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기어오르고, 지붕 뛰어다니고... 이 모임의 존재 이유

[라이프]by 오마이뉴스

'변화의 월담' 리조와 유닐 대표 인터뷰 ①


일하고 말하고 꿈꾸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대, 우리에게는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은 사회 곳곳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마음껏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30대 이상 여성들을 인터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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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몸들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 월담' 리조와 유닐 대표가 마포구 한 공원에서 파쿠르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권우성

영상 속의 누군가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키보다 높은 담벼락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계단 난간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도심 속을 질주한다. 벤치를 디딤돌 삼아 담장을 기어오르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액션 배우들일까? 무술 고수들의 훈련 장면? 이것은 포털사이트에서 파쿠르를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이다.


파쿠르는 프랑스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parcour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시와 자연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개인훈련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파쿠르를 하는 단체가 있다. 그중 움직임 교육 연구소 '변화의 월담'이 눈에 띈다. 리조와 유닐. 두 명이 공동 대표로 있는 이곳은 파쿠르뿐 아니라 움직이는 능력을 회복하는 장이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 사교클럽' 인터뷰에서 꼭 한 번 운동하는 여자를 다루고 싶었다. 체육 시간이면 여학생들이 그늘에 앉아 남자들이 축구를 하는 걸 구경하던 시대는 지났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가 인기를 끌고, 이영미의 <마녀체력>이 회자 되는 게 지금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할 수 있는 몸의 움직임이 어째서 지금까지 여자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늘이 푸르러 운동하기에도, 사진 찍기에도 딱 좋았던 여름날. 홍대 앞 경의선책거리 공원에서 리조와 유닐을 만났다. 과연 몸을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답게, 부드럽고 민첩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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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로 점프하는 '변화의 월담' 리조 대표. ⓒ 권우성

움직임을 실험하고 탐구하며 관계를 배우는 곳

- 움직임 교육 연구소 '변화의 월담'은 어떤 곳인가?


"움직이는 능력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젠더나 나이, 사회적 지위, 국적 등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해볼 수 있는 움직임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탐구하면서 자기 자신과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곳이다.


움직임 교육에서는 몸하고 마음이 같이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것이고,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간다. 신체와 정신을 더 이상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접근하지 않고, 함께 일상에서 회복하고 움직이는 교육을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요즘은 헬스클럽에서 특정 부위를 단련하거나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을 하기도 하지 않나. 변화의 월담에서 진행하는 움직임 교육은 특정한 기술과 형식에 맞춰서 몸을 개발시키는 게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가지고 있을 본성과 능력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는 교육이다. 그게 운동이나 스포츠 교육과 구별 지어 움직임 교육이라 칭한 이유이다."


- 변화의 월담은 파쿠르 하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파쿠르라는 단어가 움직임 교육 같은 말보다는 더 인기가 좋다. 낯선 외래어이고 SNS 노출도가 높아서 그러는 걸까? 파쿠르는 불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parcours'라는 단어에서 기원했다. 1980년대의 파리를 중심으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청소년들이 뛰어 놀 곳이 줄었다. 그때 아이들은 도심 속 건축물과 조형물들을 이용하면서 뛰어놀았다. 차후 그렇게 움직이면서 자기 몸을 탐구하는 활동에 '파쿠르'라고 이름을 붙인 거다.


사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파쿠르와 변화의 월담에서 교육하는 파쿠르는 좀 다르다. 우리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포괄하는 교육을 한다. 화려한 지붕 사이 뛰어넘기나 높은 벽 기어오르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가장 지루한 인도와 계단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네발, 두발, 전신 협응 움직임, 벽을 힘차게 뛰어 넘는 것뿐만 아니라 벽에서 흘러내리듯 거꾸로 착지하기, 눈을 감고 시각 외 다른 감각으로 길 찾아가기 등 다양한 움직임을 탐구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한다.


도심에서 어떤 건축물을 넘을 수 있느냐가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다양한 몸들이 도심에서 함께 놀이하는 방법과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주 관심사다. 획일화된 '극복' 혹은 '도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개개인 몸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위험 감수'와 '놀이'를 가능케 하는 교육 환경과 문화가 중요하다."

- 파쿠르는 주로 지형물을 넘는 운동인가?


"도시의 지형물을 활용해서 움직이고 놀이하는 것이라 말한다. 유튜브에서 벽을 기어오르고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는 영상을 많이 보셨을 것 같다. 그것도 일부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사실 그러한 자극적인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문화를 챌린지하고 좀 더 다양한 몸들이 함께, 즐겁게, 안전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변화의 월담의 미션이기도 하다. 살을 빼야 한다거나 근력을 키워야 파쿠르를 할 수 있다거나 도심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야 한다. 모든 건 교육하는 사람의 방법론(페다고지), 다양한 개인을 향한 기획자의 섬세한 감수성, 함께하는 사람과 함께 만드는 분위기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생긴다.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암벽등반을 배운 적이 있다. 바위 표면의 미세한 틈에 엄지발가락을 끼우고 그 발가락 하나로 몸 전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 내 몸이 실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기까지 많은 시간과 지지, 격려, 가이드를 받았다. 동료 선생님은 할 수 있는 가능성만 제시해주고, 나머지는 내가 내 몸하고 실험하고 신뢰관계를 쌓는 과정이었다. 변화의 월담은 그런 배움과 나눔, 유대의 경험을 꾸리는 장이다."

내 몸의 구조와 원리를 감각으로 깨닫는 일

- 움직임 교육 연구소는 다른 운동 센터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우리는 교육을 하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움직임 교육을 소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서 대하지 않는다는 게 차이점일 것 같다. 운동 배우러 간다고 하면 지정된 공간에 가서 도구와 서비스를 제공 받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걸 생각하지 않나.


