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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안 준

by노트폴리오 매거진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53" x 40", 2011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많은 것들을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던 날들. 그래서 인생을 사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래? 어떻게 너는 그렇게밖에 살지 못해?’라며, 주변 사람들을 독촉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누구 하나 많이 다르지 않던 날들인데. 어쨌나 난 내가 만든 틀에 스스로를 맞추며 살아왔다. 그게 맞는 거고, 그렇게 사는 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나는 내가 만든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리해서 이해해 온 것 같다. ‘이 사람은 이럴 것이고,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타인에게 갑자기 화가 나거나 이해되지 않아도, 쉽게 ‘넌 틀렸어.’ 혹은 ‘넌 참 다르구나.’라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대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생각의 곡선이 생긴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없으므로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나는 함부로 무언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고, 그렇게 판단해봐야 내게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그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며 시도를 한다는 그 자체에 박수 쳐주어야 한다. 그 선택이 다만, 사람들의 눈에 아주 조금 다른 행보를 걷는다 할지라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타인의 인생을 바라봐야 한다. 당위적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많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40" x 30", 2008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53" x 40", 2010

새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란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시작하는 일에 얼마나 나의 시간을 바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새로 시작한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돌아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년 동안 일했던 분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됐고, 무엇이 맞는지 옳고 그름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악몽과 좋은 꿈이 지속되는 날이었다. 머리가 무거웠고, 잠을 자도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겠다는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설렘보단 ‘걱정’이었다.

 

내 안의 두려움은 ‘내가 다시는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었다. 돈을 적게 벌어도 내가 갖춘 능력을 사회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이고, 그것이 나의 목숨을 위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통해 1차원 적으로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살아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일을 새로 시작하고 버는 돈은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해 턱없이 적다. 하지만 나는 내 다리로 걷고 내 입으로 말하고 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전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새로 시작한 일에는 나를 부정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40" x 30", 2011

사진작가 안준의 작품들은 지금의 나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높은 빌딩의, 가장자리에 앉아 저 멀리를 바라보는 어떤 여자. 탁- 뛰어내리면 바로 찬 공기가 있는 건물의 바깥쪽이지만, 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뒤로 가자니, 정말 끝에 와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가 없는 부분. 그곳에서 작가는 셔터를 눌렀다.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53" x 40", 2008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60" x 40", 2012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40" x 30", 2011

어떤 지점의 끝,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뛰어 내리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작가가 서있는 지점은 곧 나의 지점이었다. 작가는 카메라 셔터를 수백 장 누른 후 사진을 선택을 하게 되는데, 자신도 주변사람도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한 두 컷’이 작품으로 선정된다고 한다. 작가 역시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그 ‘어떤 한 두 컷’에는 두려움을 뛰어 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포착되어 있다. 그리고 완벽을 향한 작가의 마음이 담긴 사진이 작품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지 못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 때의 무섭고 피하고 싶은 감정들을 한 발짝 뛰어 넘어섰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즐김의 중간 사이에 있는, 공기가 없는 것 같은 무중력의 상태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40" x 30", 2011

뛰어 내리기 바로 직전의, 사진작가

'Self-portrait',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40" x 60", 2011

아직 내 인생은 ‘그럴 수도 있지’ 상태다. 아마 쭉 이렇게 가지 않을까? 나는 아주 조금씩만 여유로움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매년 1cm씩 자라는 여유로움으로, 내 주변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기를, 그리고 나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기를, 나를 사랑하기를,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를. 아주 조금씩만, 나중에 막다른 길에서 ‘또 다른, 수많은 나’를 만나도 너무 당황하지 않도록, 힘들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출처 www.ahnjun.com)

 

글. 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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