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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최동훈의 마력

by뉴스웨이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사실 이유는 모르겠다. 자칫 이 영화가 충무로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선뜻 납득이 가질 않았다. 데뷔작 이후 단 한 번도 삼진을 당한 적 없는 타자(감독)가 순식간에 슬럼프에 빠졌단 말인가. 아니면 타자가 일부러 삼진을 당했단 뜻일까. 이 두 가지의 경우가 아니면 결코 이해하기 힘든 루머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까지 한국 영화사에서 정점에 이른 이들 네 작품을 쏟아낸 최동훈 감독의 180억 대작 ‘암살’에 대한 출처 불명의 루머다. 물론 어느 누가 봐도 루머로 밖에는 치부돼야 옳다. 최동훈 감독이다. 이정재 전지현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이경영까지 숫자만 써 넣으면 되는 흥행 백지수표가 무려 7장(명)이나 된다. 대체 이게 실패할 수 있는 카드인가.

13일 오후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암살’은 사실 이런 허무맹랑한 루머가 아니라도 조금은 반신반의했다. 데뷔작 이후 4연타석 홈런을 터트린 최동훈 감독은 국내 영화계에 ‘케이퍼 무비’란 독특한 장르를 끌어들인 인물이다. 물고 물리는 사건의 연속과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충무로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가 자신의 아내와 설립한 영화사 이름도 ‘케이퍼필름’(‘암살’ 제작사)이다. 그런 최 감독이 시대극(물론 ‘전우치’란 사극이 있었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다크한 분위기를 가져올 독립군 얘기라니. 최동훈표 재기발랄함의 마력은 ‘암살’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일까. 장황했던 우려감은 영화를 본 뒤 기대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중심에는 단연코 최동훈의 마력이 존재한다.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암살’은 독립이 되기 몇 해 전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소속 염석진 대장(이정재)은 김구 그리고 김원봉에게 비밀 임무를 부여 받는다. 임무는 바로 조선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의 거두 기업가 강인국(이경영) 암살이다. 이를 위해 선발된 인물은 만주 조선 독립군 소속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이들은 조선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의문의 청부살인업자 하이와 피스톨(하정우)과 그의 조력자 영감(오달수)가 엮이면서 임무에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의 배후에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암살’은 최동훈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걷어내고 클래식으로 돌아가기 위한 시도의 첫 번째다. 하지만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녹아들어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다. 이합집산의 인물들이 모인다. 이들은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있다. 각각의 캐릭터도 확실하다. 진지함, 똑똑함, 리더형, 유머스러움, 우직함 등 다양하다. ‘케이퍼 무비’로 좀 더 범위를 좁히면 ‘도둑들’의 오픈과 유사하다.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하지만 이후 방식에서 감독은 한 가지를 변주 시킨다. ‘암살’은 ‘케이퍼무비’의 오픈을 따르는 듯 하지만 목적이 다르다. ‘도둑들’이 각자의 다른 이익을 위한다면 ‘암살’은 인물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본다. 전자가 여러 변화의 예측 불가능이 쏟아진다면, 후자는 뚝심 있게 방향성을 잡고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암살’은 각각의 인물들이 저 마다의 방식은 다르지만 ‘암살’이란 하나의 목표점을 잡고 달리고 또 달린다. ‘케이퍼무비’가 갖는 돌고 도는 반전과 복선 그리고 예측 불가능의 묘미보단 좀 더 거센 동력이 느껴진다.

물론 최동훈 감독은 추진력 하나로 ‘암살’을 단순화 시키지는 않았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란 장치를 활용해 일본군과 독립군 양쪽에게 의외의 변수를 던진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쫓고 쫓기는 양측의 긴박함과 인물간의 관계성은 분명 최동훈 감독의 전매특허인 ‘케이퍼무비’의 전형성을 따르지만 ‘암살’은 ‘하와이 피스톨’이란 인물로 인해 물고 물리는 ‘케이퍼’의 흐름을 좀 더 정돈시킨 느낌이다. ‘케이퍼’ 특유의 쫀쫀함보단 클래식의 묵직함 속 자신만의 고유 색깔을 덧입힌 듯한 인상이 강하다. 새로운 ‘케이퍼의 탄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이 모든 상황을 러닝타임 안에 담아내기 위해 ‘암살’은 상당히 빠른 전개가 눈에 띈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관람의 적응이 필요할 정도로 몰아친다. 각각의 인물 소개와 이들을 모두 휘어잡는 서사의 오픈, 여기에 사건 개연성을 위한 복선의 요소까지 초반부터 중반까지 달리다보면 생략과 압축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중반 이후 드러나는 예상 밖의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이 주는 또 다른 반전이 ‘암살’의 중반 이후 추진력을 담당한다.

결론적으로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최동훈 감독 특유의 장르적 스타일이 숨어든 블록버스터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면,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오롯이 출연 배우들의 묵직한 존재감이 ‘암살’의 보이지 않는 여백까지 채워버린다.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전지현은 한국영화에선 보기 드물었던 여전사 캐릭터를 창조해내며 ‘전지현이기에 가능했던’ 안옥윤을 만들어 냈다. 하정우는 비밀을 간직한 ‘하와이 피스톨’로서 오랜만에 극 흐름 중심에서 조금은 발을 뺀 채 자신만의 역할을 충실히 이끌어 갔다. ‘허삼관’으로 감독 타이틀까지 얻게 된 그의 혜안은 숨기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빛을 낸다. 오달수와 조진웅 최덕문 이경영의 한 방도 이견이 불필요해 보일 정도다. 조승우와 김해숙의 깜짝 출연은 덤으로 보일 정도다.

사실 ‘암살’에서 가장 도드라진 인물은 ‘염석진’역의 이정재다. 시대의 비극이 만들어 낸 이중성은 이정재의 온 몸을 통해 발산되고 때론 뱀처럼 그의 온 몸으로 스며든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달변의 탈을 쓴 염석진의 궤변은 기묘한 설득력까지 발휘한다. 이정재의 ‘염석진’을 악역도 선역도 아닌 이중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한 것도 이런 점에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이정재의 눈빛 연기를 보고 있자면 그 시절 생존을 갈망한 한 인간의 집념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신념과 집념의 차이가 염석진을 연기한 이정재를 통해 분명히 갈라지게 된다.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암살’은 무려 1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거함이다. 화면 곳곳을 보면 어디에 어떻게 제작비가 투여됐는지 훤히 보일 정도다. 이는 관객에게 블록버스터에 대한 보는 재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뚝심이다. 자칫 만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암살’은 그런 우려를 영리하게 피해갔다.
‘암살’, 139분 동안 휘몰아치는
웃기면서도 재미있고, 또 감동까지 있으면서 분명히 봐야 할 욕구를 전달하는 영화. 바로 ‘암살’이다. 개봉은 22일. 러닝타임 139분.

김재범 기자 cine517@newsw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