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넘어 '게르만·배달족' 연합사령관 된 김봉진

[비즈]by 머니투데이

[편집자주] 국내 1위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팔린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등 경영진과 투자사들은 40억 달러(약 4조7500억원) 규모의 잭팟을 터트리게 됐다. 이번 딜은 아시아 음식 배달 시장을 평정해보겠다는 한국-독일 동맹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국내 배달 시장에선 DH 계열사들의 시장 독점에 대한 우려가 많다. '배달 빅딜'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알아봤다.

[DH 배달 천하] '배달 빅딜' 이끈 김봉진 대표의 '경영능력·지향점·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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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5조원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글로벌 모바일 배달 서비스 기업에 회사를 팔았다. 현대건설, 삼성카드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6년 전만 해도 100억원을 살짝 웃돌던 우아한형제들 기업가치는 지난해 말 3조원으로 뛰어올랐고,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4조7500억원(4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우아한형제들의 우아한 엑시트(투자금 회수)다. 대한민국 창업 역사에 큼지막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김봉진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회사를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DH)는 그를 아시아 사업을 총괄하는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한국 적장’을 ‘아시아 수장’ 자리에 앉힌 셈이다. 때문에 DH가 5조원 가까운 돈을 주고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이유는 현재의 회사 가치보다는 창업자 김 대표의 미래 가치를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맨손으로 '유니콘' 만든 김봉진의 경영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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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아한형제들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키워낸 김 대표의 경영능력이 DH의 적극적인 구애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김 대표의 탁월한 경영능력은 배달의민족 성공신화로 입증됐다. 공고, 디자이너 출신인 김 대표는 뒷배경 없이 자신의 힘으로 배달의민족을 국민 앱으로 키웠다. 배달의민족은 누적 다운로드 4500만건, MAU(월간 순방문자 수) 1100만명, 등록 업소 20만곳, 연간 거래액 5조원을 넘어섰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안클릭이 배달 앱 MAU 집계를 시작한 2012년 10월 이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연간 매출 3193억원, 영업이익 586억원을 달성했다. 전년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96%, 170%씩 늘었다.


DH는 2012년 요기요를 출시하고 배달의민족을 매섭게 추격했지만 ‘만년 2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길 수 없는 적이라면 동지가 되라’는 격언에 따라 우아한형제들과 한 배를 타는 결정을 내렸다. 두 회사의 결합은 사실 오래 전 이뤄질 뻔했다. 김 대표와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DH CEO(최고경영자)는 2011년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 인수합병(M&A)을 포함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협상은 결렬됐으나 두 창업자는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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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독일 베를린에서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 M&A 논의 과정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왼쪽부터 강석흔 본엔젤스 대표,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딜리버리히어로 CEO,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김광수 우아한형제들 CTO. /출처=강석흔 본엔젤스 대표 페이스북.

이후 외스트버그 CEO를 비롯한 DH 경영진은 한국 배달 앱 시장에서 대규모 브랜드 마케팅, 바로결제 서비스, 수수료 0% 선언 등 김 대표의 경영수완을 지켜봤다. 2015년엔 김 대표가 음식점 가맹점들의 바로결제 수수료(6.5%) 폐지 결단을 내놓으며 업계를 긴장시켰다. 경쟁업체들은 ‘제 살 깎기 경쟁’이라고 우려했지만 결과적으로 배달 앱 가맹점과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며 시장 파이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DH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시장 공략을 공을 들이고 있다. DH의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는 전체 주문량의 38%, 매출, 전체 수익의 32%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이런 이유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달음식 천국 한국에서 보여준 김 대표의 경영능력이라면 아시아 시장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때마침 배달의민족도 올 5월 베트남에 진출했다. 우아한형제들 인수 추진이 급물살을 탔다.


