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을 2톤이나 녹여 만든 무덤 조각상, 왜 이렇게까지

[여행]by 오마이뉴스

체코 프라하 성 기행


우리는 구시가를 구불구불 돌아가는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을 찾아갔다.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트램에는 프라하 시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시민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프라하 성의 후문 쪽이 나왔다.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라서 우리는 번잡한 정문을 피해 후문 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와 아내는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프라하 성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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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투스 대성당. 압도적인 규모로 눈에 가득차게 들어오는 성당이다. ⓒ 노시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이 압도적인 규모로 눈에 가득차게 들어왔다. 고딕양식의 당당한 이 성당은 너무 커서 한 장의 사진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우리는 입장 줄이 가장 긴 이 비투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보헤미아의 왕들이 대관식을 올리고 사후에는 묘를 만든 성 비투스 대성당. 대성당 내부의 측면에는 21개나 된다는 예배당이 도열해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고딕양식의 걸작인 둥근 천장 아래에 장엄하기만 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천장의 높이는 성당을 더욱 장엄하게 느끼게 했다. 하늘도 맑은 오늘, 대성당 안에는 햇빛이 선을 그리며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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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 노시경

중세 때부터 체코의 '보헤미아 글라스'는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은 신비한 모습으로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성당 벽면에 그대로 비친 햇빛은 다양한 무지개 빛이 되어 성당을 밝히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은 천장 아래를 모두 비출 정도로 넓고도 깊다.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 있는 성당 입구의 스테인드글라스 앞으로 가보니 아르누보(Art Nouveau) 미술의 대가인 알폰소 무하(Alphonse Mucha)의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유리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유리에 직접 물감으로 그려져 있다. 햇살이 그의 작품을 빛나게 해주기 때문에 이 그림들의 색감은 너무나 선명해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무하의 작품은 현대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는 듯 하지만 장엄한 성당의 역사와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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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포무츠키 무덤. 2톤이나 되는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 노시경

나는 가장 많은 여행객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바로 성 얀 네포무츠키(Svatý Jan Nepomucký)의 화려한 무덤 앞이다. 무덤 위로 은으로 만든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상이 있는데 은을 2톤이나 녹여서 만들었다. 무덤의 조각상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어 숭앙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보헤미아의 국왕 바츨라프 4세(Wenceslaus IV) 의 두번째 부인인 소피(Sophie) 왕비의 고해(告解)를 들은 신부였다. 평소에 바츨라프 4세는 너무나 아름다운 왕비가 혹시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왕비는 정부(情夫)가 있다는 사실을 네포무츠키에게 고해하였고, 이 장면을 본 신하가 왕에게 고자질하면서 왕은 왕비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다. 왕은 네포무츠키에게 그녀의 고해 내용을 말하라고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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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포무츠키의 전설. 네포무츠키는 왕궁의 개에게 귓속말을 하며 고해의 비밀을 지킨다. ⓒ 노시경

이러한 이야기는 성당 내 무덤 앞의 한 그림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의 왼편에 왕비가 네포무츠키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네. 그런데 오른쪽 아래에 흰 색의 개 한 마리는 왜 그려져 있지?"

 

"왕이 자신에게 그 내용을 말할 수 없다면 어느 한 생명에게 말해보라고 이야기했는데, 네포무츠키는 사람이 아닌, 왕궁의 이 개에게 귓속말을 함으로써 고해의 비밀을 지켰던 거지. 왕은 그의 혀를 자르고 고문을 한 후에 그를 돌에 매달아 블타바 강(Vltava River)에 내던져 죽여 버렸어."

