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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우리에게도 고전이 생기나 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by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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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셰익스피어 각종 작품들. 현재 우리나라 공연계 책장 한쪽을 가득 메운 고전들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들이고, 고전의 향기를 풍기는 훌륭한 각색의 작품들도 낳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간지러웠다. 우리 문학적 내음을 풍기는 작품들은 없는가.


2014년 초연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6번째 무대에 오르고 있는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있다. 2019~2020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개막작으로, 9월8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관객을 다시 만나고 있다.


외설로 치부되던 ‘변강쇠타령’을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고선웅의 극본·연출, 원전의 소리와 민요·가요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흥을 자극한 한승석의 작창·작곡이 이 작품을 굴리는 커다란 두 개의 바퀴다.


이 바퀴를 굴리는 엔진은 배우들이다. 이번 시즌에 20대 젊은 소리꾼들인 객원 단원 김주리와 창극단 단원 유태평양이 옹녀와 변강쇠 역에 캐스팅, 새로운 엔진이 됐다. 8월31일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극이 통통 튀었다. 본래 연륜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역인데 두 배우의 능청과 '끼'는 어린 나이가 무색했다.


이번 시즌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캐스팅의 신구 조화다. 초연부터 5년간 호흡을 맞춰온 옹녀 역 이소연과 변강쇠 역 최호성은 여전히 터줏대감이다. 두 사람의 합은 ‘슬프게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변강쇠에 초점이 맞혀져 색(色)만 강조되던 이 고전의 곳곳에는 사실 한(恨)이 가득하다. 배경이 된 병자호란·임진왜란까지 겹치면서 팍팍했던 시대, 색은 백성들의 유일한 유희이자, 건강한 성기는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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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끊임없이 송장을 치우고,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내 팔자니까”라고 되뇌이며 버티는데도 한계가 있다. 이소연과 최호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삶이 평탄했으면 좋겠다”는 인물들의 마음이 느껴져 슬프게 다가온다고 입을 모았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몸이 아닌 마음의 연륜을 근거로 한 ‘어른들을 위한 창극’으로 통하는 이유다.


여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젊은 관객들이 목젖이 보이게 웃어젖힐 정도로 고 연출의 만화적이고 신명나는 상상력도 만개한다. 공연 마지막 스크린에 배우, 연주자, 무대팀은 물론 홍보, 마케팅에 참여한 극장 관계자들의 이름까지 올라갈 때 느껴지는 감동은 또 다른 보너스다.


어떤 작품이든, 반복해서 오래 공연되면 클래식이 된다. 서민들의 간절함, 절박한 세월의 기록,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그린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세월이 흘러도 유효할 가능성이 크다. 매년 올라도 관객들이 찾는 이유다. 공연계 책장의 칸이 더 채워졌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