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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탐정 손수호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 형제복지원을 아십니까?"

by노컷뉴스

- 7-80년대 참혹했던 부랑인 수용시설

- 구타, 강제용역, 학대…드러난 사망자 551명

- 구청, 경찰 등 적극개입, 진상 은폐

- 솜방망이 처벌에 피해자, 아직도 1인 시위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 변호사 (법무법인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 형제복지

1970~80년대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형제복지원. (사진=자료사진)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요 사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탐정 손수호. 오늘도 손수호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수호> 안녕하세요. 


김현정> 오늘 사건, 사실 오늘 사건도 좀 심각한 것 가지고 오셨다면서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인데요.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김현정> 들어봤죠. 70, 80년대 부랑인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시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노동도 시키고 비인간적인 처우를 해서 우리 사회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곳. 그런데 왜 갑자기 그걸 골라오셨어요? 


손수호> 며칠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요한 결정을 했죠. "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 그리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가 아직까지 미흡하다. 그러니 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달라"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한 건데요. 그 뿐만 아니고, 외교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에게도 "강제 실종 보호 협약" 비준·가입 권고를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형제복지원 사건이 어떤 사건이고 지금 어떤 상황이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나서야 했는지. 오늘 자세히 살펴보려합니다.

김현정> 70년대, 80년대 것을 지금 다시 꺼내야 할 정도로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 되고 피해자 구제도 제대로 안 됐다, 이런 얘기가 되는 거네요, 돌려보면? 


손수호> 그렇습니다. 우선 형제복지원 사건이 도대체 어떤 사건인지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김현정> 기억을 되살려보죠.  


손수호>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 있었던 부랑인 수용소입니다. 걸인, 앵벌이, 껌팔이, 구두닦이 등을 부랑인이면서 보호시설도 아닌 수용시설에 가둔 건데요.  


김현정>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김현정> 구두 닦는 데 그게 왜? 껌을 파는데 왜? 이런 거죠. 


손수호> 형제복지원이 설립된 건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5년이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가 있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그 근거가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 아니라 고작 내무부 훈령이었습니다. 


김현정> 어떤 훈령이었어요?  


손수호>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아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인데요. 여기에 근거해서 부산시와 형제복지원이 계약을 체결합니다.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이었죠. 이 계약에 따라 부산에 있던 경찰, 공무원들이 부랑인을 단속해서 형제복지원에 보낸 거죠.


김현정> 자기들이 판단해서 부랑인이다 싶으면 다 보내 거예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렇게 형제복지원에 감금 수용되기 시작한 거죠. 그 후 86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부랑인 단속에 나서면서, 형제복지원 수용 인원은 계속 증가하는데요. 


김현정> 그러다가 어떻게 탄로가 났어요, 이 만행들이? 


손수호> 1987년 1월입니다. 현직 검사 한 명이 우연히 산 중턱에 있는 작업장에서 구타를 당하고 있는 수용자들을 목격합니다. 그렇게 수사가 시작되는데요. 두 달 후에는 형제복지원 직원이 원생을 구타해 1명이 사망했고, 참다못한 원생 35명이 탈출합니다. 탈출에 성공한 원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형제복지원의 충격적인 실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복지원은 폐쇄될 수밖에 없었죠.


김현정> 그렇죠. 이제 기억나시죠, 여러분. 좀 살아나시죠, 형제복지원에 대한 기억. 그러니까 이런 시설이 운영됐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나마도 아주 비정상적 비인간적으로 운영이 됐던 거예요.  


손수호> 명목은 부랑인 선도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이상하게 운영됐죠, 우선 끌려간 사람들이 누구였는지가 문제되는데요. 기차역 대합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끌려간 사람도 있었고 시장에서 음식 먹다 끌려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현정> 영문도 모르고.  


손수호> 불법 감금이죠. 심지어 저녁에 동네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까지 잡혀갔습니다.  


김현정> 아니, 저녁에 뛰어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왜 잡아가요?  


손수호> 당시 전화기가 없던 집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집 밖에서 놀면서도 자기 집 전화번호를 몰라요. 


김현정> "얘, 너 지금 이 시간까지 놀고 있는데 집 전화가 뭐야" 이러는데 "몰라요" 이러면.  


손수호> 그리고 집 주소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현정> 그럴 수 있죠, 아이니까.  


손수호> 그런 경우에 집 없는 아이라고 하면서 잡아가기도 했다는 거죠. 


김현정> 너 집이 없구나 이러면서 수용소로 보내요? 


손수호> 그럼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하게 멀쩡한 사람까지 끌고 갔을까. 이유는 바로 돈이었습니다.  


김현정> 돈이요?  


손수호> 일단 부랑인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만 시키면 국가에서 인원수대로 지원금이 지급되었는데요. 당시 형제복지원에 부랑인이 아닌 일반인이 무려 98%였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김현정> 세상에. 98%가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는 증언. 


