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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독전' 보령 역 진서연 ②

"이미 늦었다"는 우려 깨고 대중 앞에 선 배우 진서연

by노컷뉴스

"이미 늦었다"는 우려 깨고 대중 앞

영화 '독전'에서 보령 역을 맡은 배우 진서연이 4일 오후 서울 한남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성별, 나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마약밀매 조직의 우두머리 이선생을 쫓는 범죄 느와르 '독전'이 낳은 최고의 기대주는 아마도 보령 역을 맡은 배우 진서연일 것이다. 카리스마 있는 마약상 진하림(김주혁 분)의 연인이지만, 단순히 악당 곁을 지키는 존재는 아니었다. 놀라운 화면장악력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아직 널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기에, '이런 배우가 어디 있다 지금 나왔나'라는 반응이 쏟아지지만 진서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난 2007년 OCN '메디컬 기방 영화관'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영화, 연극 무대를 오가며 연기자의 길을 걸어왔다.

 

'독전'은 우연한 기회로 만난 작품이었다. 제작사 쪽에서 이제 더 이상 배우가 없다고 푸념할 정도로 오랫동안 배우를 찾다, 포기하려던 차에 나타난 사람이 진서연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캐릭터를 받으면 '정말 그 사람'이 되기 위해 매우 꼼꼼히 분석하는 진서연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이해영 감독 덕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진서연을 만났다. '독전' 개봉 후, 인스타그램에 어떤 게시물을 올렸는지, 과거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등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될 만큼 높은 관심을 받는 그였지만 정작 본인은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진서연과 나눈 이야기를 옮긴다.

일문일답 이어서.

보령 캐릭터를 만들면서 준비했던 것들을 감독이 잘 받아줘서 좋았다고 했는데, 이해영 감독과 작업하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다면.

 

제가 원래 성격이 업(up)돼 있는 편은 아니다. 차분하고 다운돼 있고, 말도 별로 없다. 그런데 (보령의) 감정으로 끌어올려서 계속 유지하다가 슛 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그때 감독님이 방해 안 되게 하시려고, 제가 텐션 올라갔을 때 감정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조심 와서 디렉션을 주셨다. 보통은 (연기가) 어땠다거나 이렇게 좋지 않을까, 다시 한번 해 볼까 이러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저한테 질문했다. (스스로 연기해 보니) '어땠어?'라고.

 

누구도 저한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해영 감독님은 저한테도 그렇고 주혁 선배님한테도 어땠냐고 물었다. 연기하는 사람은 본인이 (연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잘못됐다면 그걸 제일 잘 안다. 이번엔 이렇게 다르게 해서 가고 싶다고 하면 그래 하면서 감정 안 깨지게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정말 크리스털 유리 다루듯 조심조심 다뤄주셨다.

 

'독전'은 손익분기점(280만 명)을 넘고 벌써 관객 350만 명(4일 기준)을 돌파했다. 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보는지.

 

범죄 느와르 장르를 좋아하긴 하는데, 제 편견인지는 몰라도 제가 생각하는 '한국 범죄 느와르'라는 게 딱 있다. 근데 ('독전'은) 그걸 완전히 뒤집어놨다. 이해영 감독님이 만드는 범죄 느와르라고 했을 때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물음표가 되게 많았을 거다. 이 감독이 느와르를 만들면 도대체 어떤 생각이 나올까? 비주얼만 화려하게 그린 한국 영화를 만들까?

 

제 딴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는 제 편집본도 못 보고 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약간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서정적인 장면도 나오고, 감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겼고, 비주얼적으로도 화려하게 만들었더라. 이렇게 퍼포밍이 강하면서도 모든 게 집합체가 되는 영화를 우리나라 범죄 느와르로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제가 아는 한 처음 보는 범죄 느와르였다.

 

결말 열어놓은 것도 좋았다. 그래서 누가 죽었다는 거야 하면서 적응 안 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빵빵 터지는 음악이 나오겠다 싶은 장면에 블루스가 나오기도 하고, 의외이면서 유니크하면서 이해영 감독님답다 싶었다. 저는 '천하장사 마돈나' 팬이었는데 ('독전'은) 제가 아는 이해영 감독님을 뛰어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정서 가진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자기만의 느와르를 개척한 것 같아서 대단하다 싶었다.

