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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Oscar Parasiego

by노트폴리오 매거진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여기 사람과 풍경이 있다. 언뜻 보기에 일반 풍경과 다를 바가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아 하니 인물이 생략되어 있다. 흔히 ‘인물’과 ‘대상’은 작품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렇듯 중요한 요소가 생략되었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물론, 실루엣으로 표현한 인물의 경계선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배경과 같은 장면으로 채워진 면(面)이 안정감을 꾀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마치 주변환경에 따라 몸의 빛을 바꾸는 ‘카멜레온’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카멜레온 기법’을 'Diaspora'와 'Anamnesis'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내면과 추억의 장소, 그리고 인물로 표현했다.

01. Diaspora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Diaspora' 시리즈, oscar parasiego, 출처: oscar parasiego

'Diaspora' 시리즈는 환경에 따른 ‘관계의 변이성’을 다룬 프로젝트다. 'Diaspora'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 영감을 얻어 기획했다. 누구나 낯선 곳에 오랫동안 떠나있게 되면, 기존의 행동양식이나 습관을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바뀌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과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전환점이 생긴다.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첫 취직을 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그대로 ‘나’인데, 나를 둘러싼 환경과 인물들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인생의 수순을 밟으면서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수도 없이 맞이한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과 새로운 문화의 수용은 개인의 정체성과 행동의 발전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Oscar Parasiego는 이러한 순간 -개인이 지금까지 속해있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 당장 새롭게 접하고 있는 환경-을 투명한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배경과 분리된 어색한 인물의 경계선이 눈에 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아직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으나, 점차 흡수되어가고 있는 인물을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사진 속 인물은 배경과 하나가 되어 온전히 흡수될 것이다. 그리고 이내 ‘완벽한 풍경’이 되리라.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Diaspora' 시리즈, oscar parasiego, 출처: oscar parasiego

물론,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환경’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새로운 연인과 사랑을 시작했을 때에도 해당되는 원리다. 그리고 우리는 평생 동안 새로운 장소와 인물에 흡수되며 살아간다.

“내 사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들의 새로운 집이나, 새로운 이웃, 새로운 장소에 흡수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방식에 착안해서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도록 배경으로 위장해서 표현했다. 이는, 작품 속 인물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을 새로운 터전에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점차 새로운 장소와 동화될 것이고 마치 카멜레온처럼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나갈 것이다.

 

작품은 관찰자 시점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적응’은 더 이상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아닌 관찰자의 외부적인 힘에 의해 분석되고 ‘수용되는 것’이다. 때문에 대상 이미지를 표현하지 않는 기법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해당 공간을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반영하여 채우도록 한다.

 

이러한 시도는 한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방법을 반영한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진행될수록 개인은 이전의 자신과 새로운 터전에 자리잡은 자신,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뉘어진다.”

02. Anamnesis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각자의 장면과 인물로 채우시오 by.

'Ananesis' 시리즈, oscar parasiego, 출처: oscar parasiego

반면 'Anamnesis' 시리즈는 5개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을 실루엣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Diaspora'와 같은 기법을 갖지만, 인물을 채우는 단면은 다소 이질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요소는 사진 속에 ‘누가’있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정의가 보는 사람마다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거주하는 동안 마주했던 특별한 인연들이다. 그는 풍경사진을 통해 각각의 인물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한다. 사진에는 각 인물에 대한 성격이나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지 작가에게 이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풍경을 통해 전달할 뿐이다. 즉, 인물에 대한 인상이나 개념, 그리고 추상은 작가의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나타난다. 작품을 통해 Oscar Parasiego는 그가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포괄적인 방법으로 사진을 이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되는 장소와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각자 다른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관객이 ‘누구’를 떠올리느냐에 따라 작품의 정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Oscar Parasiego 작품은 충분히 가변적이다.

 

글. 김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