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오늘 즐거우셨어요?

[여행]by 오마이뉴스

대전유성구치매안심센터 충남예산 가을 힐링 나들이


대전 유성구에 살고 있으면서 유성구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65세 이상 어르신들과 보호자들 그리고 센터 직원, 자원봉사자 등 전체 60여명이 가을 힐링나들이에 나섰다.


움직이는데 별 무리가 없는 어르신과 치매나 인지저하의 어르신을 모시는 보호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센터에서는 가을에 한 번 힐링나들이를 준비한다. 나는 보호자로 또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11일(금) 아침 8시 30분, 센터에 모여 혈압을 체크하고 건강상태를 확인한 다음, 준비된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탔다. 오늘 나들이할 곳은 충남 예산 수덕사와 사과밭을 가는 것. 가는 도중 앞에 앉아가는 어르신이 노래듣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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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에 들어가기 전 매표소 앞에서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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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으로 가는 길 ⓒ 한미숙

“수덕사에 가는데 ‘수덕사의 여승’ 노래는 꼭 들어야 해유~.”


그러자 모두 박수를 쳤다. 어르신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인적 없는 수덕사의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정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수덕사에 이르러 해설사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다. 한 어르신은 다른 건 다 몰라도 예산 수덕사의 5덕(德)은 기억하고 싶다며 잊지 않으려고 자꾸 묻고 확인했다. 5덕은 모두 ‘덕’자가 들어간다. 수덕사는 물론, 절을 둘러싼 덕숭산, 수덕사가 있는 덕산면, 그리고 백제 27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이 있고, 수덕사근처에서 생산되는 더덕이 포함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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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아 절하는 사람들 ⓒ 한미숙

“수덕사에는 여자스님만 있어요?”


한 어르신이 해설사에게 물었다. 해설사는 아마도 ‘수덕사의 여승’이란 노래가사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고, 일엽 스님이 계셨던 곳이기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수덕사에는 여자스님도 있지만 남자스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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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선생, 화가 나혜석 등이 한때 생활했던 수덕여관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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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뒤꼍에 있는 우물과 항아리들 ⓒ 한미숙

수덕사 일주문을 통과하면서는 근처에 화가 이응노 선생이 거처하던 수덕여관과 미술관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관에 가고 싶었지만 어르신들 대부분은 대웅전이 있는 곳까지 얼른 가고자 했다.


절에 다니는 어르신들은 기꺼이 쌈짓돈을 꺼내 기와불사를 하거나 대웅전에 들어가 소원을 빌며 엎드려 절을 했다. 다른 어르신들과 보호자들은 천천히 걸으며 가을햇빛을 즐기기도 했다.


산책이 끝난 다음 수덕사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방풍나물, 고사리나물, 숙주나물 등의 나물류와 5덕의 하나인 생더덕무침, 조기구이, 우렁된장찌개로 차린 푸짐한 상을 받았다.


갓 지은 지름한 밥은 치아가 그리 좋지 않은 어르신들 입맛에 잘 맞았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수정과를 후식으로 마시고,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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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은성농원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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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사과와인 건물 ⓒ 한미숙

다음일정은 사과잼 만들기 체험과 사과 따기를 할 수 있는 은성농원이다. 차가 점점 농원에 가까워지자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너른 사과밭을 보자 사람들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농원 앞 건물엔 ‘예산사과와인’이란 글이 눈에 띄었고 이곳을 찾은 외국인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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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잼만들기 전에 설명하는 정제민씨 ⓒ 한미숙

사과잼 만들기는 어르신들 안전사고에 대비해 90%까지 미리 과정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설명을 듣고 직접 어르신들이 해볼 수 있는 건, 나무주걱으로 10여 분 정도 타지 않게 저어주며 졸이는 것. 농원의 직원이 돌아가면서 다 졸여진 잼을 병에 넣었다. 잼이 뜨거울 때 뚜껑을 닫고 그 위에 각자의 이름을 적었다. 일행은 다시 사과를 따러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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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집 식구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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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쪼아먹고 바닥에 뒹구는 사과들. 닭밥이다. ⓒ 한미숙

사과밭으로 가는 동안 ‘닭집식구들’이 있었다. 닭들의 밥은 사과다. 바닥엔 닭이 쪼아놓은 사과가 뒹굴었다.


