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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꿈이라는 길·영화라는 길·공간이라는 길

'춘몽'에 다가가는
세 가지 길

제목부터 영화의 색깔이 분명한 영화 '춘몽'. 이 영화는 문학적인 제목만큼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꿈과 시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듯 '춘몽'도 딱 떨어지는 감상이 어려운 영화다. 여러 번, 그리고 정확한 지향점을 그리고 본다면, 감독과 공명하는 지점이 더 커지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난해하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정서와 감정적 울림은 선명하다. 그래서 재미있는 영화다. 이번 글엔 '춘몽'에 다가가는 세 가지 열쇠를 제시해보려 한다. 물론, 자신만의 열쇠로 영화를 열어도 좋으니 집착하지는 않기를.

'춘몽'에 다가가는 세 가지 길

꿈에 관한 이야기

'춘몽'은 누군가의 꿈을 따라가는 듯 영화이기에,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기엔 벅찬 영화다. 특히 한 번의 감상으로 모든 것을 따지며, 의미를 찾고 영화에 답을 구하는 것은 꿈의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난해함에 일일이 질문을 던지기보단, 제시된 상황을 보고, 인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들의 정서를 따라가자. 이해에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인물의 정서와 욕망을 엿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꿈이 현실에서 못 이룬 욕망의 투영이라고 할 때, '춘몽'의 인물들은 이 영화 속에서 마음껏 자신이 바라는 바라를 꺼내놓는다. 다양한 이야기가 거칠게 조립된듯한 영화에 일관적인 것 중 하나는 인물들이 보이는 성격과 욕망이다. 지질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한 그들의 고백에 귀 기울여보자. 그들의 작은 욕망이 투영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해를 넘어 다가오는 감정적 울림이 있을 것이다.

'춘몽'에 다가가는 세 가지 길

영화에 관한 이야기

'춘몽'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영화' 그 자체를 소환하고 생각하게 한다. 인물들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장면으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더불어, '춘몽'엔 장률 감독의 전작 ('당시')이 소환되어 토론의 장을 마련해준다. 영화에 대한 영화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전작을 호명한 장률 감독에게 '춘몽'은 어떤 영화일까.

 

'춘몽'에서 더 화제가 된 것은 예리(한예리)를 제외한 세 명의 주연이 모두 현직 감독들이란 것이다. 모두 본명으로 등장하는 세 감독 익준(양익준), 정범(박정범), 종빈(윤종빈)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뛰어난 연기를 보인다. '감독은 연기도 잘해야 하나보다'는 선입견을 품게 할 정도로 이들의 연기는 놀랍고, 또 영화와 잘 어울렸다. 이렇게 '춘몽'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을 모았고, 또 이 감독들의 전작과 연관성이 있는 캐릭터도 한데 모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이면서도, 인물 저마다의 개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춘몽'에 다가가는 세 가지 길

공간에 대한 이야기

'춘몽'의 주 무대가 되는 '수색'은 영화 속 인물들의 일관된 욕망처럼, 이 영화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 공간은 장률 감독이 자주 방문하는 공간으로, 그가 개인적으로 느낀 공간에 대한 감상이 '춘몽'에 묻어있다. 영화가 흑백으로 된 이유도 그가 수색을 생각할 때, 색을 떠올릴 수 없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보고 직접 밟은 수색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양껏 담긴 영화가 '춘몽'인 것이다.

 

건물주인 종빈을 통해 한국에서 '땅'이 가진 의미에 관해 물음을 던지는 감독은, 수색과 DMC의 대조를 통해 공간이 가진 정서의 차이를 말한다. '춘몽'은 수색이라는 공간, 혹은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꾸는 꿈일까. 장률 감독이 중국 출신이라는 점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작용을 했을까. 그가 본 한국의 땅은 어떤 느낌일까. (흑백의 건조함이었던 걸까) 그가 느낀 수색과 DMC에서 느낀 거리감은 한국이라는 국가 내에 존재하는 공간 간의 거리감일까. 혹은 그가 느끼는 한국인과의 거리감일까. '춘몽'은 공간으로 사유를 시작할 때, 매우 복잡해지고, 다시 관람하고 싶게 한다.

 

글. 강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