김 대표는 우아한형제들과 DH가 싱가포르에 설립하는 합작사 우아DH아시아 회장으로 취임해 베트남과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12개국 사업을 총괄한다. DH 본사에 구성된 글로벌 자문위원회 멤버 3명 중 1명으로 외스트버그 CEO와 에마누엘 토마신 CTO(최고기술책임자)와 함께 DH 경영을 이끈다. DH 인수로 김 대표를 비롯한 우아한형제들 경영진 주식 13%는 DH 지분으로 맞교환된다. 지분 가치가 6000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가 DH 경영진 중 최대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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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라스트마일… '같은 곳' 바라본 김봉진과 외스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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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형제들이 개발한 서빙로봇 '딜리'. /사진제공=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가 구상하는 미래 청사진도 DH가 그에게 빠져든 이유로 꼽힌다. 김 대표는 AI(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실내 서빙 로봇 ‘딜리’를 비롯해 다양한 자율주행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개별 가구까지 배송이 가능한 배달 로봇 상용화를 이뤄낸다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이를 위해 로봇 개발 관련 인재를 지속적으로 영입하고 산학 협력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전체 임직원 1400여명 중 30%가 엔지니어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 200만 달러(당시 2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가짜 리뷰를 걸러내고 이용자 개인별로 입맛과 취향에 맞춰 음식과 메뉴를 추천해주는 AI 서비스도 내놨다. “드론, 로봇 등장은 배달음식 시장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던 외스트버그 CEO의 전망을 김 대표는 이미 하나씩 실천하고 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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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앱에 선보인 'B마트'. 간편식, 생필품을 초소량, 즉시 배송하는 서비스다. /사진제공=우아한형제들.

DH는 배달음식을 넘어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는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배송 단계를 의미한다. 최근 배달의민족은 서울에서 초소량, 즉시 배달을 앞세운 ‘B마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간편식과 생필품 등 2500여개 제품을 5000원부터 주문할 수 있고, 1시간 내 배송한다. 서울 지역 곳곳에 도심형 물류센터를 마련하고, 음식배달 노하우를 배달 영역 확장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배달음식을 넘어 주문 물류 플랫폼으로 도약을 노리는 DH의 지향점과 일치한다. DH 코리아 역시 편의점,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과 협업한 라스트마일 배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외스트버그 CEO는 최근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방식의 주문이 IT 발달의 힘으로 가능해질 것”이라며 “주문부터 배달까지 이어지는 전반적인 과정을 강화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봉진의 차별화 전략 '배민다움'… DH로 '이식' 노린다

김 대표의 탁월한 브랜딩 능력 역시 DH가 그를 낙점한 이유다. 김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B급 문화, 언어유희 등을 앞세운 브랜드 마케팅을 펼쳤다. 디자이너 출신인 김 대표의 감각이 돋보인 차별화 전략이다. 배달의민족은 브랜드제품 ‘배민문방구’,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매거진 F’, 배민체를 비롯한 한글글꼴 개발 등으로 이용자들에게 ‘배민다움’을 전파했다. ‘배민 신춘문예’, ‘치믈리에 자격시험’, ‘떡볶이 마스터즈’, ‘배민라이브’ 등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행사를 펼치면서, 독보적인 브랜드 입지를 구축했다. 배달의민족은 팬클럽 ‘배짱이’를 운영하고 있다. 배짱이는 ‘배달의민족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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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형제들이 올 5월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진행한 'ㅋㅋ페스티벌'에 마련된 '배민문방구'. 배민문방구는 B급 문화, 언어유희 등을 반영한 배달의민족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 /사진제공=우아한형제들.

DH는 ‘우버이츠’, ‘그랩’, ‘고젝’ 등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업체들과 배달음식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대규모 할인 마케팅에 기반한 출혈경쟁을 넘어서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 대표가 글로벌 자문위에 합류하는 만큼, 세계 각국으로 배민다움 전파가 이뤄질 전망이다. 적극적인 M&A로 몸집을 불린 외스트버그 CEO는 특정 국가의 우수사례를 적극적으로 공유해왔다. 요기요 앱에서 클릭하면 바로 전화가 걸리는 ‘클릭 투 콜’ 기능을 스웨덴, 동남아 등 해외 계열사 앱들에 적용한 게 대표적이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2019.12.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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