“여기 사과 이름은 '감홍'이에요. 여러분들이 여기 오실 때 색깔이 아주 빨간 예쁜 사과도 봤을 거예요. 근데 지금 보시는 사과는 보시다시피 피부가 거칠어요. 그리고 못생겼어요. 그런데 당도는 다른 사과보다 월등히 달아요. 사과는 한 사람이 다섯 개씩 딸 거예요. 이거 딸까, 저거 딸까 하지 마시고 꼭 이걸 따야지, 하는 것만 따야 해요. 저 아까운 사과가 왜 떨어졌을까 하면서 줍지 마세요. 바닥에 떨어진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 돌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정해놓은 사과를 잡고 위로 올려서 따면 되구요~, 잡아당기면 안 됩니다.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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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따기, 꼭 다섯개만~ 크고 예쁜 걸 골라보세요. ⓒ 한미숙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가장 크고 탐스런 사과 다섯 개 따기는 금방이었다. 사과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우리는 다시 이동하여 건물 지하 2층에 마련된 사과 와이너리를 탐방했다. 2만평의 너른 사과밭을 보면서도 절로 감탄했는데 와인을 제조하는 곳에 오니 여기저기 탄성이 절로 터진다. 어른 키를 넘는 술통이 있고 와인을 만드는 각종 도구들이 마치 연금술사를 떠오르게 했다.


직원 설명에 따라 공간을 이동하며 드디어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곳에 모였다. 소주잔크기의 종이컵에 직원이 따라주는 ‘추사애플와인’과 ‘추사블루스위트’를 시음했다. 소주는 전혀 마시지 못하고 맥주 또한 한 모금 밖에는 먹을 수 없는 내 입맛에 추사애플와인은 시원하고 달콤했다. 한달의 발효와 1년간의 숙성으로 아이스와인 스타일의 매우 달콤한 맛은 한모금만으로는 정말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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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충남술 TOP에 세가지 술이 선정되었다. ⓒ 한미숙

예산사과와인은 '충남술 선정 TOP 10'에 3가지가 선정되기도 했다. 과실주로 알콜도수 12도인 ‘추사애플와인’과 블루베리로 만든 ‘추사블로스위트’ 그리고 알콜도수 40도인 오크통 숙성 사과브랜디인 ‘추사40’이다. ‘추사(秋史)’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향 충남예산의 풍성한 가을을 담은 술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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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이너리 탐방하면서 설명해주는 직원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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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들어가면서 인상깊게 본 와인제조의 각종도구들 ⓒ 한미숙

사과와 양조기술의 만남은 40여 년 동안 가꿔 온 아름다운 사과농원에 캐나다에서 아이스와인 양조를 배운 사위 정제민 Wine Maker의 양조기술이 접목되어 예산 사과와이너리가 시작되었다. 그는 ‘장인어른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시월의 맑고 햇볕 따스한 가을날씨는 어르신 나들이에 안성맞춤이었다. 센터로 돌아가는 관광버스 텔레비전을 통해 노래가 흘렀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트로트가수들의 노래가 나오고 이미자노래에 따라 온갖 꽃들이 화면을 장식했다.


오늘 하루, 자연과 함께 한 어르신들의 마음은 동심 그 자체였다. 일 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힐링 나들이. 파란하늘도 감사한 날이었다. 오늘밤 어르신의 잠이 감홍사과 맛처럼 달달했으면 좋겠다. 나들이를 함께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한미숙 기자(enikesa@hanmail.net)

2019.10.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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