이트는 "아베 정권은 지금까지 언론인과 연예인들을 회유하거나,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각종 회식 자리와 벚꽃회 등을 이용해왔다"면서 "이번 사태로 아베 옹호론을 펼치는 연예인들은 '더치페이'를 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베 지지자들은 여론이 악화하자 소셜미디어(SNS)에서 벚꽃회에 참석해 음식을 먹은 사진들을 황급히 지우고 있기도 합니다.


급기야 지난 20일 벚꽃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가 20여개의 주력 언론사 관저 출입 기자들과 호텔 중식당에서 '회식' 자리를 가지며 회유했다고 일본 월간지 사이조가 보도했습니다. 사전에 예정된 자리가 아니라 아베 총리가 며칠 앞두고 급조한 만남인데,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자제해달라는 회유 작업을 펼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모임은 '더치페이'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아베 총리의 보좌관은 "영수증과 명세서가 필요한가요?"라며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이 시국'에서도 아베 총리는 언론사와의 회식으로 이번 스캔들을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영수증 농담이 결코 가벼워보이지 않습니다.


강기준 기자 standard@mt.co.kr

2019.11.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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