"이미 늦었다"는 우려 깨고 대중 앞

진서연이 맡은 보령은 누구와 맞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당당함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뜨거운 면이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사진=NEW 제공)

무용을 하다가 연기를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연기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무용 전공은 아니다. 정확하게 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무용에 관심이 많아서 고3 때 무용과를 가고 싶어서 준비하다가 입시 한 달 반 남겨놓고 선생님이 잠수를 타신 거다. 어이가 없지만 이별해서 슬프고 맨날 술 두세 병 마신다고 하는데 어떡하나. (웃음) 여기서 좌절할 순 없지 않나. 어떡하지 하다가 방향을 바꿨다. 무용과는 특기를 5분 동안 하는데 연극영화과는 2분이었다. 준비한 춤 엑기스를 2분 빼서 쓰고, 서점 가서 '백세개의 모노로그'(배우 지망생과 현역 배우들이 애용하는 연극 실기 지침서)를 사서 독백 두세 개를 외웠다. 한 달여를 준비해서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고 세 군데 정도 붙었는데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를 가게 됐다. 그때 동기가 김아중 씨, 김정화 씨. 한 학번 선배가 박진희, 조윤희, 박경림 씨였다.

 

어떻게 보면 '우연히'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데, 직업 배우가 되자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냥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연극영화과에서 매일 듣는 수업이 즉흥 연기, 카메라 연기였다. 광고모델을 하면서도 잠깐이지만 연기를 해야 하더라. 영상이니까. 학교에서도 즉흥 연기 하는 게 되게 재밌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굉장히 에너지를 받는다는 걸 알았다. 전 스태프가 100명 있을 때랑 10명 있을 때랑 다르다. 데뷔를 연극으로 했는데, 제가 두 발자국만 움직여도 400개의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더라. 그 에너지 받는 게 너무 좋았다. 그때 '나는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무대에 섰던 분들은 공연에서만 느끼는 그 생동감을 잊을 수 없다고 자주 언급하더라. 그럼 앞으로도 무대에 오를 생각이 있나.

 

저는 연예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연기가 재미있어서 연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매체는 사실 상관없다. 연기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연극은) 카메라로 컷, 컷 하면서 끊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극에 몰입한다. 감정 곡선을 정확하게 유지해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나오는 셈이다. 이게 굉장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연극만큼 짜릿한 건 없지만,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웃음) 매체 상관없이 연기하려 한다. 캐릭터 좋고 재미있는 게 있다면. 보령도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라서 작은 역이지만 하게 된 거였다. 그렇게 큰 역할이 아니어도 된다. 이거 하면 진짜 재밌겠는데? 싶은 걸 한다.

 

작품을 볼 때 자신이 맡을 캐릭터를 먼저 보나. 아니면 작품이 재미있는지를 보나.

 

저는 캐릭터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전체적인 걸 본다. 전체적으로 너무 훌륭하고 재밌고 잘 썼어도, 제가 하려는 캐릭터가 심심하고 평면적이면… 입체적인 캐릭터는 하기 전부터 신이 나는데 말이다. 캐릭터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전체 대본을 보고, 누가 이 작품을 만드시는지를 보고 매칭하는 것 같다.

"이미 늦었다"는 우려 깨고 대중 앞

'독전' 단체사진 (사진=NEW 제공)

'반창꼬'(2012) 이후 '독전'으로 오랜만에 영화 현장으로 돌아왔다.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예전과 달라졌을 것 같은데 체감한 변화가 있다면.

 

제가 다시 왔을 때는 시간을 철저히 엄수하더라. 스태프들의 복지가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랑 같이 작업하는 동료 스태프들이 편안하게 쉬고 나와서 충전된 모습으로 저희를 세팅해주니까 그게 저희에게도 에너지를 주더라. 전에는 새벽까지 늦게 촬영했어도 잠도 못 자고 피로에 찌든 채로 나왔다. 그러니 NG 한 번 내면 너무 미안했다. 스태프들을 빨리 쉬게 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늦어졌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요즘은 잠을 충분히 자고 나와서인지 얼굴이 뽀얀 것 같더라. (웃음) 점점 더 근로환경이 좋아지면서 연기도 편안하게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제작자 입장에선 힘들 수 있겠지만, 저희 촬영 현장 분위기는 완벽하게 에너지 충전된 상태니까 계속 업그레이드돼서 가는 것 같다. 졸리면 카메라 앵글도 포커스 나가고, NG도 많이 난다. 그럼 서로 예민해지고 감정이 안 좋아지니까.

 

보령은 극중에서 '자기야, 난 돈이라도 써야지' 하는 대사를 한다. 늘 마약에 취한 사람의 유일한 낙이 돈 쓰기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진서연의 삶에서 즐거움이 있다면. 연기와 요가 빼고.

