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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엄마의 웨딩드레스

by노트폴리오 매거진

황금 같은 연휴가 시작되고, 가정의 달 5월 맞아 본가로 향했다. 집을 떠나 혼자 지낸 건 몇 달 채 안되지만, 체감상으로는 1년은 더 지난 것 같다. 막상 혼자 살아보니, 엄마의 쏟아지는 잔소리와 함께 뜨는 된장찌개가 그리웠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 시큰둥하게 “왔니?” 라고 묻는 엄마가 보였다. 병원 간호사로 일한 지 어언 20년이 훌쩍 넘어가는 우리 엄마는 작은 상처는 물론이고 웬만한 사고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의 잔병이 큰 병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엄마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난 뒤 바로 아빠와 결혼했다. 내가 세상에 탄생하기 직전이었던 90년대, 엄마는 미스코리아 화장을 하고 결혼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촌스러움의 극치라며 보기조차 싫어하는 그 사진 속 드레스는 아마 당시엔 최첨단 유행이었을 테다. 티아라 대신 레이스 소재의 끈이 엄마의 이마를 감싼 채 면사포와 이어져 있다. 어깨 장식은 누구든 칠 수 있을 만큼 풍성한 형태로 돼있고 극도로 하얗고 풍성한 드레스에는 온갖 비즈 장식과 레이스가 달려 있다. 게다가 아빠의 잠자리 안경은 촌스러움에 한 몫을 더했다.

엄마의 웨딩드레스

출처: http://www.weddinginspirasi.com

엄마의 웨딩드레스는 촌스러웠으나 가정을 꾸리고 한 아이를 낳는다는 설렘만큼은 감히 평가하지 못할 만큼 우아한 일이다. 웨딩드레스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진대, 여자만이 누릴 수 있는 두근거림과 미래에 대한 각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90년대의 웨딩드레스가 풍성한 레이스와 주름, 그리고 과장된 실루엣을 통해 결혼의 낭만과 로맨스만을 예찬했다면 현대의 웨딩드레스는 보다 더 현실적인 낭만을 꿈꾸고 있다. 패션위크의 열기를 이어받아 최근에 열린 웨딩드레스 컬렉션들은 그 현상을 더욱 자세히 반영한다.

엄마의 웨딩드레스

제니 팩헴 2017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 / 출처: https://www.pinterest.com

엄마의 웨딩드레스

로자 클라라 2017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 / 출처: http://www.brides.com1

30년대의 베츌러 스타일의 납작한 실루엣을 자랑하는 웨딩드레스를 본 적이 있는가? 올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들은 30년대의 직선적인 실루엣과 로맨틱한 감성을 적절히 섞은 드레스를 선보였다. 특히나 쥬얼리 장식으로 마치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가 탐낼 만한 고전적인 스타일도 돋보인다. 베츌러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성을 크게 강조하지 않으면서 우아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인데, 투피스 형태로 분리돼 중성적인 느낌을 주며 우아함을 강조할 수 있는 실루엣도 신선하다.

엄마의 웨딩드레스

카를라 루이스 2017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 / 출처: http://theimpression.com

엄마의 웨딩드레스

캐롤리나 헤레라 2017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 / 출처: http://www.brides.com

엄마의 웨딩드레스

마르케사 2017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 / 출처: http://greenweddingshoes.com

엄마의 웨딩드레스

주하르 무라드 2016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 / 출처: http://www.2016weddingdress.com

무엇보다 현재 웨딩드레스는 여러 방면에서 진화하고 있다. 우선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 카를라 루이스의 2017년 봄/여름 웨딩 컬렉션만 봐도, 더 이상 순백의 신부만을 고집하는 시대가 아님을 증명한다. 금색과 왕관, 그리고 화려한 꽃 장식과 프린트들로 마치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Snow White And The Huntsman)>의 이블퀸이 즐겨 입을 만한 드레스를 완성했다. 중간에는 드라마틱한 실루엣과 과감한 상의 노출을 자랑하는 드레스도 보였으니 이 드레스를 입고 결혼할 자가 누군지 궁금할 지경이다. (헐리우드의 스타들이 멧 갈라에서나 입을 법한 드레스라 현실에서는 보기 힘들 듯 하지만)


반면 결혼식에 드레스만 입으란 법이 있냐는 반문과 함께 등장한 바지 또한 새로운 웨딩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잔잔한 레이스가 수 놓여진, 뷔스티에 형식의 점프수트에 면사포 소재의 드레스 디테일이 더해져 더욱 극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 뿐 만 아니라 캐롤리나 헤레라 에서는 순백의 셔츠와 바지가 로맨틱한 장식의 면사포와 만났으며, 이보다 더 현대적이고 우아한 신부가 없어 보인다. 여전히 벨 드레스 같이 넓게 퍼지는 웨딩 드레스의 정석 디자인이 많은 컬렉션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바지와 웨딩의 만남이 반가운 이유는, 기존의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현대적인 웨딩을 위한 하나의 로맨틱한 도구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웨딩 컬렉션은 더 이상 꽁꽁 싸맨 ‘정숙한 신부’가 아닌, 레이스 시스루로 노출을 통해 과감한 매력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엄마의 웨딩드레스

조지 클루니의 아내 아멜 클루니와 그녀의 웨딩 드레스를 디자인한 오스카 드 라 렌타 / 출처: http://www.sandrascloset.com

이쯤 되니 엄마의 웨딩드레스는 더욱 멋없어 보인다. 꽁꽁 싸매도 모자라서 장갑으로 팔까지 가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드레스에 파묻힌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자식이 돼가지고 엄마 아빠 결혼식도 안 갔어?’ 라는 말이 유행이다. 단순 유행이라지만 내가 만약 엄마 아빠의 결혼식에 갔더라면, 난 그날의 엄마를 잊지 못할 것이다. 연휴와 어버이날을 맞아 잠시 생각해본 젊은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아빠도 누구보다 큰 잠자리 안경을 꼈지만 잘생겨 보였으니까. 나중에 내가 결혼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행복하게 보는 것처럼, 엄마 아빠가 자랑스레 내보일 수 있을 만큼 행복한 하루와 드레스를 입으리라.


에디터 Ly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