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아들에게 원피스 입혔다가 벌어진 일

[라이프]by 오마이뉴스

핑크를 좋아하는 아들... '나다움'을 찾아가는 너를 응원할게

오마이뉴스

▲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성별의 틀은 사회문화적으로 끊임없이 변해왔고,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 곽근영

둘째 아이가 두 살 때였어요. 기저귀를 떼지 않았는데 여름은 너무 길었고 게다가 너무 더웠어요. 그래서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원피스를 입혀 산책하러 다녔어요. 둘째 아이는 성별로 구분하자면 남자였습니다. 원피스는 딸 있는 친구에게 협찬을 받았는데요.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귀여웠죠. 무엇보다 편안해 보였어요.


문제는 아이를 본 어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어머, 애가 딸이었어요?"

"아니, 남자애가 치마를 입었어? 세상에..."

"언니, 애 커서 성 정체성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그냥 지나치는 어른이 없었죠.


결국 원피스 산책을 중단했습니다. 아이의 몸에는 시원하고 편했던 옷이었지만, 그 옷으로 아이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일찍부터 사회화할까 걱정됐어요. 저도 그런 반응에 일일이 반응하는 게 피곤해지기 시작했고요. 성별 옷차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지만, 역설적으로 강력한 성별의 틀에 놓인 사회적 시선을 맞닥뜨린 계기가 됐습니다.


둘째 아이는 이제 6살입니다. 아이는 엄마의 "예쁘다"는 말에 "'멋있다'고 해야지"라고 교정해주기도 하고, "엄마, 남자는 치마 입으면 안 돼!"라고 단호히 말하기도 합니다. 갈수록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단단해져 가는 걸 느낍니다.


집 문밖을 나가는 순간 아이들은 '여자답게' 혹은 '남자답게'에 따른 옷차림, 색깔, 장난감, 행동 양식, 취향, 말투를 자연스럽게 습득한다는 걸 매 순간 깨닫지요. 물론 가정 안에서 알게 모르게 주입되는 관념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둘째 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하고, 분홍색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합니다. 어른들이 "남자애가 분홍색이 뭐야?"라고 핀잔을 줘도 말입니다.

'나답게' 살아갈 아들의 미래를 상상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위치한 이갈리아 유치원에서는 치마와 바지에 대한 모든 선택을 아이들에게 맡깁니다. 2017년 영국에서는 성별과 관계없이 교복으로 치마와 바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초·중·고교가 40여 곳으로 늘어났고요.


미얀마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론지라는 치마를 입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치마를 입은 남자들이 무더기로 거리에 나와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젠더리스 트렌드는 전 세계 패션업계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성별의 틀은 과거에도 끊임없이 변해왔고, 사회문화적으로 새롭게 구성돼 왔습니다. 19세기 남자들이 빨간 코트에 드레스를 입고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프릴, 리본 등 장식을 달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오늘도 둘째 아이는 분홍색 머리끈을 가지고 와서 머리를 묶어달라고 합니다. 머리를 묶어주는 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하지만 13살 형 첫째 아이는 머리를 묶고 핑크를 좋아하는 동생이 부끄러운가 봅니다.


한 번은 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가려는데 첫째 아이가 동생의 머리끈을 훅 빼 버렸습니다. "남자가 이게 뭐야? 창피하게..."라면서요. 둘째 아이는 금세 울상이 됐고, 저는 순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왜 그래! 남자도 머리 묶어도 돼!" 첫째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결국 그날 둘째 아이는 머리를 풀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답게, 여자답게보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가 울고 싶을 때 울고, 소심하고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여자를 지켜주는 백마 탄 왕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대신,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아들아.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무엇인지 되묻고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가렴. 남자다운 것은 바로 나다운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너의 길을 엄마는 지지하고 응원할게. 쉬운 길보다 아름다운 길을 찾아가는 건 매력적이지 않니?


곽근영 기자(38317only@hanmail.net)

2019.07.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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