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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by노트폴리오 매거진

코 끝이 싸늘해지는 날씨가 다가오면 유독 안쓰러워 보이는 부류가 있다. 동이 터오는 아침 즈음, 골목 어귀에 널부러져 있는 취객들이다. 자우림의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밤은 취객들에게 괜찮은 잠자리가 되어주지만 이제는 저체온증 걱정을 해야 하는 시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화가가 한 명 있다. 새벽 길에 귀가하는 취객들의 수호성인(?)이자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지배자,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다.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모리스 위트릴로의 초상(Portrait of Maurice Utrillo)' 쉬잔 발라동, 1921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사크레-쾨르 대성당(Sacre-Coeur)' 위트릴로, 1937

그의 골목길 인생은 태생부터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모델이자 본인이 직접 화가의 길을 걷기도 했던 쉬잔 발라동(Suzanne Baladon, 1865~1938)이다. 당시 활동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에는 그녀가 심심찮게 등장하며 ‘몽마르트의 뮤즈’ 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로 그녀의 명성은 자자했다. 위트릴로의 친부가 누구인지 모르는(발라동은 마지막까지 누가 위트릴로의 친부인지에 대해 끝까지 밝히지 않았고 스페인에서 온 화가 미구엘 위트릴로의 아들로 입적시켰다.)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을 낳고 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뮤즈이자 아티스트로 살고자 했고 작은 모리스는 외할머니의 손에 떠넘겨졌다. 선천적으로 약한 멘탈을 지니고 태어난 위트릴로는 이미 8살 때 정신병 판정을 받았고,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귀찮았던 마음이 더 컸던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술을 먹이고 재워버렸다. 이런 잘못된 양육은 그가 평생 동안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도록 한 원인이 되었다. 10대 후반부터 알코올중독 증세로 입퇴원을 반복했던 그가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어머니인 쉬잔은 이미 몽마르트의 여러 화가들에게 동료로서 인정받는 화가였으므로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쉬잔 빌라동은 어머니로서는 최악이었을지라도 선배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어머니(와 누군지 모를 아버지에게서)의 성정과 소질을 물려받은 덕분에 위트릴로의 실력은 날로 늘어갔고 그야말로 몽마르트를 상징하는, 그야말로 몽마르트를 대표하는 화가가 될 수 있었다.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쉬잔 발라동과 모리스 위트릴로. 둘은 겨우 열 여덟 살 차이였다, 출처: http://www.artribune.com/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눈 내린 몽마르트 언덕 (Snow over Montmartre)' 위트릴로

그의 그림은 빠르게 인기를 얻어 1913년에 연 첫 개인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1년에는 쉬잔 발라동과 함께 공동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1910년대에 그려진 그의 '흐린 날씨' 시리즈는 ‘백(白)의 시대’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로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같은 시기에 파리에 살았던 화가들(동네친구로 로트렉, 르누아르, 샤반, 피카소, 브라크 등등 젊고 가난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의 그림을 생각해보면 위트릴로의 그림은 엄청난 테크닉이나 기교 같은 것들이 한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딘지 자꾸 정감이 가는 것은 그림 속 여인들의 두둥실 거리는 뒤태를 비롯해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때문은 아닐까 싶다. 위트릴로에 대한 전기를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몽마르트 골목은 관광객에게 파는 엽서에 담긴 모습이거나 술에 취해 휘청거렸던 지난 새벽의 잔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얼마나 새벽 길을 많이 오갔으면 직접 보지 않고도 기억에 의존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인지!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특히 La maison rose는 발라동과 위트릴로가 살았던 집으로 지금도 몽마르트 언덕에 가면 같은 이름의 카페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위트릴로가 그렸던 곳곳의 스팟은 아직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왜 ‘몽마르트 그 자체’ 라고 불리는 지 이해가 간다. 어쩌면 평생 술독에 빠져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이 유약한 남자는 오로지 그림이라는 동아줄 하나를 붙잡고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 위트릴로를 접했을 때 고흐처럼 우울하게 세상을 하직했을까 싶어 그의 말년을 찾아 봤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그는 벨기에 출신의 미녀 컬렉터와 눈이 맞아 행복하게 살았고, 프랑스 예술훈장까지 받았단다. 아마도 다 ‘살자고 그린’ 그림 덕분일 테다. 술에 취한 그를 보듬어 준 건 몽마르트 언덕의 골목길이었고, 그는 그런 골목길을 자신만의 눈으로 담아 재현했다.

 

몽마르트 언덕에 가면 온통 하얀 성심(Sacre-Coeur)성당이 파리 전체를 굽어다 보고 있다. 탁 트인 언덕배기에서 온 도시를 지키는 것이 이 성당이라면,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작은 골목을 지킨 사람은 위트릴로였다. 온통 흐리고 눈이 내리며 궂은 날들을 살아내고 나면, 그의 인생처럼 다시금 파란 하늘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클리낭쿠르 대성당(Notre-Dame de Clignantcourt)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퐁투아즈의 쇠붙이 제련 거리(Pontoise. Rue de l'Eperon et rue de la Coutellerie)'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파리 길거리(Paris street)'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

'몽마르트의 풍차(Windmills of Montmartre)'

글. 김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