언제부터 움직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몸과 괴리되어 '운동하는 몸'을 만드는 소비 양상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소비할 수 있는 사람만 운동을 하게 되고, 더 심각한 건 소비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변화의 월담에서는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습관, 방법을 탐구하고 일상 공간에서 몸으로 노는 관계와 문화를 회복하는 교육을 한다.


자기가 채우고 싶은 욕구를 달성하고 싶어서 온 동호회나 클럽, 멤버십 문화는 간적인 관계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소비적인 관계로 단절된다. 자기 계발의 덫에 갇혀서 그 욕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 자기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연결'을 추구하는 것을 진정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월담에서는 내 몸이 이상적인 몸이 돼야 한다거나, 좋은 상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몸무게를 줄이거나 어떤 운동 레벨을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인지하고, 몸을 실제로 움직이면서 '내 몸이 이렇게 섬세한 구조와 원리로 살아 있구나'를 감각으로 깨닫는 거다. 일상생활에서 내 몸과 다른 사물, 사람이 접촉할 때의 느낌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배워가는 과정이다."


변화의 월담이 이야기하는 '움직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포츠'와는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의 파쿠르 역시 마찬가지다.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며 건물을 뛰어 넘는 20대 남성의 그것과는 달라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파쿠르뿐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있다. 파쿠르하는 여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회적 이미지가 있다. 두 대표는 이런 경험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파쿠르 한다고 하면 '여자가 이런 위험한 운동을'이라는 시선을 받지 않나?


"그렇다. 일단 파쿠르 자체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물, 사진 등으로 방송과 소셜 미디어에 많이 팔리는 현상이 영향을 끼친다.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10대~2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파쿠르 동호회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위험'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무엇이든지 통제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위험하니까 하지 마, 위험하니까 가지 마. 위험하니까 운동하지 말라는 등 일단 심사숙고 없는 제재가 가해진다. 특히 여성으로 태어나면서 몸에 적용되는 수만 가지의 규범과 통제 기제를 살펴보자. 다리 벌리고 앉지 마라, 여자 몸에 상처가 있으면 되냐, 손이 왜 이렇게 거치냐, 팔뚝과 종아리는 굵어지면 보기 싫다 등. 당연히 파쿠르 하는 여성은 '정상'이 아니게 보이고 더 예외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비춰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위험의 실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몸의 가능성을 펼칠 만한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여성을 더 쉽게 통제하려는 성향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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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의 월담' 리조와 유닐 대표 "더 근력을 키우거나 살을 빼는 등 외적 이미지 자본의 향상이 너무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되어 왔다. 여성 몸에게는 그런 방식들이 더 가혹하다" ⓒ 권우성

몸은 존재의 시작이자 끝

- 여성은 남성보다 스포츠를 가깝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왜 그럴까?


"이 사회에서 여성은 조신해야 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교육 받는다. 피부만 해도 여성은 볕에 그을리거나 상처가 나는 것에 더 민감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여성의 몸에 대한 규범이 너무 많다.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는 과정이 부족했다. 두려움, 내적 갈등과 씨름하는 것, 월경 같은 몸의 원리들이 어떤 변화와 돌봄을 수반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더 많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다보니 스포츠, 더 안타깝게는 신체 활동 자체를 더 멀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최근 여성 스포츠 동호회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덜 기울게 만들겠다는 노력, 임파워링에 대한 실험이나 놀이들이 활발해졌다. 그 맥락에서 여성 스포츠 장이 많이 생겨나는 것 같다. 여성의 몸을 해방하기 위해 스포츠의 장이 생기는 건 좋은데, 조금 거리를 두고 기존 스포츠 문화가 어땠는지부터 먼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이제까지 스포츠 문화는 경쟁이 심하고, 고유한 자기 몸에 대한 발견과 존중보다는 계발 중심적 방법이 강했다. 더 근력을 키우거나 살을 빼는 등 외적 이미지 자본의 향상이 너무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되어 왔다. 여성 몸에게는 그런 방식들이 더 가혹하다.


이 한계를 젠더의 맥락과 같이 짚어내지 않으면, 여성 스포츠 장은 생겨나겠지만 경쟁과 비교의 스포츠는 계속 될 것이다. 활발한 움직임을 좋아하는 여성들에게만 장벽이 낮아질지 모른다. 특정 능력치를 가진 몸에게만 편안한 환경이 되지 않겠나.


변화의 월담은 부제가 '다양한 몸들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 교육 연구소'인데, 그 '다양한 몸'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여성이라고 다 같은 몸인 것도 아니다. 여성 안에 있는 어떤 다양한 몸들을 어떻게 임파워링할 수 있을까를 아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


- 여성이 평등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걸까?


"사회 변화에 있어 몸의 움직임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하다기보다는, 이제까지 우리가 몸을 너무 경시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식의 이성 중심의 모임은 활성화돼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무한 자기 계발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러 활동들로 인해 만성 피로에 시달리거나 아프게 된다. 너무 합리적 이성에 매몰된 나머지, 몸의 언어는 하위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기 때문에 몸져눕기 전까지 자기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정보와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지속가능한 일상, 사회 운동을 추구하려면 자기를 돌볼 줄 아는 지혜로운 개인들의 관계망이 필수적이다.


더 이상 몸은 이성의 통제 하에 도구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 존재의 시작이자 끝, 근본이라는 것을 깨닫는 움직임이 일어나면 좋겠다. 대의를 달성하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에 앞서 그 과정에 함께하는 몸들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가 우선 아닐까. 몸의 지속성과 회복력에 대한 확신은 움직이며 변화하는 몸의 경험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인터뷰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초롱 기자(pushike87@hanmail.net), 권우성 기자(wskwon21@gmail.com)

2019.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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