손수호> 형제복지원 수용인원이 계속 늘어나서 해마다 20억 원 가량의 국고 지원을 받았죠. 


김현정> 그 당시 돈으로.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가두기만 한 게 아니라 강제용역을 시켰는데요. 특히 당시 원장이었던 박인근은 자기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든다면서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의 중노동을 시켰는데요. 못 견디고 탈출 시도하면 굶기고 때리고 심지어 살해한 후 암매장까지 했습니다. 


김현정> 맞아요, 기억납니다.  


손수호> 형제복지원이 운영된 12년 동안 사망한 사람이 무려 551명입니다. 


김현정> 여러분, 사망자만. 확인된 사망자만 무려 551명. 


손수호> 더 충격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죠.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았습니다. 300에서 500만 원 받고 팔았다고 합니다. 


김현정> 세상에. 구타당하다 숨진 사람은 아예 팔아버려요, 시신을? 


손수호> 그렇죠.  


김현정> 정말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네요. 그런데 형제복지원은 문제가 알려지고 87년에 문을 닫았잖아요. 30년 지났는데 인권위가 다시 법률 제정을 권고했던 건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손수호> 첫 번째 이유. 지금까지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닙니다. 


김현정>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도 끔찍한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당시 형제복지원에 최대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수용되었는데요. 헌병 부사관 출신인 원장은 조직을 군대처럼 만듭니다. 중대, 소대 나누고요. 또 중대장, 소대장, 총무, 조장, 소대원. 이렇게 상명하복 방식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아동소대, 청소년소대는 여러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군기를 잡는다면서 매일 구타했구요.  


김현정> 아이들 때리고?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팬티와 러닝셔츠 그리고 운동복 한 벌, 고무신이 지급되었을 뿐이었고, 겨울에도 다른 옷이 없었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겨울에는 원생들이 손발 동상으로 많이 고생했죠. 


김현정> 당연히 그랬겠네요.  


손수호> 식사도 문제였습니다. 꽁보리밥에 썩은 냄새 나는 반찬이 나왔고, 소금 뿌린 깍두기뿐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한 피해자는 동료 수용자가 취침용 매트리스 밑에서 새끼 쥐를 발견하고는 이걸 보약이라면서 산 채로 먹기도 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김현정> 쥐새끼를?  


손수호> 네.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또 실제로 탈출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으나 며칠이 지나도 어떻게든 다시 잡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장병을 앓는 수용자에게도 약은 감기약만 줬다.


김현정> 어디가 아프든 주는 약은 그냥 감기약이에요. 


손수호>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열악했던 거죠.


김현정> 정말 열악...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네요, 형제복지원.  


손수호> 굶기고 구타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특히 여성수용자들에 대한 성적 학대도 빈번했죠. 


김현정> 성적 학대?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까 사망자 숫자가 12년 동안 551명이라고 했죠.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더 늘어날 거라는 거죠. 


김현정> 그래요.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 형제복지

1970~80년대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형제복지원. (사진=자료사진)

손수호> 또 하나, 강제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부산 지역 구청 공무원이나 경찰이 서류까지 조작하면서 적극 개입했다는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당시 부랑인을 형제복지원에 보내면 인사고과 점수가 쌓였어요.

 

김현정> 고과점수가.

 

손수호> 그래서 승진에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김현정> 그러니까 1명 잡아갈 때마다 나라에서 지원금도 주고 잡아가는 사람한테는 고과도 주고 이러니까 점점 인원은 늘어나는 거네요.

 

손수호> 네. 지금도 부산진경찰서 앞에는 "왜 나를 세 번이나 잡아갔느냐. 사과 받고 싶다"라며 1인 시위를 하는 피해자가 있습니다.

 

김현정> 그러니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규명해야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있었군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두 번째 이유,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김현정> 그나마 밝혀진 것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안 이루어졌어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원장 박인근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고요. 전국 부랑인 복지시설 연합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도 지냈습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밝혀질 무렵인 87년 원장실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는데요. 원장실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20억 원이 넘는 예금증서, 달러, 엔화 등이 발견됐죠.

 

김현정> 그 당시 돈으로 여러분. 그 당시 돈으로 20억 원이 사무실에서 나왔어요.

 

손수호> 지금 가치로는 200억 원 이상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 원장은 2년 치 국고보조금 39억 원 중에 11억 원을 횡령한 혐의 그리고 수용자들을 감금한 혐의만으로 구속 기소됩니다. 그리고 수사과정에서 구명 시도가 이어지고 청탁 전화도 들어왔는데요. 당시 검사는 징역 20년형을 구형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당시 부산지검에 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현정> 그 당시 그러니까 검사장이었어요, 그 시절에.

 

손수호> 박희태 당시 검사장 등을 비롯해서 윗선의 압박이 들어온 건데요. “징역 10년에서 15년 정도 구형해라. 또 횡령액도 11억 원이 아니라 6억 원으로 줄여라”라는 내용이었답니다. 당시 검사들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김현정> 검사들 증언이 나오는 거예요?

