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앞에 앉은 이들

[컬처]by 웹진 <문화 다>

먹방의 인기가 끊이질 않는다. 먹방 콘텐츠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종류로 분화되며 발전이다. 세계 주요 식품산업을 좌우하는 매개로도 자리 잡았다. 백종원 같은 음식전문가만의 영역도 아니다. 비싸고 희귀한 메뉴를 즐기는 것도 아니다. 지상파 방송의 세련되게 편집한 먹방 프로도 인기지만 1인 유튜버의 단순한 영상 하나하나도 수십 수백만 조회 수를 찍는다. 입담 좋고 매력적인 젊은 남녀부터 4세 어린이나 80대 노인까지 유튜버로 변모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로 먹방 세부 콘텐츠를 주도한다. ‘최고의 치킨’ 같은 먹방 드라마도 있고 ‘먹는 존재’ 같은 먹방 웹툰도 인기 절정이다.

 

이쯤에서 다시 물어보자. 대체 왜 먹방을 볼까? 먹방을 포르노와 비유하기도 하는데 적절한 비유일까? 먹방열풍 속에 우리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욕망과 공감의 먹방 심리학

먹방 앞에 앉은 이들

60만의 구독자를 가진 인기 먹방 유튜버 중 하나 스테파니 수의 영상. 조회 수 백만을 훌쩍 넘는 영상들이 여럿이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먹방의 종류를 잘 들여다보면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일단 음식을 먹으며 이에 대해 출연자들 사이 혹은 시청자를 대상으로 평가를 늘어놓는 ‘품평 먹방’은 대표적인 먹방 형식이다. 먹는 장면을 주목해 보여주지만, 시식 이전과 이후 늘어놓는 시식자의 기대와 평가의 대사가 시식의 의미를 완성한다.

 

음식 조리법만이 아니라 재료나 조리사, 지역에 대해서까지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자칫 길을 잃을지도 모를 먹음의 모호함 앞에서 먹음에 대한 이해까지 도움받는다. 소위 ‘편안한 공감’을 즐길 수 있다.

 

공감 즉 ‘함께 느끼기’의 효과는 소위 ‘엽기 먹방’을 통해서 확대 달성된다. ‘매운 떡볶이 먹은 영국인의 반응’, ‘초밥 백 개 먹기’, ‘10분에 짜장면 13그릇 해치우기’ 따위다. 공포영화를 혼자 보러 가는 이는 드물고, 롤러코스터는 둘씩 앉게 되어 있다. 짜릿함은 함께 느껴야 제대로다. 엽기 먹방은 간단한 상상력으로 무한조합이 가능한 셈이니 유튜버나 아프리카TV 등에서 유사 영상이 끝도 없이 제작된다.

 

말 한마디 없이 그저 홀로 먹는 ‘혼먹방’은 먹방의 정수를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대사와 주변환경을 삭제하여 오로지 먹는 이의 표정, 손놀림, 입놀림의 영상과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끔 연출된다. 유튜브와 아프리카TV에서 주도했지만 이젠 지상파 방송으로도 인기다.

 

혼먹방의 심리를 두고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줄여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정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을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홀로 식사하는 혼밥 중에나 심지어 자기 전에도 먹방 ASMR을 켜 놓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먹방은 재미의 필요조건 두 가지―욕망의 해소와 공감의 안락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달성해 왔다. 실제로 병상에 누워 식욕을 잃은 환자가 먹방을 보고 위로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CNN은 먹방을 소개하며 소셜이팅(Social Eating)으로 정의했다. 영상 속에서든 영상 밖 시청자든 함께 먹는다는 사실이 먹방의 핵심이다. 먹음을 매개로 사람들은 연합과 친밀함을 이룰 수 있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그라드는 타자의 농밀함

먹방 앞에 앉은 이들

케이블티브이에서 큰 인기를 끈 ‘맛있는 녀석들’ 중 한 장면.

그러나 왜 하필이면 ‘먹음’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석연치 않다. 그것도 왜 ‘남의 먹음’인가. 음식 포르노라 일컬으며 퇴행성에 대한 거센 지적도 이곳에 닿아 있다. 먹는 행위는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사적인 면모가 있었다. 사적인 행위의 공공화는 위험하다. 트림, 방귀, 침, 꼬르륵 소리, 쩝쩝대는 소리, 꿀꺽 마시는 소리, 먹는 입 모두 의례적으로 감춰야 할 사적 영역이었다. 이제 이런 규제가 허물어지고 있다. 브래지어 따위 풀어버리자는 페미니즘처럼 허리띠를 풀고 게걸나는대로 먹어보자는 먹음이즘이다.

