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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무하

by노트폴리오 매거진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Job Cigarettes 1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섣불리 빠르게 가려고 하는 내가 보인다. 이번 학기는 기필코 잘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앞서있지만 쉽지 않은 환경 탓에 매 순간 나를 시험해보다 한 달이 지났다. 그러던 중 옛 친구들을 만났다. 사실, 요즘의 내 생활을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 귀찮기도 했지만 어쩐지 친구들과의 만남이 겁났다. 모두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라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일이 많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공부할 게 많아’ 라고 해야 할까. 많이 망설였지만 친구가 청첩장을 준다고 하니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만남은 유쾌했다. 장(醬)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데, 친구들은 근심의 눈초리거두고 “공부하니 좋아?”라는 한 마디만 물었다. 연이어 좋다는 내 대답에 “원래 회사 다니다가 진짜 좋아하는 걸 공부하면 행복하대.” 라며 다른 주제의 이야기로 넘어 갔다.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Zodiac

물론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정취가 배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되었어도 힘든 모임이 있고, 힘든 사람이 있다. 말을 하는 순간순간 마다 내 말들이 땅으로 흩어지는 것 같은 그런 모임. 예전이었다면 떨어지는 말들을 스스로 주워담아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실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소모적인 행동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거나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더 이상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다치지 않게 보호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내 책상 위에는 결혼 청첩장, 환갑 초대장, 그리고 불안해 하면서도 아직 답장 못한 편지들이 있다.

나는 힘에 겹게 친교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뉴욕 미술관에서 수백이 넘는 그림을 하루에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지금 회상할 수 있는 그림은 하나도 없다.

그 중에 몇 폭만을 오래오래 감상하였더라면 그것들은 내 기억 속에 귀한 재산으로 남았을 것을...

애석한 일이다.

 

-피천득, 『인연』, p.58

피천득 선생님의 글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보듬기에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도 그들과 다르다. 나는 이제 좁은 것을 깊게 보며 살기로 했다. 아마 이런 마음이 깊어 진 것은 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인데, 우선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만날 돈과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나의 생활을 일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체력도 없달까.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Spring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Summer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Autumn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Winter

그래도 인간 관계에 미련이 남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내게 이렇게 깊은 생활을 시작하게 해준 미술가가 떠올랐다. 바로 ‘알폰스 무하’다. 사실 2013년경, 예술의 전당에서 <알폰스 무하>展을 개최했을 때 아주 많은 생각을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알폰스 무하에 대해서는 그저 ‘예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정도의 감상을 갖고 있었던 터라 작가에 대해 미리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의 그림 앞에서 눈물이 났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다가 눈물을 흘린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림에 감동한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미술은 미술일 뿐, 그림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지만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은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무하가 작업한 스테인드 글라스. 프라하 비투스 성당

왜 울었을까? 그의 그림은 대가의 작품이지만 아주 예쁘고 장식미가 넘친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철저한 완성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완성도는 눈으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손의 감각’이다. 캔버스에서 생동하는 듯한 그의 그림은 당시의 나에게 힘을 주었고, 미술을 깊게 공부해야겠다는 계기가 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무하는 수 년간 마을의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였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알토 목소리를 지녔으며 실제로도 뛰어난 노래 실력 덕분에 모라비아의 수도인 브르노에 위치한 명망 높은 성 베드로 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브르노에서 유학 중이던 무하는 비엔나(Vienna)의 영향에 반대하는 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모라비아의 전통 미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비엔나에서 회사에 취직했던 무하는 직장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던 링 극장의 화재로 실직을 하게 된다. 무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술가로 살았고, 파리에 가서는 인쇄소에서 일을 하다가 우연히 12월 24일에 걸려온 그 당시 파리 연극계의 톱 스타인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면서 수 많은 포스터를 제작하게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 출처: [테마로 보는 예술: 화가의 생애와 예술],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Woman with Daisies

너무 많은 예술가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지만, 알폰스 무하처럼 내 마음의 호수에 돌을 던지는 예술가들이 몇몇 있다.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가끔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현실감각을 잃게 되지만 그만큼 삶을 표현하는 많은 방법을 배울 수 있어 풍족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모든 예술가들이 처음부터 부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절박한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낸다. 아주 신기하게도 그 목소리가 작위적이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물론 시대에 따라 그 예술가의 마음이 진심이기도, 때론 아니기도 하지만 그들의 작품이 삶의 중심을 잡도록 도와준다.

미술사를 시작하게 해준, 나의 알폰스

The 4 Flowers (Right to left : Carnation, Iris, Lily and Rose)

무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가 가진 만큼의 재능은 없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서 무엇을 하든 완성도 있게 마무리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그 다짐이 많은 과제와 많은 걱정들로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의 그림을 보면 예술의 전당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 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다짐을 마음 속에 되새겨 본다.

 

글. 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