 

손수호> 네. 하지만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물어봤더니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는데요. 압박 때문이었는지 결국 검사는 징역 15년 그리고 벌금 6억 원 형을 구형하는데, 1심에서 징역 10년 벌금 6억 원 선고됩니다. 나름 중형이죠. 그런데 그 후 국민의 관심이 잦아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형량이 점점 줄었습니다. 대법원이 감금죄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해서 재판이 7번이나 열렸는데, 결국 벌금형은 사라졌고 징역도 2년 6월로 처음에 비해서 4분의 3이나 줄어들었습니다.

 

김현정> 잠깐만요. 그러니까 이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마지막 대법원 최종판결은 벌금은 하나도 없고 형량 2년 6월, 그렇게 땡?

 

손수호> 그렇습니다. 감금은 무죄가 된 거죠. 그런데 감금이 불법이 아니었으면 도대체 왜 시설을 폐쇄하고 수용자 풀어줬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고요. 이런 끔찍한 인권유린 행위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된 책임 추궁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김현정> 외압도 있었다는 증언도 막 쏟아지고 이러는데 하나도 그건 수사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솜방망이 처벌하고 끝난 거네요?

 

손수호> 그렇습니다. 게다가 박인근 원장은 2년 6월 만에 출소한 후 재기에 성공합니다.

 

김현정> 재기를 해요.

 

손수호> 형제복지원 부지를 매각하고요. 기존 법인을 재인수하고 이름은 여러 번 바꿔서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을 운영하는데.

 

김현정> 재단을 또 세웠어요, 나와서?

 

손수호> 보유 자산 규모가 1,000억 원대라고 하고요. 그리고 지금 현재 셋째 아들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첫째 딸에게도 학교법인을 넘겼고요. 그리고 박 원장은 사회복지법인 대표자 협의체 회장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회장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박 원장을 추종했던 사회복지시설 대표들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되고요. 또 부산시도 박 원장을 비호했다는 의심을 샀습니다. 박 원장의 재단이 비영리법인이잖아요.

 

김현정> 그렇죠.

 

손수호> 그런데 수익사업을 했고 또 저축은행에서 100억 원대 장기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영리 복지법인이 수백억 대출 받는 건 지자체 영향력 없이는 쉽지 않다.

 

김현정> 상식적인 얘기죠, 그게.

 

손수호> 네. 의혹 제기가 있었고, 감사도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공무원 10여 명이 처벌받긴 했죠. 그러나 처벌 수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김현정> 지금 이 짧은 시간 안에 다 소개하기 부족할 정도로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요, 손 탐정.

 

손수호> 그렇습니다. 게다가 피해자 구제도 전혀 없었죠.

 

김현정> 미흡했던 게 아니라 아예 전혀 없었어요, 피해자 구제가?

 

손수호> 놀랍죠? 형제복지원 폐쇄될 때 이곳에 수용됐던 사람들이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그냥 쫓겨났다고 합니다.

 

김현정> 거기서 노동 엄청나게 시켰다면서요. 그런데 아무것도 못 받았어요?

 

손수호> 심지어 사과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수용되어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학대와 중노동에 시달리느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망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30년이 지나도록 계속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김현정> 사실 거기서 그렇게 망가져 나와서 제대로 된 일자리 갖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될 텐데.

 

손수호> 그렇습니다. 당시에 전두환 정권 말기였잖아요. 특히 87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정권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부각되면 정권 비판 여론이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해서 피해자들을 실제 부랑인으로 낙인 찍고 무시해버리는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정> 지금 청취자 중에 나이가 어린 청취자들, 젊은 청취자들은 이거 처음 듣는 얘기인데 너무 놀랍다, 충격적이다. 이런 문자가 많이 들어와요. 형제복지원사건 인권위가 진상규명, 다시 조사해야 된다라는 것을 촉구했습니다. 손 탐정의 마지막 한마디 마무리하죠.

 

손수호> 슬프게도, 형제복지원만 이런 게 아닙니다.

 

김현정> 이게 전부가 아니다?

 

손수호> 네. 형제복지원 사건 정말 큰 사건이고 충격적인 사건인데요. 대구 희망원, 대전 성지원, 장항 수심원을 비롯해서 유사한 사건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고요.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도 제대로 규명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유사 사건들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리고 지난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통과는 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습니다.

 

김현정> 법안이 발의되긴 했었어요?

 

손수호> 이번 국회에서도 진선미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다시 발의했어요. 하지만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이번에도 통과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듭니다. 이번 인권위 결정과 의결을 계기로, 이번에는 반드시 법안 통과시켜서 진상 제대로 다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30년 묵은 한도 풀릴 수 있길 기대합니다.

 

김현정> 참 끔찍한 사건이고 충격적이네요. 형제복지원 사건을 오늘 다시 더듬어봤습니다. 탐정 손수호. 손수호 변호사 수고하셨습니다.

 

손수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