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숨긴 비밀정원과 무인가게를 소개합니다

[여행]by 오마이뉴스

‘전라남도 민간정원’ 구례 쌍산재와 사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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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쌍산재의 안채. 풍경이 소담스럽고 어여쁘다. 외지인의 발길을 불러들이는 옛집이다. ⓒ 이돈삼

깨나른한 오후, 자분참 상사마을로 간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상사마을은 구례읍에서 하동 방면으로, 화엄사 입구 삼거리를 지나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도로에서 봤을 때 오른편이 하사(下沙), 왼편이 상사(上沙)마을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 속한다.


지명이 모래 위에 그린 그림이다. 827년 신라 흥덕왕 때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해주 오씨가 들어와 터를 잡았다. 순천에서 영천 이씨가 들어오면서 두 성씨의 집성촌이 됐다.


지명 유래가 도선국사(827~898)와 엮인다. 사성암(四聖庵)에서 수행하던 도선이 이곳의 산수를 보며 풍수의 원리를 깨쳤다는 얘기다. 강변에 모래(沙)로 산천을 그렸다(圖)고 '사도'다. 삼국통일의 징조를 일찍 알아챈 도선은 훗날 왕건을 도와 고려 개국에 큰 공을 세웠다.


사도저수지 위쪽 산자락에 상곡사(象谷寺)가 있었다. 태조 왕건이 도선을 기리며 세웠다고 전해진다. 절집은 지금 사라지고, 석불과 석탑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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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등에 업고, 섬진강을 앞에 둔 상사마을 풍경. 골목길 풍경이 고즈넉하다. 몇 년 사이 귀농·귀촌을 해온 젊은 사람들이 많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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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의 상사마을 풍경. 한국 제일의 장수촌이라는 기념비가 마을 앞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상사마을로 외지인의 발걸음을 불러들이는 건 쌍산재(雙山齋)다. 숲과 정원에 집이 들어앉아 있다. 풍경이 소담스럽고 어여쁘다. 면적이 1만6500㎡에 이른다. 운조루, 곡전재와 함께 기품으로 손에 꼽히는 남도의 옛집이다.


쌍산재는 당몰샘과 맞닿아 있다. 7년 가뭄, 석 달 장마에도 쉬지 않고 물이 흐른다는 샘이다. 수량이 일정하고 맛도 좋다.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여름엔 냉기가 느껴진다. 샘은 1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千年古里 甘露靈泉(천년고리 감로영천)'이라고 적혀 있다. 1000년 된 마을에 이슬처럼 달콤한 신령스런 샘이라는 뜻이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들어가기 전까지 마을주민들의 생명수로 쓰였다. 사도마을을 전국 제일의 장수촌으로 만들어준 귀한 물이다. 지리산 자락의 약초 뿌리가 녹아 흘러든 덕이다. 마을주민은 물론 외지인들도 부러 찾아와 물을 받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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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 앞에 있는 당몰샘. 7년 가뭄, 석 달 장마에도 쉬지 않고 물이 흐른다는 샘이다. 전국 제일의 장수촌을 만들어준 샘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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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와 어우러진 쌍산재의 안채. 처마에 주렁주렁 걸린 곶감이 정겨움을 더해 준다. ⓒ 이돈삼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쌍산재로 들어간다. 쌍산재의 대문이 소박하다. 양반집이라기보다는 여염집 대문 같다. 관리동을 왼편에 두고 마당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사랑채와 안채, 바깥채,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왼편에 별채, 호서정이 배치돼 있다. 올망졸망 장독대는 정면, 안채 옆에 자리하고 있다. 여성들이 주로 생활하던 공간이다.


안채 처마에 주줄이 걸려있는 곶감 풍경이 정겹다. 한낮의 다사로운 겨울햇살에 단내를 더해가고 있다. 도토리와 감 껍질도 햇볕에 몸을 내맡겨놓고 있다.


