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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re Bonnard)

by노트폴리오 매거진

벚꽃연금으로 버스커버스커가 행복한 계절, 밥을 먹고 앉아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조는 계절, 의무적으로 여의도에 가야 할 것 같은 계절이다. 라디오에서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봄 사랑 벚꽃 말고’가 연신 흘러나온다. 물론 겨우내 두꺼운 패딩 속으로 감춰둔 살과 눈물겨운 이별을 해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역시 봄의 미덕은 우리의 시각을 나날이 다채롭게 만드는데 있다고 본다. 이렇게 봄만 되면 생각나는 작가의 그림이 있다.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계단이 있는 정원 L'escalier du jardin', 1940, 출처 : http://www.wikiart.org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꽃놀이를 가면 파워풀한 색감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계들은 자연 그대로를 담지 못한다. 때문에 만족할만한 순간을 남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의 '계단이 있는 정원 (L'escalier du jardin)' 만큼은 정말이지 찬란한 봄의 정원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파리 근교의 오드센 지역에서 태어난 보나르는 ‘그림 같은’ 동네에서 자란 영향이었는지 법학 전공을 뒤로 하고 화가가 된다. 그는 곧 파리로 넘어가 여러 전시를 통해 당대 가장 유명한 화상 중 한 사람이었던 뒤랑 뤼엘(Paul Durand-Ruel, 1831~1922)의 눈에 띈다.

 

그리고 곧 나비파(Nabi, 히브리어로 선구자, 예언자를 뜻하는 단어에서 따 왔으며 내비게이션의 그 Navi와 어원이 같다)의 일원이 됐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자유롭고 강렬한 색채와 장식적인 미술을 지향하는 젊은 화가 무리들은 매주 함께 모여 교류했는데, 다른 화가들이 신비주의나 상징주의의 성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보나르는 앵티미즘(Intimisme), 즉 일상적인 정경을 주로 그렸다. 그래서일까, 보나르의 작품은 ‘집 안에서’ 그린 것들이 많다.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정원이 보이는 식당 (Salle a Manger Sur le Jardin)', 1934-5, 출처 : http://www.wikiart.org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창문 (La Fenetre)', 1925, 출처 : http://www.wikiart.org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L'atelier au mimosa)', 1935, 출처 : http://www.wikiart.org

1925년, 남프랑스의 카네를 방문한 보나르는 그곳에서 아주 멋진 분홍색 집을 발견했다. 그는 작은집에 ‘보스케(작은 숲)’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그 곳에 눌러 앉았다. 보스케의 2층에 마련한 아틀리에는 사실 비좁은 편이라 보나르는 비스듬히 눕거나 앉은 채로 불편하게 그림을 그렸다.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 그림 하단에 그려진 난간의 모습에서 크기가 어느 정도 짐작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 자연 그 자체였다. 남프랑스의 축복받은 날씨와 자연환경은 보나르에게 ‘색채의 마술사’ 라는 별명을 얻게 해 주었다. 그가 접한 자연은 그 정도로 즉흥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색을 가능케 했다. ‘집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이내 보나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됐다.

 

보나르의 작품을 설명하는 메인 키워드가 꼭 ‘창문’뿐만은 아니었다. ‘목욕하는 여자’ 역시 보나르를 대표하는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그림 속 모델이 모두 같다는 점이다. 그림 속 모델은 보나르가 일평생 사랑했던 여인 마르트 부르쟁(Marthe Boursin 1869~1942)이다. 20대 초반 파리에서 처음 마주친 둘은 하층민이었던 마르트의 배경 때문에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둘은 소울메이트였는지 보스케로 함께 옮겨 가 ‘나름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욕조에 있는 누드 (Nude by the Bath Tub)', 1931, 출처 : http://uploads1.wikiart.org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욕조에서 쪼그리고 있는 누드 (Femme penchee)', 1914, 출처 : http://artboom.info/painting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욕조 누드 (Nu au Tub)', 1912, 출처 : http://artboom.info/painting

왜 ‘나름대로’ 라는 수식어가 붙었냐 하면, 사실 마르트는 정신적으로 많이 약했던 여자였다. 강박증 혹은 결벽증이 있었는지 몇 시간이고 욕조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스펀지로 수없이 문지르곤 했다. 하지만 뮤즈가 괜히 뮤즈겠는가. 보나르는 마르트의 이런 점까지 끌어안았고 목욕을 하는 마르트의 몸짓, 세밀한 손짓 하나하나 애정을 듬뿍 담아 약 400여 장의 작품으로 마르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나타냈다.

 

한 여자를 400여 장의 그림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남자여서 그랬을까. 보나르가 바라보는 창 밖의 세상은 언제나 환상적이고 몽롱하다. 그러나 보스케의 정원에 ‘갇혀서’ 마르트와 단 둘이 영원히 지내고 싶은 보나르의 마음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보스케가 둘만의 피난처같이 느껴진달까. 하지만 신은 참 야속해서 마르트를 먼저 데려가고 말았다. 보나르는 마르트가 떠난 이후, 마르트의 침실 문을 굳게 잠그고 다신 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힘과 마르트를 향한 사랑을 다 쏟아내 그의 마지막 작품인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완성했다. 특이하게도 이 그림은 이젤 없이 벽에 걸어둔 채 그려졌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보나르를 방문할 때 마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집중해서 붓질을 하고 있었다. 온통 빛을 내뿜고 있는 듯한 아몬드 꽃잎과 나뭇가지는 마치 살아있는 듯 너울거린다. 보나르가 일평생 그려왔던 찬란한 빛의 파동 그 자체가 아몬드 나무로 표현된 것이다.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꽃이 핀 아몬드 나무 (L'amandier en fleurs)', 1946~1947, 출처 : http://www.wikiart.org

‘사랑꾼’ 보나르에게 마르트 없는 봄은 겨울보다 더 차고 시려 웠을 것이다. 다시 위의 그림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로 돌아가보자. 왼쪽 하단에 희미하게 보이는 한 여자의 얼굴이 보이는지? 아틀리에 밖의 미모사 꽃이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나르는 도저히 혼자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마음속에만 있던 마르트를 다시 그림 속으로 꺼내놓은 걸 보면.

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 (Pier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L'atelier au mimosa)', 1935

글. 김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