은으로 장식된 네포무츠키 무덤 위의 조각상을 보면 머리에 황금색 별 다섯 개가 있다. 이 별은 그가 던져진 강물 위에 다섯 개의 별 같은 광채가 비쳐 시신을 수습하였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네포무츠키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순교자로 체코의 성인이 되어 극진히 모셔지고 있다. 그의 은상 위에 드리워진 화려한 붉은색의 장식 커튼도 수백 년 된 것이라고 하니 그에 대한 체코인들의 사랑은 놀랍기만 하다. 죽음 앞에 정의를 지킨 네포무츠키의 의로움을 체코인들은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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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조각상. 은을 채굴하던 광부들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조각상이다. ⓒ 노시경

네포무츠키의 무덤을 지나 머리를 들어보니 왕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출입하였다는 난간이 있다. 난간 아래에는 평범한 복장의 광부 조각상이 있다. 유럽 최대의 은 광산이 프라하 근처에 있었는데, 보헤미아 왕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데에 은 광부들이 큰 공을 세웠다 하여 그 고마움의 표시로 이 광부 조각상을 만든 것이다. 성당을 만드는 데에 시민들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마음 훈훈한 조각상이다.


대성당 밖으로 나오니 우리가 입장하기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대성당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성당 남동쪽에는 일부가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체코의 구왕궁이 자리잡고 있다. 고딕 양식 구왕궁의 입구에는 반갑게 한글로도 '구왕궁'이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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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왕궁 블라디슬라브 홀. 기둥이 없이 만들어진 큰 홀의 위풍당당함이 있다. ⓒ 노시경

보헤미아의 역대 왕들이 사용했던 구왕궁에는 중세 이후 체코의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구왕궁에 들어서면 왕의 대관식이 열렸던 '블라디슬라브 홀(Vladislav Hall)'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유럽에서 기둥이 없이 만들어진 가장 큰 홀이어서 그 모습은 아직도 위풍당당하다. 구왕궁 3층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계속 들어가자 대법관의 방이 나왔다. 구왕궁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이 방에는 기이한 역사들이 가득 담겨 있다.


1618년 신교도 귀족들이 종교개혁에 반대하던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Ⅱ)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는데, 신교도들이 이 창 밖으로 카톨릭 행정관리 두 명과 황제의 비서를 내던져 버렸던 것이다. 이 '프라하 창문투척사건'은 이후 중부 유럽을 휩쓸었던 30년 종교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종교적 이유로 반대파를 창 밖으로 던져 죽인 잔인성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고해성사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던 네포무츠키도 강물에 던져 죽였으니, 중세 체코의 역사에는 사람을 아래로 던져서 죽이는 폭력성이 있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전, 사람의 목숨이 쉽게 사라지던 중세의 역사를 여기에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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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르지 성당. 핑크빛이 감도는 단아한 성당이 아름답다. ⓒ 노시경

왕궁 밖으로 나오자 붉은색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미술관과 콘서트 홀로 사용되는 성 이르지 성당(Bazilika sv.Jiri)이다. 들어가보니 놀랍게도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지속적으로 개축된 성당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미술관답게 곳곳에 전시된 회화작품들은 다양한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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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르지 성당 내부. 오랜 역사의 성당 내부는 너무나 고풍스럽다. ⓒ 노시경

역사가 오래된 성당답게 성당의 내부는 너무나도 고풍스럽다. 빛 바랜 벽화들은 역사의 향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세월 속에 칠이 많이 벗겨진 천장 벽화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을 받아 강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단아한 나무 천장이 잘 어우러진 성당 안에서, 성당 내부의 여행자들은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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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소로. 체코의 중세 시대에 황금을 만든 장인들이 살던 작은 소로이다. ⓒ 노시경

성 밖으로 나서니 중세의 작은 골목길인 황금소로(Zlata Ulicka)가 이어진다. 중세시대에 연금술사들이 황금을 만들던 골목이다. 머리가 닿을 듯한 낮은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이 옛집들은 전시장과 기념품 판매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워낙 좁아서 여러 사람들이 들어가 구경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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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그가 너무나 작은 집에서 생활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작품을 집필하던, 황금소로 22번지의 한 집을 찾아갔다. 프란츠 카프카는 작은 골방 같은 이 여동생 집에서 6개월간 머물며 집필을 했다고 한다. 카프카의 체취보다는 그가 이토록 작은 집에서 생활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체코의 중세시대 서민들의 집은 충격적일 정도로 작았다.


프라하 성 안에 담긴 이 모든 다양성은 체코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체코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나와 아내는 성 아래의 이름난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갔다. 새파란 하늘 아래, 프라하 구시가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노시경 기자(prowriter@naver.com)

2020.01.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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