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떨어진 기온,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결과

[여행]by 오마이뉴스

3박 4일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자는 동안 목구멍이 까끌까끌 하길래 구급약 봉지에서 감기약을 꺼내 먹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미리 맞춰놓은 알람에 따라 급하게 일어나서 준비하는 중인데, 숙소 전화벨이 울린다. 가이드였다.


"날씨 때문에 출발을 한 시간 늦출게요. 7시 반에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못 가는 건가요?"

"아니요. 날씨 때문에 좀 기다려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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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로비에 오늘의 등산로가 그림으로 붙어 있었어요! 날씨때문에 안타까워서 숙소의 그림으로라도 사진을 찍어놓았습니다. 꼭 가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죠? 오늘 먹지 못한 온천 계란도, 그때까지 잘 있어요! ⓒ 이창희

오늘은 북쪽 등산로를 이용하여 천지에 오르는 날이다. 여행 전에 확인할 때에도 많이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어서 걱정스러웠는데, 날씨 때문에 시간이 늦춰진다고 하니, 천지를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예감으로 두려워졌다.


급하게 짐을 정리한 후 숙소 앞을 잠시 걷다 보니, 걱정은 점점 현실이 된다. 지난 밤에 비해 기온은 급격하게 차가워졌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숙소 앞 장식물들이 다 쓰러져 있었다. 청명한 아침 햇살 아래로 급하게 차가워진 공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 오후부터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서 북쪽 등산로를 폐쇄했다고 해요. 아직 폐쇄가 풀리지는 않았는데, 오전에 날씨가 풀리면 해제될 수도 있으니 우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지까지 오르는 것은 힘들더라도, 장백폭포까지는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니 이동할게요."


북쪽 등산로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보였고 눈이 쌓인 장백폭포를 기대하며 입구에 도착했는데, 관리자들에게 문의하고 돌아온 가이드의 표정이 어둡다. 결국, 등산로는 서쪽과 북쪽 모두 폐쇄되었고 장백폭포까지도 갈 수 없다고 했다. 어제 분명히 천지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폭포 근처 온천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온천 계란도 못 먹은 것도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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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동포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어요. 점심으로 연길의 북한 식당에 들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서,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마음이 울컥했어요. ⓒ 김충복

다시 버스에 올라 연길로 길을 잡았고, 비어버린 여행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지 의견을 모았다. 가이드가 연길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를 제안했고,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다시 용정을 거쳐 연길의 북한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에 가까울 때였다.


우리는 정성스럽게 차린 북한식 식탁을 신나게 즐겼다. 식사가 끝나고 노래방 기계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북쪽의 동포들과 함께 '고향의 봄'이나 '반달'같은 동요를 부르다 보니 자꾸만 목이 메었다. 동포를 지척에 두고도 이렇게밖에 만날 수 없는 현실이 계속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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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란강의 노을이 아름다웠어요. 이번 여행에서 계속 마주친 해란강과 용정을 지나가며 멀리로 보였던 일송정을 만나니, 이 곳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우리 동포가 떠올랐어요. 그 동안 이 곳을 잊고 지냈던 우리의 역사도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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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난 파란 하늘아래, 퇴근길을 재촉합니다. 퇴근 시간을 맞이한 숙소앞의 사거리가 차들로 가득합니다. 해란강 주변으로 잠시 산책을 했어요. ⓒ 이창희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해가 지는 해란 강을 바라보며 연길 시내를 잠시 걸었다. 퇴근으로 분주한 시내의 길은 차들로 가득했고 한글이 같이 쓰인 간판들의 불빛으로 화려한 거리는, 급격한 경제적인 부흥을 짐작하게 했다.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잠시 어쩔 줄 몰라 서성이기는 했지만, 우리 동포들의 터전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이 동네가 처음보다는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짧은 일정이긴 했지만 여행을 함께 한 우리들도 무척이나 편안해졌고, 아이들은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 밤 늦게까지 함께 컵라면을 먹고서야 헤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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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손주를 학교에 보내고 계시네요!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었어요. 숙소 앞에서 잠시 산책을 하던 중,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어쩐지 우리 민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 이창희

이렇게 오래도록 준비했던 백두산 여행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날은 여행사에서 준비해 준 김밥을 챙겨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포항에 도착하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갑자기 일행 중 가장 어린 친구가 아빠를 찾는다.


"아빠! 오늘 저녁은 짜장면 먹어요."

"그럴까? 그러자."

"여기 이 사람들 다 같이요!"


우리는 같이 크게 웃었고 3박 4일을 함께했던 열다섯 명의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는, 얼렁뚱땅 회사 근처의 중국 식당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그러고 보니, 여행 기간 내내 우리의 식사는 한식이었고, 아홉 살 동현이는 여행 내내 짜장면 얘기를 했었다.


중국 여행이라며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계속 익숙한 식사만 하다 보니, 더 생각이 났나 보다. 미니버스의 기사분까지 함께 움직여서 도착한 식당의 이름은 절묘하게도 '흑룡강'이었고, 조선족 자치주가 위치한 길림성에 인접한 지역이라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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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오늘의 저녁식사, 짜장면입니다!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계속 한식을 먹어서인지, 돌아와서 제일 먼저 먹은 메뉴는 중국 식당의 짜장면과 갓 튀겨낸 탕수육이었습니다. 이렇게나 위트 넘치고 단함되는 동료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너무나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 이창희

이렇게 왁자지껄하게 저녁을 먹고 났더니, 드디어 여행이 끝났다. 백두산을 모두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너무 멀지 않은 언젠가 자유여행으로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그때까지 연변의 친구들 모두, 잘 지내고 계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이창희 기자(crazyli@naver.com)

2019.10.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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