안채의 마루 한쪽에 딸린 뒤주도 별나다. 햇곡식이 나지 않는 춘궁기에 보리나 쌀을 채워두고 어려운 이웃이 필요할 때 가져가도록 배려했다. 궁할 때 가져다 먹고, 나중에 다시 채워놓는 뒤주다. 옛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배어있다. 운조루의 타인능해(他人能解) 뒤주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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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서당채를 연결해주는 대숲터널. 대밭 사이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쌍산재의 숨은 보석, 비밀의 정원이 펼쳐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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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에서 만난 앙증맞은 붉은 동백꽃.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 이돈삼

고아히 놓인 장독대를 지나 대밭 사이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 집의 숨은 보석과 만난다. 마당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비밀의 정원이다. 비밀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단아하고 조붓하다. 그것도 반듯하지 않고 비스듬히 돌아가게 만들어져 있다.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대숲의 끝자락에 동백숲도 있다. 한낮에도 어둑어둑할 만큼 빽빽하다. 대숲과 동백숲터널을 빠져나가면 양쪽으로 잔디밭이 펼쳐진다. 오래 전엔 텃밭이었다. 한옥민박으로 새 단장을 하면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도록 잔디밭으로 바꿨다. 햇볕 좋은 날엔 돗자리를 펴고 드러눕고 싶은 공간이다. 잔디밭이 쌍산재와 경암당, 연못과 한데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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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에서 만나는 서당채. 쌍산재의 가장 위쪽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 아이들이 책을 들고 오가던 학당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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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는 서당채의 이름이다. 200여 년 전, 지금 이 집의 주인장 오경영 씨의 고조부가 짓고, 자신의 호를 빌어 ‘쌍산재’라 이름 붙였다. ⓒ 이돈삼

쌍산재는 서당채다. 옛날 동네아이들이 책을 들고 오간 학당이다. 200여 년 전, 지금 이 집의 주인장 오경영 씨의 고조부가 짓고, 자신의 호를 빌어 '쌍산재'라 이름 붙였다.


쌍산재 일원은 여성들의 영역인 안채 일대와 달리, 남성들의 영역이다. 밖에서는 물론 집안에 있는 여성들의 공간에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곳에 감춰져 있다. 두 영역의 경계를 담장으로 구분하지도 않았다. 대나무와 동백나무를 심고, 길을 비스듬히 돌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밭에는 차나무가 빼곡하다. 습습히 부는 바람결이 마음속까지 정갈하게 해준다. 쌍산재를 찾는 사람 누구라도 감탄사를 자아내는 곳이다. 꼭꼭 숨겨진 비밀의 정원이고, 쌍산재의 숨은 보석이다.


"선대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책을 가까이하며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평생 책과 자연을 벗삼은 유학자셨지요. 집안의 화목을 가훈으로 삼은 가풍이 집에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쌍산재의 주인장 오경영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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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의 비밀의 정원에 있는 서당채와 소나무. 나무 한 그루에서도 격이 느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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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의 가정문과 영벽문을 이어주는 단화한 길. 겨우 한 사람이 비켜 설 정도의 폭인데,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 이돈삼

쌍산재로 들어가는 가정문 앞에서 경암당 옆으로 난 길이 단화하다. 겨우 한 사람이 비켜 설 정도의 폭이다.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준 동백나무가 빨간 꽃을 홍윤히 피웠다. 섣달에 피는 노란 매화 황설리화(黃雪裏花)도 활짝 웃고 있다. 새봄을 노랗게 물들일 산수유나무도 생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경암당 옆의 영벽문(映碧門)을 열면 사도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어머니의 품처럼 넓은 지리산에 안긴 저수지다. 물에 곱다시 반영된 산그림자가 매혹적이다. 저수지를 야외정원으로 삼고 있는 것도 쌍산재의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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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마을회관 한쪽에 있는 마을카페 ‘단새미’. 주인 없는 무인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계산대 옆에 놓인 외상장부가 웃음을 짓게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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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마을에 세워져 있는 이규익지려. 효성이 지극했던 이규익을 기리는 정려다.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상사마을은 지리산을 등에 업고, 섬진강을 앞에 두고 있다. 한때 차나무가 많았다. 지금도 산자락에 야생의 상태로 조금 남아 있다. 마을 풍경이 고즈넉하다. 그림 같은 마을풍광에 반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여러 해 전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촬영차 온 강호동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몇 년 사이 귀농·귀촌을 해온 젊은 사람들도 많다. 오래 된 돌담도 함께 고쳐 쌓으며 구순히 살고 있다. 마을회관 한쪽에 마을카페 '단새미'도 있다. 주인 없는 무인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계산대 옆에 놓인 외상장부가 웃음을 짓게 한다. 녹색농촌체험마을,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마을, 행복마을로 지정돼 있다.


하사마을에서는 효헌사와 이규익지려가 눈길을 끈다. 효헌사는 정종의 아들 도평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마을에 살던 도평군의 후손이 1874년에 세웠다. 이규익지려는 효성이 지극했던 이규익을 기리는 정려다.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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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마을과 나란히 자리한 하사마을 풍경. 지리산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고 산촌이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ds2032@korea.kr)

2020.03.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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