(* 진서연은 그간 인터뷰에서 지도자 과정을 들을 만큼 요가를 좋아하고 즐긴다고 밝힌 바 있다)

 

요가! 요가 빼면 여행. 아프리카나 오지를 좋아한다. 도시는 많이 가서 가볼 만한 덴 다 가본 것 같다. (최근) 4~5년 동안은 오지 이런 델 많이 갔다. 거기서 얻는 영감이 엄청난 것 같다. (기자 : 낯선 장소라 그런 건가) 항상 듣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없고 소음도 없고 생소한 동물 소리가 난다. 자고 일어나면 햇빛을 보고, 해가 지는 것과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지 않나. 인위적인 것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환경에 있다는 게 굉장히 유니크하더라.

 

'독전'은 실체 없는 존재를 끝까지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믿음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진서연에게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은 무엇인가.

 

제가 어렸을 때 연기자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고민한 건 딱 하나였다. 배우들은 되게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불의나 불편함을 겪었을 때 내색하거나 (속을) 다 드러내거나 언성 높이거나 화내거나 그러지 말고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정의로운 사람이고 내 의견과 목소리를 내는 사람인데 그럼 안 되는 건가? 저는 연기가 좋아서 하는 거지,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유명해지면 원래 살던 삶을 맘껏 자유롭게 못 살 텐데 하는 고민을 진짜 많이 했다.

 

이제 중심을 잡은 건, 내가 좋아하는 걸 느리게 거북이처럼 가더라도 정정당당하고 근면 성실하게 하겠다는 거다. 내 능력으로, 누구 덕 보면서 가지 말자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동안 동료, 선후배들이 치고 올라가는 걸 많이 봤을 것 아닌가. 그때마다 '야, 너는 뭐해? 속상하지 않아?' 하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는데 이젠 중심을 잡았다. 그들은 그들의 방법이 있겠지, 나는 내가 정한 방법이 있다는 마음으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자는 예쁠 때가 있어. 그럴 때 꽃피워야 하는데 너는 너무 늦었어. 그런 식으로 하면 못 해' 이런 얘기도 들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들은 80, 90 되어도 하지 않아?' 하면서 늙으면 늙을수록 아름답단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제가 나이 먹어가는 게 좋았고 지금도 좋다. 30대 때 할 수 있는 연기와 40대, 50대, 60대 때 연기가 다르지 않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우리 아들은 안 그러거든요' 하면서 춤추시는 장면 보면서 나도 저 나이에 선생님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이미 늦었다"는 우려 깨고 대중 앞

배우 진서연 (사진=황진환 기자)

이번 영화로 여성 팬이 많아졌다고 들었다.

 

예전에도 여자 팬들이 남자 팬들보다 많았다. 내가 머리까지 커트고 보이시하니까 남자들은 날 안 좋아하는 건가? 더 이상 우리나라에 있는 로맨스 드라마나 예쁜 영화에 출연할 수 없는 건가? 하는 고민도 했다. 근데 이번엔 아예 너무 센 역할이지 않나. 이게 마지막 작품이든, 이걸 계기로 쭉 가든 내려놓겠단 마음으로 찍었는데 이렇게 됐다. 지금은 여성 팬들이 95% 정도인 것 같다.

 

어떤 분들이 날 좋아하나, 하고 찬찬히 봤는데 저랑 다른 분위기의 팬분들도 저를 좋아해 주시더라. 자기랑 비슷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기랑 달라도 좋아해 주시는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색대로 하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보령은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센 캐릭터'였다. '독전'의 성공으로, 여성 캐릭터에 대한 다른 시도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저는 되게 뿌듯할 것 같다. 기존에 보지 못한 여성 캐릭터가 하나둘 생겨나면 날수록 한국 영화가 굉장히 풍성해지고 입체감이 생길 테니까. 사실 저는 영화를 보러 갈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이 캐릭터는 이렇게 할 거야, 하는 생각이 있어서. 왜 보령을 좋아하실까 생각해 봤는데, 관객도 상상하지 못한 캐릭터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그런 것 같다. 황당하고 어이없어하다가도 보면서 신선함을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보령 역할을 했으니 센 것만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저는 로맨틱코미디에 더 강한 사람이다. 아직 못 보여드린, 저의 더 잘할 수 있는 모습들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또, 여자 킬러나 첩보원 같은 강력하고 각진 캐릭터를 더 해도 좋을 것 같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