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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나의 두 번째 '신혼여행', 여기 오길 잘했다

by오마이뉴스

일본 아라시야마 료칸에서 하룻밤... 모든 게 완벽했던 곳

오마이뉴스

▲ 일본 료칸 ⓒ 박솔희

책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에서 임경선 작가는 교토 3대 료칸 중 하나인 히이라기야 료칸에 투숙한 경험을 언급한다. 시종일관 정중하고 극진한 대접은 물론이고, 손님이 골목 너머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는 '오모테나시(진심으로 손님을 접대한다는 뜻을 담은 일본어)'를 체험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은 이후로 '교토의 료칸'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교토의 료칸이 품고 있는 고즈넉함과 예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호사스러움. 그걸 느껴보고 싶었다. 배우자와 함께 교토에 갔고, 료칸에 묵었다.

"웰컴 투 아라시야마 벤케이!"

료칸 앞에 도착하자 "Welcome to Benkei! Park Solhee"라는 사인이 반겼다. 손님의 이름을 미리 붓글씨로 적어두고 기다리는 개인화된 서비스에 감동했다. 이내 기모노를 단정히 차려입은 직원들이 친절히 맞아주었다. 아직 체크인 시간 이전이라 짐만 맡기고 다시 나가려고 했는데, 객실 준비가 일찍 끝났는지 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로비에서 신을 벗고 다다미가 깔린 마루로 올라섰다. 우리 방은 2층에 있었다. 신발은 직원이 신발장에 정리해주고, 밖으로 나갈 때는 신기 편하게 꺼내 준다. 객실 내 준비된 유카타를 입고 나오면 발에 맞는 게다(나막신)를 꺼내어 준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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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막신 게다와 함께 신는 양말, 소지품 주머니는 투숙객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 박솔희

생전 처음 들어와 보는 다다미방. 창밖으로 청록빛 호즈강이 시원스레 내다보인다. 화로와 부채 등이 놓인 장식적인 공간은 공간 낭비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백의 미를 살려주는 일본 다다미방의 특징이자 미학이다.


우리가 좌식 테이블에 앉자 곧 웰컴 티로 교토 말차와 맑은 녹차, 양갱이 들어있는 과자가 나왔다. 차를 가져온 직원이 나가자 객실 안내를 위해 따라온 직원이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한다. 당황한 나머지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도 낯설고 황송한데 서양인 손님들은 정말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


직원은 유창한 영어로 료칸 내 시설 이용, 식사 및 온천 이용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말은 영어로 하는데 몸은 일본식으로 절을 하는 언밸런스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객실 내에는 투숙객이 이용할 수 있는 유카타와 잠옷이 구비돼 있다. 유카타와 함께 신는, 엄지발가락 부분이 분리된 양말은 투숙객이 가져갈 수 있었다. 복주머니같이 생긴 소품 주머니도 선물이라고 했다.

음식이 아닌 예술의 경지, 교토 가이세키

차를 마신 뒤에는 잠시 나가서 아라시야마 거리를 구경했다. 교토시 서쪽에 위치한 아라시야마는 대나무숲(치쿠린)이 유명한 곳이다. 헤이안 시대 일본 귀족들의 별장지로 개발되어 지금은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교토의 명소다. 우리나라의 담양이나 전주 같은 고즈넉함이 좋은 곳이었다.


저녁식사 전에 료칸으로 돌아와 객실에 구비된 유카타로 갈아입고 기다렸다. 기모노는 입기가 몹시 어렵다고 하던데 유카타는 단순한 편이었다. 유카타 위에 입는 조끼, 그 위에 덧입는 겉옷까지 있어서 밤 산책을 할 때도 춥지 않았다.


약속한 식사 시간이 되니 문밖에서 누군가 "스미마셍"(죄송합니다는 뜻의 일본어)이라고 말했다. 식사를 하러 갈 때나, 온천을 하러 갈 때나, 객실 앞으로 직원이 '모시러' 온다.