소설가 김정남은 본지에 올린 글에서 근래 먹방 현상은 식욕과 성욕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고 썼다. 가장 원초적인 두 본능의 동일시에 그토록 열광하는 모습은 바로 ‘사회적 존경은커녕 생존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자아실현은 꿈도 꿀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갈파한다(김정남, ‘먹방, 쿡방, 욕망의 포르노화’, 2016년 2월).

성욕과 식욕이 인간 본연의 원초적 욕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포르노와 먹방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포르노의 퇴행적인 폭력성은 자명하다. 여성은 상품화되고, 성역할은 고정되고, 현실은 부족함으로 채워진다. ‘먹방’의 퇴행적인 폭력성은 자명하지 않다. 음식은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다. 음식의 교환에 근본적인 터부란 없다. 사회 특히 여성 대부분은 포르노의 유통 금지에 찬성한다. 그러나 먹방 금지를 요구하는 이는 드물다. 하기야 정부는 ‘국가 비만 관리 대책’이라며 먹방의 규제에 나서기도 했다. 눈 꼭 감고 먹음의 자유, 아니 먹음규제로부터의 자유라는 환상에 빠져든 이들에겐 한심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포르노와 먹방 사이에는 중요한 비유가 가능하다. ‘부족’을 채워주는 기능이다. 원만한 남녀관계와 실현 가능한 성생활에의 추상이 유지되는 이상적인 관계,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해보면 그곳엔 포르노가 발 디딜 곳이 없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원만하고 만족스럽게 함께 식사에 참여하는 식구(食口)들이 혼먹방을 틀어놓고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포르노는 어떤 부족분을 채워주는 수동적인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다. 채워지지 못한 성욕을 해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왜곡된 성욕을 증폭·생성하는 주체가 바로 포르노요 성산업이다. 이로 인해 성욕은 부채질 되고, 남녀는 구별되어 분리되고, 몸은 욕망만을 위한 물체로 타자화된다.

 

즉 포르노와 먹방은 모두 비수를 숨겨두고 우리에게서 타자의 농밀함을 끝도 없이 자르고 찔러 없앤다. 온전한 인간에게서만 뿜어져 나오는 농밀함.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그리고 각종 내려받기 사이트와 불법접속 사이트는 인간에게서 팔다리를 자르고 스스로 인간의 팔다리가 된다. 국경 따위랴 코웃음 치는 자본의 파급력에 홀로 남은 개인들은 성욕과 식욕을 한편에 클릭하는 손가락을 다른 한편에 둔 욕망과 소비의 쌍방울로만 남는다.

먹방 앞에 소외된 음식, 소외된 사람

Mukbang은 Sushi처럼 국경 따위 모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빼고 먹방의 지구촌 유명세를 말하기 어렵다. 조중동 따위 친자본 언론들은 먹방을 ‘신한류’라며 돈 되는 장사라고 부추긴다. 실제 음식산업은 먹방에 요동친다.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은 최근 3년 동안 수출액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급증한 수요에 ‘곱창대란’이 일기도 했단다. 그러나 먹는 입은 제한돼 있다. 반대로 판매가 줄어든 음식은 무엇인지, 먹방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생존 전략은 그렇다면 역시 먹방 밖에는 없는가.

 

한쪽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처절한 먹방 앞에 앉은 혼자된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는 그들을 떠올린다. 먹방들이 채워주는 그 수많은 외로운 영혼들―대한민국에 그리고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믿을 수 없을 만치 소외된 어른과 아이들, 스마트폰을 움켜쥐고 잠깐의 몰입에 입맛 다시는 장면이 먹방마다에 어른거린다.

 

그들이 앉은 말이 사라진 식탁의 으스스함도 느껴진다. 곧 느끼는 이조차 없어질 으스스함. 손에 쥔 먹방과 밥그릇만 응시하며 먹는 기괴한 식탁은 곧 도래할 미래의 표준이다. 페미니즘과 성산업이 역설적으로 공진화하듯, 먹음에의 해방은 그렇게 타자와의 단절을 불러 여전히 지극히 사적인 행위로 남을 것이다.

 

오영훈(문화 칼럼니스트)

2019.02.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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