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은 어떻게 화성을 잊지 않도록 했을까

[컬처]by 노컷뉴스

봉준호 감독 작품 분석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①

부산국제영화제 '살인의 추억' 스페셜 토크 지상중계

30여 년 만에 특정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까지,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을 잊지 않고자 끈임없이 끄집어내고 또 끄집어내 왔다. 봉준호 감독 작품 '살인의 추억'(2003)은 우리 시대 친숙한 영화 매체를 빌려와 그러한 기억의 끈을 잇는 데 일조한 문화 콘텐츠로 꼽힌다. '살인의 추억'은 우리네로 하여금 어떻게 시대 모순을 외면하는 대신 직시하도록 도왔을까. 영화 '아사코'(2019), '해피아워'(Happy Hour·2015) 등으로 독창적인 영화 문법을 선보이며 아시아 영화계 이목을 끄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6일 부산 해운대구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스페셜 토크 '살인의 추억' 행사에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살인의 추억'은 어떻게 화성을 잊지 않도록 했을까 (현재글)

봉테일 '단순화' 노림수…경계 넘어서는 '침입'

'살인의 추억' 엔딩…송강호가 카메라를 직시한 까닭 

노컷뉴스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하마구치 감독은 봉준호 감독 최신작 '기생충'(2019)을 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운을 뗐다.


"'기생충'은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영화 만들기를 반성하는 계기였다. 개인적으로 '기생충'은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의 걸작임에 분명하다. 이는 '기생충'을 보고 걸작이라고 느꼈던 것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그는 "두 영화의 공통점은 결말의 애매함"이라며 "그 애매함은 서사를 구축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생기는 탁한 애매함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 애매함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명료하게 구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순적인 애매함이라고 본다. 오늘 '살인의 추억'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할 테지만, 관객들은 '기생충'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기생충' '살인의 추억'을 포함한 봉준호 감독 작품 전체가 지닌 특징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높낮이 차' '침입' '반전'이 그것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먼저 '살인의 추억'에 나타나는 높낮이 차를 설명하기 위해 극중 △김뢰하(주용구 형사 역)가 지하 취조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용의자를 발로 차고 폭행하는 장면 △송강호(박두만 형사 역)가 김상경(서태윤 형사 역)을 오해해 둑 위에서 날아 차기하는 신 △취조실에서 박해일(용의자 박현규 역)을 마주한 형사들이 분노할 때 송재호(신반장 역)가 계단을 내려오며 부하를 때리는 장면을 보여줬다.

"봉준호 작품 속 높낮이 차는 곧 위계…폭력을 낳기 쉬운 공간"

노컷뉴스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표현된, 높낮이 차로 인한 낙하운동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준비한 영상"이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본 장면에는 공통적으로 발차기가 나온다. 특히 이 가운데 두 장면은 프로레슬링 이단옆차기 같은 기술이다. 높낮이를 표현한 공간에서 왜 이런 발차기가 나오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높은 곳, 그러니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중력 에너지에 의해 발로 차는 모습은 바로 폭력으로 연결된다. 높낮이를 지닌 공간 자체가 폭력을 낳기 쉬운 장소인 셈이다."


그는 "대표적인 곳이 봉 감독의 지하공간인데, 이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 나오는 아파트 지하, '괴물'(2006)에서 괴물이 사는 하수도 공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지하공간은 취조실이다. 특히 세 번째 취조실 장면에서 김뢰하가 박해일에게 발차기한 다음 전등이 꺼지는 신을 기억했으면 한다. 전등이 꺼져 빛이 사라진 취조실은 완전한 어둠에 잠긴다."


하마구치 감독은 "이 어둠 자체는 또다른 지하공간과도 연결된다"며 영화 '살인의 추억' 초반에 송강호가 농촌 배수로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희생자를 발견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 논길 배수로를 지하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그렇다. 이 장면을 떠올려 보면 송강호가 배수로 속 희생자에게 거울로 빛을 비추잖나. 형사라는 존재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는 "이 취조실과 배수로 사이 시각적인 유사점은 곧 형사와 범인 사이 유사성과도 비슷하다"며 "어느 쪽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둘 다 어둠에 의해 폭력에 휘말리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해석했다.


부산=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2019.10.0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