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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우리는 모두가 섬이다

by노트폴리오 매거진

햇살이 아주 좋다. 창문 밖 세상은 마냥 눈이 부시다. 이제 봄인가, 반가운 마음에 가볍게 옷을 걸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람이 너무 세다. 애써 만지고 나온 머리는 금세 엉망이 되고 몸은 달달 떨린다. 쨍쨍한 햇살이 힘써 온기를 선물해도, 못된 바람은 찬 공기를 있는 대로 후려친다. 창문 밖 세상은 분명 예쁘고 따뜻해 보였는데, 유리 밖의 세상은 혹독했다.


외로움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섬이다. 누군가 “외롭니?” 라고 물었을 때, 누구나 자신의 외로움을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 혼자이며 내 눈에 비치는 세상 역시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세상에 내가 마음 둘 곳은 없는데 저들은 모두 서로를 사랑하는 듯 하다. 나는 모두와 함께 해도 불편하기 그지 없는데, 저들은 서로서로 너무도 친해 보인다’ 이렇게 모두 각자의 외로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마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처럼, 인간군상에 대한 귀납적 추론을 시작한다. ‘저 사람은 외롭다 했다, 이 사람도 외롭다 했다, 그 사람도 외롭다 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외롭다. 물론, 백조무리의 한 마리의 까만 백조처럼 전혀 외롭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는 그릇된 추론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발견한 인간상(人間像)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간단히 패스한다. 자신이 ‘전혀 외롭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연락을 부탁한다! 궁금하거든.

우리는 모두가 섬이다

'겨울비(Golconde)'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공중에 붙어있다. 기다란 막대처럼 다닥다닥 모인 모양새가 까만 빗물이 마저 내리기를 포기한 것 같다. 미술 평론가들은 이 그림을 ‘현대 도시인의 몰 개성(impersonality)’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뭐 똑 같은 의상에 똑 같은 포즈로 나를 응시하는 남자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아니 이 사람들이..!” 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몰 개성(impersonality)’ 측면에서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 이라는 말에 주목하자. 우리는 그림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이 사람은 어떻고, 저 사람은 어떻다’ 처럼 개별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써 ‘사람들’을 인식할 뿐이다!


이렇게 ‘이미 해석된’ 그림의 의미를 바탕으로 사고를 확장해본다. 만약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이 작품의 제목을 <섬>으로 정했다고 치자. 지금 외로움을 다루는 이 글의 삽화로 작품을 가져온 이유를 단박에 느낄 수 있을 거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그렇게 모두가 같은 포즈를 하고, 같은 옷을 입은 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개인 간의 교류는 개뿔, 자신들이 똑같이 닮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외딴 섬’ 같다. 남들 또한 자신과 똑같이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 역시 그림 속 사람들과 같다. 그렇다.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사실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다. 그냥 지금껏 다른 곳을 보느라 몰랐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섬이다.

우리는 모두가 섬이다
우리는 모두가 섬이다

외젠 앗제(Eugene Atget)

외젠 앗제(Eugene Atget)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가 있다. 생전 대인기피증이 심했다고 알려진 그는 철저히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 명씩 등장하는 사람은 평소 친분이 있던, 철저히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 받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는 주로 파리의 뒷골목이나 거리를 찍었다. 그가 찍은 파리의 모습은 사람 한 명 없는 텅 빈 공간으로 공허함을 품고 있다. 그는 왜 사람 없는 파리의 거리를 찍어야만 했을까?


가난했던 앗제의 값 싼 카메라로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긴 노출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런 그는 ‘본디 사진이란 사진가의 경험이 마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이며, 인간의 창작행위에는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앗제는 자신의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가 섬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인'

나는 외롭다. 그러나 너도 외롭다. 세상은 결국 혼자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혼자일 때, 그들 또한 혼자다. 모두가 똑 같은 조건으로 똑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크게 억울할 건 없다. 문제는 결국 누가 자신의 외로움에 의연히 대처 하는가,일 것이다.


햇살이 아주 좋다. 창문 밖 세상은 마냥 눈이 부시다. 이제 봄인가, 반가운 마음에 가볍게 옷을 걸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람이 너무 세다. 창문 안 바깥은 분명 예쁘고 따뜻한 세상이었는데, 유리 밖의 세상은 혹독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지나가는 사람 모두 찬바람에 떨면서도 열심히 길을 걷는다. 그래서 나는 더 힘을 내기로 했다. 부디 당신도 힘 내기를.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남진우,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中

글. 박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