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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초특급 팀플레이

‘베테랑’, 스크린 버전 ‘엘클라시코’

by뉴스웨이

‘베테랑’, 스크린 버전 ‘엘클라시코
이건 수컷의 본능이다. 강한 자를 만드는 힘의 논리 앞에서 수컷들은 두 가지 본능이 자극된다. 무릎 꿇거나 뛰어넘거나. 수컷들에게 전자의 상황은 사실 치욕스럽고 굴욕스럽다. 현대사회에선 그것을 속된 말로 ‘가오’(자존심)라고 말한다. 서울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비리 경찰 동료에게 일갈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따끔한 일침을 놔준다. 이 말 한 마디가 왜 그렇게 수컷의 숨은 밑바닥 본능을 자극하는지 모르겠다. 영화 ‘베테랑’은 이 본능을 말한다. 힘의 논리에서 ‘가오’를 버린 채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힘의 부당함에 본능이 이끄는 반골(?)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대항할 것인가. ‘베테랑’은 일직선으로만 달린다. 후진은 없다. 좌회전? 우회전? 그런 것은 생각할 이유도, 생각도 안하는 것 같다.

‘베테랑’ 속에선 두 가지 종류의 힘이 등장한다. 나쁜 놈에게만 강한 힘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의라고 부른다. 또 다른 힘은 반대다. 약한 사람만 골라서 못살게 굴고 군림하려 드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정중한 의미에서 ‘폭력’, 아니 그것을 사용하는 인격을 고려할 때 ‘패악’이라 말한다. ‘베테랑’은 ‘정의’가 ‘패악’을 응징하는 통렬한 쾌감의 고속질주다.
‘베테랑’, 스크린 버전 ‘엘클라시코
서울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쪽팔리게는 못사는 가오 충만’ 인물이다. 평소 수사에 도움을 주던 안면 있는 한 화물트럭 운전사가 화물 연대에 가입했다가 해고를 당한다. 이 남자는 억울함에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하지만 더 억울한 상황만 당하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회사 건물 비상계단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를 위독한 상태다. 서도철은 이 운전사의 아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런데 아들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 시작은 그때부터다.

알고 보니 그 회사는 서도철이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집안 회사. 당시 자리에서 본능적으로 조태오에게서 범죄를 맡은 서도철의 칼날은 즉각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운전사의 투신 사건이 뒤에 벌어졌다. 요구는 간단하다. 투신 운전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하라는 것. 단순하다. 사과 한 마디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태오와 그의 오른팔 최상무(유해진)는 그 한 마디를 거부하고 자꾸만 일을 키운다. 조태오와 최상무는 서도철에게 각을 세운다. 서도철은 쏟아낸다. “사과 한 마디면 될 텐데, 이렇게 자꾸 판을 키우는 이유가 뭐냐.”
‘베테랑’, 스크린 버전 ‘엘클라시코
이유는 단순하다. 서도철이 입에 달고 사는 ‘가오의 문제’다. 조태오는 처음부터 힘을 갖고 태어난 인물이다. 재벌가 서자 출신으로, 적자인 형과 누나에게 태생적 결함을 지닌다. 자신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인 누나와 형에게 느끼는 단 한 가지 결함은 조태오에겐 모든 것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사회란 ‘정글’ 속 약자에게 쏟아냈다. 군림하고 짓밟는 그의 본능은 자신만의 ‘가오’다. 그 ‘가오’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

서도철의 방식은 조태오와 반대다. 그는 광역수사대 소속이다. 관할로 규정된 다른 경찰이 힘의 분출을 제한 받는 것과 달리 그는 거침이 없다. 냄새가 나는 곳은 무조건 달려간다. 그에게서 범죄는 본능 충족의 수단이고 욕구 분출의 해방구다. 서도철은 머무르면 썩는 물처럼 항상 흘러가야 한다. 그 끝에는 필연적으로 범죄가 있고, 나쁜 놈이 있고, 그 보다 더한 악인이 있다. 마지막에는 서도철조차 진저리를 칠정도로 나쁜 놈이 자리한다. 오죽하면 “너희들 정말 나쁜놈들이다”고 분노를 표출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 순간 서도철을 연기한 황정민의 미묘한 표정은 연기가 아닌 진짜 감정이다.
‘베테랑’, 스크린 버전 ‘엘클라시코
이제 두 남자가 격돌한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지만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말은 두 남자의 존재 가치에 차별점을 두는 정확한 대사다. 우선 조태오는 재벌3세이자 ‘서자’란 태생적 한계점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그에게서 세상 모든 것은 하나의 상품이다. 정의도 악행도 생명도 폭력도 그리고 삶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재벌이란 경제 사회의 집단 괴물이 만들어낸 시스템 속 길들여 진 또 다른 괴물이다. 조태오가 나른하면서도 귀찮은 듯 던지는 대사 한 마디는 자신을 아우르는 거대 시스템의 보호막을 단순한 정의가 꿰뚫을 수 있을 것이냐고 비웃는 말이다. “나한테 이러고도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론 서도철이 감당 못할 깜냥이었다면 시작도 안했다. 그는 본청 발령도 마다한다. 팀장(오달수)의 만류에도 “내 방식대로 알아서 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서장의 호통에도 바지를 벗고 상처를 내보이며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되려 적반하장이다. 그에게서 범죄와 악행 그리고 나쁜놈은 있어서도 존재해서도 안되는 나쁜 것이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은 둘이 부딪친다. 그 파열음은 스크린을 찢고 나올 정도다. 누가 이길까. 우린 분명히 알고 있다. 통렬한 쾌감과 시원한 질주의 끝은 우리의 예상 그대로다. 좌회전 우회전 우선멈춤? 그런 것은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다. 끝을 향한 내 달린 도착점에선 두 남자의 날것 그대로의 액션이 ‘베테랑’의 방점을 찍으면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올 여름 가장 완벽한 오락영화의 회귀를 알린다.
‘베테랑’, 스크린 버전 ‘엘클라시코
덧붙여 ‘베테랑’을 서도철과 조태오의 두 사람의 선악구도 ‘버디무비’로만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달수 유해진 장윤주 천호진 김민재 오대환 김시후 정만식 진경 유인영 등 ‘걸출한 한 방’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모두 모였다. 이 영화의 진짜 묘미는 잘 짜인 완벽한 팀플레이다. 스크린버전 엘클라시코다.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시원한 123분의 팀플레이다.

김재범 | cine517@newsw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