식당은 우리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식사를 방에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묵는 객실의 경우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실망했으나 막상 식당에 가보니 우리 둘밖에 없었다. 나중에 다른 손님 두 사람이 더 왔으나 테이블 간격이 충분히 떨어져 있었고 서로 소곤소곤 대화하며 조용히 식사해서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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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러지가 있지는 않은지,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지 사전에 꼼꼼하게 체크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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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가이세키 요리 ⓒ 박솔희

벤케이 료칸에서 제공하는 교토 가이세키(일본식 코스 요리)는 교토에서 난 로컬 식재료를 이용해 교토식으로 요리한 음식이었다. 교토는 채소 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과연 먹어본 적 없는 신기한 채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교토를 비롯한 일본 간사이 지방은 일본에서도 식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가이세키는 입으로만 즐기는 게 아니라 눈으로 먼저 즐긴다. 그릇에 대부분 뚜껑이 있는데, 뚜껑을 여는 순간 펼쳐지는 색채의 미학에 감동한다. 고운 빛깔의 그릇에 조금씩 예쁘게 담겨 있는 음식들. 초밥과 회, 전골요리는 물론이고 이름도 모르는 온갖 것들을 맛보았다.

달밤 온천욕의 호사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조금 쉰 뒤 온천욕을 즐겼다. 역시 예약 시간에 맞추어 직원이 모시러 왔다.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대욕장도 있지만, 호젓이 둘만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전세탕을 예약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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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료칸의 전세탕 ⓒ 박솔희

다섯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나무 욕조에 온천물이 알맞게 담겨 있었다. 욕조 양편으로는 샤워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욕조에 들어가 멀리 밤하늘을 보니 만월에 가까운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밤의 노천탕이 최고다.


전세탕은 45분 동안 이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충분했다. 뜨끈한 물에 충분히 몸을 담근 뒤 샤워까지 마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딱 45분이 지나가 있었다.


객실로 돌아가니 포근한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밤이 아쉬웠다. 남편은 편의점에서 사온 야식거리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나는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 기간 내내 폭우가 쏟아져 망해버린 지난겨울 신혼여행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는 이번 일본여행을 우리의 두 번째 신혼여행으로 치기로 했다.

'오모테나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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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식사 후 객실로 돌아가면 이부자리가 준비돼 있다. ⓒ 박솔희

다음 날 아침에도 예약된 시간에 맞춰 직원이 '모시러' 왔다. 식당에서 일본식 조식을 먹었다. 차는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료칸에서의 하루는 짧다. 체크인도 늦은 편이고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0시다. 부지런히 식사하고 온천하고 푹 쉬고 일찍 나서야 한다.


투숙하는 동안 이용한 온천과 주류, 기념품 구입비를 결제하고 료칸을 나섰다. 우리를 배웅하던 직원은 료칸 앞에서 너무나 마음에 드는 기념사진까지 찰칵 찍어 주었다. 료칸 직원은 사진 찍기 교육도 따로 받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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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가 능숙하던 벤케이 료칸 직원이 찍어준 기념사진 ⓒ 박솔희

대나무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아까 그 직원이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있었다! 일본 료칸에서는 손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한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일본인들이 손님을 대하는 극진한 태도는 좀 낯설지만, 이상하게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똑같은 행동을 한국인이 한다면 좀 지나치게 굽신거리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본의 문화, 일본인의 몸에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태도이기 때문일까.


'오모테나시'는 요즘 말로 '호스피탈리티(환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손님을 향해 정성을 다하는 료칸 직원들의 태도에, 손님 입장에서도 그에 걸맞게 품위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대접해 준다고 해서 마음 놓고 갑질을 하는 게 아니라, 이쪽에서도 그 대접의 격에 맞는 손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매뉴얼대로의 친절에만 익숙한 세상 속, 교토의 료칸에서 마음에 남는 추억을 만들었다.


박솔희 기자(jamila@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